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고공비행] 주먹이 아니라 법이 울고 있다

이상호 전문기자 입력 : 2020.06.02 10:47 |   수정 : 2020.06.04 17:25

n번방 유료회원 범죄단체가입죄 적용, 역사왜곡금지법 제정 놓고 법조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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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얼마 전 94세 생일을 맞았던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Elizabeth II)는 세계에서 가장 우아한 여성이다. 그녀의 우아함은 여왕이라는 권위, 그에 맞는 처신, 국민의 자발적 복종에서 나온다. 폴 매카트니나 엘튼 존 같은 살아있는 팝의 전설들은 기꺼이 그녀의 신하가 되기를 자처하고, 영광으로 받아 들인다.

 

영국은 왕이 존재하는 입헌군주제 국가다. 그래서 영국의 국가는 ‘신이여 여왕패하를 지켜주소서’, ‘God Save the Queen’이다. “하느님, 저희의 자비로우신 여왕(국왕) 폐하를 지켜 주소서. 고귀하신 저희의 여왕폐하 만수무강케 하시고...여왕 폐하께 승리와 복과 영광을 주소서...저희 위에 길이길이 군림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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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하는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호위하는 모습

 

21세기 대명천지에 봉건구습의 상징인 왕이라니...근대화와 더불어 왕정(王政)을 혁파한 나라에서는 혀를 차는 사람들도 많지만, 영국사람들은 여왕폐하를 모시면서 잘 살고 있다. 전통과 관례를 중시하는 영국은 성문(成文)화 된 법이 없는 불문법(不文法), 즉 불문율로 살아가는 나라이기도 하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두가지 일 때문에 법조계에서 말이 많다. 첫 번째는 n번방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사자 운영자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동한 유료회원들에게 성범죄 뿐 아니라 '범죄단체 가입죄'를 묻겠다는 것이다.
 
검찰이 박사방 유료회원 2명에 대하여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및 형법상 범죄단체 가입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법원은 이 영장을 발부했다. 성착취물 동영상 제작‧유포 관련 사건에서 처음으로 관전자들을 상대로 범죄단체 가입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성착취물 동영상 공유방 가담자 전체로 확대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그동안 범죄단체 가입죄는 통상 ‘xx파’로 불리는 조직폭력배들에게 주로 적용됐다. 하지만 박사방 유료회원들이 실제로 범죄단체 가입죄로 처벌 가능한 지, 즉 최종적으로 대법원의 유죄판결을 받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지난 2015년 대구지검 검사로서 조직폭력배가 아닌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에게 최초로 범죄단체가입죄를 적용 유죄판결을 받아낸 바 있는 ‘법무법인 동광’의 민경철 대표 변호사의 생각도 그렇다. 민 변호사는 “조주빈 등이 운영한 조직을 범죄단체로 본다 하더라도 문제는 유료회원들인데, 회원가입을 ‘범죄단체의 가입’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별도로 판단이 필요한 문제”라는 입장이다.
 
그 이유는 우선 기존의 판례로 볼 때 일단 회원과 조주빈 간에 상명하복의 관계가 있어야 조주빈을 수괴(首魁)로 보고, 회원을 부하로서 행동대원으로 볼 수 있을 것인데 사실관계가 확인돼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법률적 다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범죄단체의 조직원은 가입탈퇴가 자유롭지 않아야 하는데 유료회원들은 자유롭게 회원 탈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므로, 이런 경우까지 범죄단체에 가입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해석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판례에 따르면 범죄단체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이 필요한데, 첫째는 목적성, 둘째는 단체성이며, 셋째는 계속성으로, 최종적으로는 법원이 이 요건들을 종합해서 범죄단체 여부를 판단한다. 따라서, 단순히 유료회원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범죄단체가입 혐의로 기소하는 것은 향후 지나친 유추해석 내지 확장해석에 해당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법조계의 또 하나 논란거리는 지난 4·15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이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역사왜곡금지법’이다. 이 법은 5·18 민주화운동 세월호 참사를 폄훼하거나 유가족을 모욕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무겁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누군가가 당사자가 되어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내면 곧바로 위헌판결이 날 수 밖에 없는 법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헌법에 명시된 표현과 언론의 자유,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정면으로 위배하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는 근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시하는 가치이자 인간의 당연한 권리이다. 인류가 어둡고 긴 봉건의 시대를 끝내고 르네상스를 통해 되찾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 바로 표현의 자유다. 그래서 미국도 수정헌법을 만들면서 양심과 표현, 언론의 자유를 최우선시 했다.
 
표현의 자유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뚤린 입으로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없다”는 취지다. 근본적으로는 막말도 말이고 그래서 도덕적 책임, 비난을 받을지언정 그것도 자유기 때문에 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얘기다. 다만 어떤 사람의 언행으로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힐 경우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처벌받는 예외가 있을 뿐이다.  
 
역사왜곡금지법은 민주주의에서는 존재해서는 안되는 성역(聖域)을 만드는 법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우리나라의 기독교, 불교신도가 수천만명이니까 예수님이나 부처님에 대한 폄훼나 비방을 금지하는 법도 만들어야 한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와 “주먹이 운다”는 말은 준법의식에 대한 사람들의 상반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지켜야 할 법’, ‘지켜질 법’이 아닌 이상한 법을 만들면 주먹이 우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법이 울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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