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철의 검사수첩 (11)] 거의 모든 성범죄 사건의 핵심은 상대방의 동의 여부

이상호 기자 입력 : 2020.06.25 05:05 ㅣ 수정 : 2020.07.0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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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러 가지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성범죄 사건이 잇따르면서 이에 대한 처벌과 법적용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그 중 상당수는 당사자, 남녀 간의 동의 여부에 관한 것이다.

 

내가 변호사로서 피해자나 가해자와 상담을 해보면, 성범죄 발생 후 대부분의 남성은 주로 상대방인 여성의 동의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반면, 여성은 그런 적이 없었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스킨십‧성관계, 묵시적 동의로 이뤄지는 경우 많아 갈등 소지

 

남녀 간 성관계나 스킨십에 대한 동의는 명시적, 확정적인 경우가 거의 없고 묵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남녀가 사귀는 사이 또는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분위기에 맞추어서, 또는 음주 상태로 스킨십도 이뤄지고 성관계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 지금 이 순간 당신과 키스해도 되나요”, “나 지금 이 순간 당신과 성관계를 가져도 되나요?”라고 묻고, 승낙하는 일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남자는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여자는 “동의하지 않았다”고 상반되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전지검 홍성지청에 근무할 때 있던 일이다. 어떤 남자가 강간치상 혐의로 경찰로부터 기소의견으로 송치가 됐다. 그런데 이 피의자는 불구속 상태였다. 강간치상은 7년 이상 징역형에 해당하는 중죄인데, 경찰이 기소의견이면서 불구속으로 송치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사건을 살펴봤다.

 

이런 내용이었다. 남녀가 우연히 나이트클럽에서 만났다. 나이트클럽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다음날 제주도에 함께 놀러가기로 합의를 했다. 그런데 늦은 새벽까지 놀다보니 피곤했기 때문에, 모텔에 가서 자고 난 뒤 다음날 제주도에 가기로 합의가 되었다.

 

그 남녀는 술이 많이 취한 것도 아니었고, 모텔에도 자발적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먼저 씻고 침대에 알몸으로 누웠고, 여자도 씻고 타월을 두른 상태에서 같은 침대 위에 누웠다.

 

남자는 “이 정도면 나와의 성관계를 허락한 것이다” 라고 생각에, 타월을 벗긴 뒤 여자의 몸을 만지며 성관계를 가지려 했다. 하지만 여자는 피곤하다면서 “그냥 자고 싶다”고 했다. 그래도 남자는 “으레 그러는 거겠지”라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성관계를 시도했다.

 

여자는 급기야 “내가 싫다는 데 왜 자꾸 그러느냐”고 화를 냈고, 남자는 “그게 무슨 말이냐. 함께 모텔에 들어왔고 이렇게 샤워를 하고 벗은 몸으로 누워 있는데 이제 와서 관계를 안 하겠다는게 말이 되느냐”며 서로 다퉜다. 다툼 끝에 남자가 옆에 있던 곽티슈를 여자 얼굴에 던져서 여자의 얼굴에 상처까지 생겼다.

 

남자는 화가 나서 모텔에서 나왔고, 여자는 남자를 강간치상 혐의로 고소했다. “내가 분명히 싫다고 했는데 저 남자가 억지로 성관계를 하려 했고 끝까지 거부하니까 곽티슈를 던져서 내 얼굴에 상처가 났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있었던 게 15년쯤 전 일인데 당시 검사들 사이에서이 사건이 혐의가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어떤 검사는 “이건 남자 말이 맞다, 그런 상황에서 같이 모텔에 들어갔고 샤워하고 벗은 몸으로 함께 침대 위에 누웠는데, 그건 성관계를 하겠다는 묵시적 동의로 봐야한다”고 했다. 또 다른 검사는 “동의가 있더라도 명시적으로 하기 싫다고 했으면 더 이상 남자는 성관계를 시도하지 말았어야 된다, 그럼에도 계속 시도를 한 것은 죄가 된다”라고 주장했다.

 

묵시적 동의가 있었기에 죄가 안 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고 명시적으로 거부했기에 죄가 된다는 입장도 일리가 있었다. 아무튼 실제 성관계가 있던 것도 아니고, 크게 다친 것도 아니다 보니 사건 자체는 그렇게 중대한 일이 아니어서 서로 합의가 되었기에 고민 끝에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명시적인 의사가 묵시적인 의사에 우선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여자가 “나는 요즘 외로워” 라는 등 술을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라든가 “성관계 할 사람이 없어” 라는 식의 대화가 오고가는 상황이라면 남자들은 “이게 나와 관계를 하고 싶다는 얘기인가? 스킨십을 하고 싶다는 얘기인가?” 라고 혼란스러워지면서 착각을 할 수 있다.

 
술에 취해서 벌어지는 성폭행사건에서는 묵시적 동의여부가 큰 쟁점이 된다. 사진은 영화 엽기적 그녀의 한장면으로 기사와 상관없음
 

■명시적인 의사표현은 묵시적인 것 보다 우선... ‘묵시적 동의’ 인정 엄격해지는 추세

 

남녀 간 스킨십이나 성관계는 일반적인 사회생활 또는 업무와는 다르다. 계약서도 없고, 분위기에 이끌려서, 술을 먹고 이루어지는 일이 많기 때문에 명시적인 의사표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싫다는 명시적인 의사표현은 늘 항상 아무 말도 안하는 묵시적인 상황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명시적인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사건이 벌어지면, 피해자의 묵시적인 동의가 있었다는 쪽으로 종종 인정해주곤 했지만 최근의 법적용은 점점 이를 인정하지 않는 추세다.

 

여자가 성관계에 관한 얘기를 한다고 해서 성관계하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하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늘 보면, 성범죄 사건의 핵심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성관계나 스킨십이 실제 있었느냐 여부, 둘째 합의에 의한 것인지 또는 일방적인, 강제적인 것이었는지 여부다. 여기서 합의는 명시적 합의와 묵시적 합의를 다 포함한다. 그런데 피해자인 여성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묵시적인 합의를 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사람 사는 곳에 형법의 잣대가 너무 깊숙이 들어오는 것에 우려

 

술에 취하면 분명 멀쩡하게 행동을 해놓고도 다음 날에는 생각이 안 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보면 묵시적 동의가 있었지만 여성 입장에서는 기억이 안 나기 때문에 “나는 동의한 기억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나와 성관계를 했으면, 넌 나의 동의를 받지 않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범죄자다” 라는 논리로 고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풍토 때문에 요즘에는 남녀 간에 애인이라 하더라도 명확하게 서로 합의를 하고 성관계나 스킨십을 해야 한다는 풍조가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형사적 처벌, 법의 잣대가 사람들의 삶 속으로 너무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부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

 

어떤 변호사와 점심 식사를 하다가 들은 이야기다. 그 변호사가 검찰청에 갔는데 잠시 기다리는 동안 80세가 다 되어 보이는 노인이 다가와서 “뭐 좀 물어봐도 되냐”고 물었다. 얘긴즉 자신이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전화벨이 울리는 것 같아서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려다가 옆에 앉아있던 여성의 신체를 건드렸는지 그 여성이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이었다.

 

이런 경미한 사건은 사실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니만큼 상대방에게 사과하고 끝낼 수 있으면 좋을텐데 모든 일을 법에만 의존해 해결하려는 풍조는 잘못하면 서로 간에 벽을 만들 수 있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가급적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잘 지내다 헤어지면 문제가 될 수 있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성범죄 중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이라는 것이 있다. 과거 강간이라고 하면 폭행이나 협박으로 상대방을 항거불능 상태로 만든 뒤 성관계를 하는 것을 말했다. 그런데 폭행이나 협박이 없더라도  그 사람의 신분과 사회적 지위로 상대방을 압박하는 것은 폭행이나 협박에 별반 차이가 없다. 이런 경우에는 물리적 폭력이 없어도 강간으로 봐야한다. 이런 취지로 만들어 진 것이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다.

 

이 죄는 내가 생사여탈권을 가진 상황에서 내 의사를 거부할 수 없는 사람을 상대로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하자고 했을 경우 폭행이나 협박이 없어도 강간으로 보고 처벌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너무 넓게 해석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남자 교수와 여학생의 관계로 따져보자. 교수가 총각일 수도 있고 여학생이 나이가 많을 수 있다. 둘이 진실로 사랑할 수도 있다.

 

서로 사랑해서 성관계를 가졌는데, 사랑한다고 반드시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고, 사이가 안 좋아질 수도 있다. 나중에 사이가 틀어져서 학생이 이것을 문제 삼았다고 했을 때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의 범위를 너무 넓히면 범죄가 안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좋을 때는 로맨스였다가 나중에 틀어지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인사권을 가진 간부와 평직원 사이에 사랑이 있을 수 있다. 위력이나 지위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 아닌 진정한 남녀 간의 로맨스가 나중에 사이가 틀어졌다고 형사사건이 되는 것은 곤란하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성범죄에 대하여 보다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 하에서 이런 일이 범죄로 처벌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인 점을 감안할 때 현재는 과거보다도 균형 감각이 더욱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