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70)] ‘회자정리(會者定離)’로 쌓여진 인맥파워

김희철 기자 입력 : 2020.08.04 18:16 |   수정 : 2020.08.04 18:16

헤어진 사관특채(유신사무관), 선후배 등까지도 일(jop)을 위한 든든한 자산이자 잠재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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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인생(Life)은 B(탄생, Birth)과 D(죽음, Death) 사이에 있는 C(선택, Choice)의 연속이라고 한다. 사관학교에 입학해 군복을 입은 지 어언 10년이 되자 동료들의 진로가 확연하게 차이나는 시비 쌍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가장 먼저 동기생 40명이 사관특채(유신사무관)으로 지원하여 군복을 벗었다. ‘생자필멸(生者必滅), 거자필반(去者必返), 회자정리(會者定離)’ 즉 “산 것은 반드시 죽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라는 법화경의 글귀처럼 청운의 꿈을 향한 각자의 길을 선택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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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사 졸업식을 주관하는 박정희 대통령. 박 대통령은 "관료조직이 타성과 부패에 빠지는 여느 개발도상국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중을 담아 ‘사관특채(유신사무관)제도’를 도입했다. [자료출처 = 연합뉴스]

  

자신의 운명(運命)에 따라 사회 각층의 직업(jop)분야에서 그 꿈을 실현


세상에 태어난 것도 선택이다.


수만개의 정자 중에서 발탁되어 엄마의 뱃속에서 꿈을 키워 우렁차게 울면서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그 선택의 결과로 어떤 이는 재벌의 2세가 되어, 또 어떤 자는 가난한 가정 등에서 나름대로 성장했다.

 

결국 자신의 운명(運命)에 따라 사회 각층의 직업(jop)분야에서 그 꿈을 실현해 간다.


당시 중대장을 마치고 사단작전장교가 되어 정신없이 밀려오는 업무의 파도 속에 허부적거리다 보니 태릉골(육사)에서 군복을 처음 입어본 지 10년이 지났고, 약 290명의 동기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첨단 실무자들이 되어있었다.


돌이켜보니 좌우 인접 사단에도 동기들이 작전장교 및 인사장교 보직을 수행하고 있었고 이번에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약 40명이 사관특채(유신사무관)로 지원하였다.


사실 이 사관특채(유신사무관)제도는 필자가 사관학교 입교 시험을 볼 때 최초로 생긴 제도로 당시 육사 25기가 최초로 사무관으로 임용되어 각 분야의 공무원 활동을 시작했다.


사관특채(유신사무관) 1기인 권경석 전 의원(17·18대 국회의원)은 "관료조직이 타성과 부패에 빠지는 여느 개발도상국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제도라면서 지원자를 모집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한마디로 박정희 대통령이 통치수단의 하나"라는 것이 권 전 의원의 평가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점점 심해지는 군의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1977년 1기부터 1988년 11기로 폐지될 때까지 배출된 인원은 총 784명. 육사 기수로는 25∼37기에 해당한다. 시행 초기 5년간 100명 안팎을 선발했지만 전두환 정권 3년차인 1982년부터 50명 내외로 인원이 줄었다. 


미꾸라지 어항에 천적 메기를 넣어두면 미꾸라지들이 더 생기 있다는 '메기효과'


유신사무관들은 사관학교에서 배운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간다”라는 ‘사관생도신조’로 무장을 하고, 전후방 각지에서 소·중대장직을 체험하여 조직관리능력과 리더십을 배양한 상태라 각종 비리와 불합리와 맞서 싸워 많은 신화를 창조했었다.


헌데 '유신사무관 폐지'를 공약으로 걸고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은 약속대로 이 제도를 없애 버렸다. 민주화 열망이 분출하던 1987년, 안타깝게도 유신사무관은 군사독재의 주요 상징으로 척결대상에 꼽혔기 때문이다.


군이라는 특정 집단에서만 사무관을 한 해 100명 넘게 선발한다는 것은 엄청난 특혜였다. 반대로 공직사회와 민간에는 커다란 압박으로 다가왔다. 유신사무관 106명을 임용한 1977년 당시 행정고시(21회) 선발인원이 134명이었으니, 당시 공직사회 안팎에서 느꼈을 경계심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필자의 육사입교 시험시 입시요강에 최초 공고됐었는데, 결국 육사입교시 첫 대상이었던 필자 동기들을 끝으로 1989년에 폐지되어 1978년에 입교한 육사 38기부터는 유신사무관 선발이 없어졌고, 40여년이 지난 작금에는 공무원 조직중에 유신사무관들은 모두 퇴직하여 한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수단으로 시작된 제도였지만 시행 후, 행정고시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획일적·폐쇄적인 관료사회에 다양성을 더하는 자극제였다고도 볼 수 있다. “미꾸라지 어항에 천적 메기를 넣어두면 미꾸라지들이 더 생기 있다”는 '메기효과'와 비슷한 논리이다. 


마지막 사관특채(유신사무관) 11기인 한문철(육사37기) 전 서울시의회 사무처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특혜 논란과 유신사무관이라며 평가절하하고 견제하는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사관특채(유신사무관)의 존재가치는 일부가 주장했던 부정적인 측면도 보다는 소속된 조직을 정화시키고 확고한 국가관과 사명감으로 공무원 사회를 변화시킨 신화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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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초의 최대 모니터(30m x 12m, 월드미디어 제작)가 등장한 2011년 계룡대에서의 육해공군 합동임관식[사진자료=김희철]

 

■ ‘거자필반(去者必返), 회자정리(會者定離)’의미처럼 떠나간 자들까지도 인맥형성


‘회자정리(會者定離)’ 즉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라는 법화경의 의미처럼, 4년 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사관학교를 졸업해 장교로 임관했고, 야전에 배치되어 5년이란 시간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동기들의 일부가 사회로 환원됐다.


그 와중에 필자보다 늦게 전입 왔던 선후배와 동료 등도 차기 보직을 위해 먼저 전출갔다. 하지만 현실은 이것들을 아쉬워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나머지 250명의 동기생들은 또다시 경주마가 되어 군생활이라는 트랙을 질주해야만 했다.


한편 ‘거자필반(去者必返)’ 즉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라는 의미처럼, 생도시절 훈육관 이었던 선영제 대령(육사25기)이 연대장으로 전입 왔으며 친 동생처럼 가르쳤던 한설, 신경철, 김상철(육사40기) 후배들도 휴가를 이용해 방문해 해후의 정도 나누었다.


인생(Life)은 C(선택, Choice)의 연속이다. 물론 그 선택 속에서 일부 악연도 있었으나, 대부분 새로운 만남을 통해 서로 좋은 인간관계를 맺으며 또다른 인맥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먼저 사회로 환원된 사관특채(유신사무관)까지도 포함한 좋은 관계의 인맥은 필자의 군생활에 큰 힘이 되었다.


‘생자필멸(生者必滅), 거자필반(去者必返), 회자정리(會者定離)’ 즉 “산 것은 반드시 죽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는 법화경 한 구절의 의미가 새삼 가슴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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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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