[김희철의 전쟁사(51)] 서부전선보다 80㎞를 더 한국영토로 만든 월비산 전투

김희철 기자 입력 : 2020.08.24 14:21 ㅣ 수정 : 2020.08.24 14:21

7차례의 고지 쟁탈전 끝에 38도선 북쪽인 설악산 일대를 우리 영토로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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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국군 1군단 예하의 수도사단과 11사단 등은 강원도 고성군의 월비산과 351고지 탈환을 위해 1951년 10월 중순부터 휴전 직전까지 7차례에 걸쳐 고지 쟁탈전을 치루었다. 


특히 육해공군 합동작전을 수행한 전투로 해군의 지속적인 함포사격 지원과 더불어 공군은 총 1538회를 출격해 적 핵심시설 및 진지, 벙커를 파괴하는 전과를 올렸다. 비록 마지막에 적에게 피탈됐지만 더는 전선이 밀리지 않은 덕분에 현재 38도선 북쪽인 설악산 일대를 우리 영토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월비산과 351고지, 통일전망대를 그린 그림 [사진자료=전쟁기념관]
 

■ 산으로 달이 솟는 것이 날아오르는 형상인 월비산에서의 치열한 전투

 

월비산은 건봉산 줄기가 동해로 뻗으면서 형성된 표고 459m로 고성 서남쪽 5㎞ 지점에 돌출한 산이다. “달이 솟는 것이 마치 날아오르는 것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영흥만과 더불어 월비산 일대는 6 · 25남침전쟁시의 전쟁영웅인 ‘김동석 대령(가수 진미령의 부친)’이 지휘한 HID36지구대의 활동지역이기도 했다. 그들은 야간에 은밀히 북한군 후방으로 침투하여 게릴라, 기습, 암살, 첩보, 납치, 주요시설 폭파 등 각종 임무를 수행했다. 밤이면 물에서 올라와 첩보활동을 펼치고 해가 뜨면 사라지는 활동방식 때문에 북한군들은 이들을 ‘물쥐’라고 불렀고 김동석 대령은 ‘물쥐 대장’이 되었다.(김희철의 전쟁사(1) ‘불암산 호랑이와 물쥐대장 김동석’ 참조)


국군 1군단은 1951년 9월6일경 향로봉∼건봉산∼송현리를 잇는 선상에 주저항선을 형성하여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10월10일 예하 수도사단으로 고성 일대의 전술적 요충지인 월비산을 선제공격하게 함으로써 월비산·351고지 전투가 개시되었다. 


국군 1군단장 백선엽 장군은 지형상 월비산을 확보하지 않고는 작전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수도사단장(송요찬 준장)에게 그 임무를 부여하였다. 이에 수도사단은 1기갑연대로 하여금 1951년 10월 10일 월비산 공격의 발판이 되는 148고지∼351고지를 공격하도록 하여 이를 탈취하였다.


10월 12일부터 3일간 1기갑연대는 주목표인 월비산 공격을 감행하였으나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간신히 261고지와 350고지까지 진출하는 데 그쳤다. 


수도사단 사령부에서는 병력을 집중투입하기로 작전계획을 수정하였으며, 이에 따라 기갑연대는 15일 오전에 공군이 포함된 제병협동 및 합동작전으로 공격을 재개하였다. 


당시 유엔 공군기의 오폭으로 3대대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여 일대 혼란이 야기되기도 하였으나, 월비산 정상으로 돌진하여 치열한 백병전을 벌인 끝에 이날 오후 마침내 월비산을 탈취하였다.


월비산 전투가 일단락되면서부터 동부전선의 상황은 다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 월비산·351고지 전투 당시 고지를 점령한 국군 1기갑연대 장병들 [사진자료=국방홍보원]
 

 ■ 월비산·351고지는 피탈됐지만 서부전선보다 북으로 80㎞를 더 확보


한편 육군이 ‘51년 11월에 수도사단(사단장 준장 송요찬)과 8사단(사단장 준장 최영희) 그리고 기존 서남지구 전투사령부를 통합하여 ’백야전 전투사령부(사령관 소장 백선엽)’를 창설하였다. 


수도사단은 월비산·351고지일대에서 수색과 정찰의 반복으로 북괴군의 동태를 살피고 있던 중, 군단 작전지시 제14호에 따라 책임지역을 11사단에 인계하고, 11월16일부로 호남지구에 창설된 ‘백야전사령부’에 배속되어 공비토벌 작전에 임하게 되었다.


이에 11사단은 작전명령 제18호에 의거 사단예비인 9연대로 하여금 월비산∼261고지∼351고지∼148고지∼187고지∼36고지를 인수하게 하였다. 따라서 9연대는 배속 받은 대전차공격대대를 261고지와 월비산에, 사단 수색중대를 148고지 일대에 배치하여 방어태세를 강화하였다.


그로부터 2일이 지난 11월18일 저녁, 북한군 9사단 86연대의 1개 대대는 어둠이 깃든 후 월비산을 목표로 하여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이 고지에 배치된 대전차공격대대에 의해 격퇴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다음날 후반야에 3개 방향에서 동시에 공격하여 아군의 방어진지를 돌파하였다.


월비산을 탈취한 북한군 1개 대대는 그 여세를 몰아 대전차 공격대대가 351고지에 미처 방어편성을 끝마치기도 전에 급습하여 이 고지마저 장악하였다. 


11사단은 수도사단으로부터 월비산을 인수받은 지 불과 8일 만에 이를 고수하지 못하고 북한군에게 빼앗겼다. 당시 대전차공격대대 1중대 이재화 중위(예비역 대령, 16연대장 역임)는 수도사단 1개연대가 방어하던 진지를 2개중대로 배치한 것과 신병들로 구성되어 전투경험이 적은 것도 실패의 원인이었다고 증언했다. 

 

11사단장 오덕준 준장은 심기일전하여 339고지∼351고지∼208고지∼37고지선에 새 방어진지를 편성한 후 방어태세를 강화시켜 나갔다. 


하지만 이 전투로 북한군 사살 891명, 포로 37명, 소총 369정 노획 등의 전과를 거두었으며, 이후 수차례의 고지 쟁탈전이 휴전 직전까지 계속되었으나 우리 국군은 새롭게 편성된 방어진지를 잘 지켜냈다. 

 
 
▲ 좌상단에 보이는 금강산과 그 밑의 월비산 능선, 우측 고지정상에 보이는 통일전망대, 하단에는 금강산으로 가는 도로 모습 [사진자료=고성군]


휴전협정 이후, 월비산은 안타깝게도 북한 땅이 되었으며 월비산과 351 고지 아래로 북측 민통선이 그어졌다. 그러나 이로 인해 우리 국군은 동부전선에서 서부전선보다 북쪽으로 80㎞를 더 확보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월비산 정상에 국군의 동태를 파악하는 북한군 초소가 있으며 월비산 아래에는 북측 민통선과 더불어 남한 측에서 건설한 금강산으로 가는 도로가 지나간다. 


금강산과 월비산의 모습은 고성군 현내면에 위치한 통일전망대에서 볼 수 있으며 월비산과 351 고지는 절경인 해금강과 더불어 분단의 아픔과 6.25남침전쟁의 치열함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