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경 칼럼] 백선엽 장군이 존경 받는 군인으로 명예롭게 남는 법

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0.05.29 15:39 |   수정 : 2020.05.29 17:30

채명신 장군 사례처럼 서울현충원의 6·25전쟁 참전 사병 묘역에 안장 검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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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6·25 전쟁의 영웅인 백선엽 장군(예비역 육군대장)을 둘러싼 ‘모욕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로 100세인 백 장군의 서울현충원 안장 문제에서 불거졌으나 이제는 ‘친일 전력’으로 인한 ‘현충원 안장 반대론’으로 비화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사적 인물을 두고 지금처럼 당리당략적 정쟁을 벌여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이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을 멈추고, 백 장군은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군인으로 명예롭게 남는 길을 선택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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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11월 21일 서울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백선엽 예비역 대장 생일파티에서 백 장군이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으로부터 백 장군의 사진 등이 담긴 책을 선물 받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미국 국립묘지, 계급별 묘역 구분 없고 묘지 면적도 동일

 

논란의 출발점은 국립묘지인 서울현충원의 장군 묘역에 있다. 우리나라는 계급에 따라 장군, 장병(장교 및 사병) 묘역을 구분하고, 장군 묘역은 묘지 면적이 26.4㎡(8평)으로 시신을 안장하고 봉분을 조성할 수 있다. 하지만 대령이하 장교와 사병들은 묘지 면적이 3.3㎡(1평)으로 화장한 유골만 안장된다. 서울현충원 장군 묘역에는 이제 묘지 공간도 남아있지 않다.

 

반면,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는 장군, 장교, 사병 묘역의 구분이 없고, 묘지 면적도 동일하게 4.49㎡이다. 안장은 계급의 구분 없이 사망일시 순서에 따르며, 사망일시가 같을 때에는 이름의 알파벳 순서에 따른다. 영국과 캐나다·호주·뉴질랜드 같은 영연방 국가들의 국립묘지도 계급 구분 없이 묘지 면적이 모두 4.95㎡로 동일하다.

 

이와 같은 영·미의 전통에 대해 한 전쟁사학자는 “계급이란 전쟁 수행을 위해 필요했던 직책에 대한 표시였지 신분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그는 “전쟁을 많이 치룬 나라일수록 장군과 사병 관계가 부하보다 전우라는 개념이 더 강했다”면서 국립묘지에 묻힐 때 모두가 동등한 이유를 설명했다.

 

채명신 장군, 건군 이후 최초로 장군이 사병 묘역에 안장

 

백선엽 장군은 창군 원로이자 6·25 전쟁에서 이 나라를 구한 구국 영웅이다. 세계 최강의 군대인 미군이 가장 존경하는 한국 군인이어서, 한미연합사령관들도 부임하면 제일 먼저 백 장군에게 인사를 온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혁혁한 전공에 존경을 표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백 장군이 국민의 존경을 받는 군인으로 명예롭게 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방법은 베트남전 당시 초대 한국군사령관을 역임했던 채명신 장군(예비역 육군중장)이 2013년 11월 25일 별세하면서 이미 보여줬다. 채 장군은 평소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전우들 곁에 묻히고 싶다”고 얘기했고, 그것이 유언으로 받아들여져 서울현충원의 장군 묘역 대신 베트남전 참전 사병 묘역에 안장됐다.

 

건군 이후 장군 출신이 사병 묘역에 안장된 것은 채 장군이 처음이다. 이로 인해 채 장군은 살아서는 ‘전쟁 영웅’으로, 죽어서는 ‘참 군인’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태평양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 해군원수 체스터 니미츠 제독도 알링턴 국립묘지 대신 태평양전쟁에서 전사한 해군들이 가장 많이 묻힌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 국립묘지를 선택했다.

 

장군 3.3㎡으로 법 개정…묘역 소진될 때까지 26.4㎡ 허용

 

장군 묘역의 시신 안장과 봉분 조성은 제5공화국의 잔재다. 1965년 국립묘지령이 제정될 당시만 해도 국가원수 외에는 모두 화장을 원칙으로 했다. 하지만 1983년 장군들도 시신을 안장할 수 있도록 규정이 신설됐다. 2004년 국방부는 “장군 묘역도 화장 후 유골 안치를 추진하고 봉분 조성은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2005년 7월에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장군 묘역의 화장 안치 및 1기 면적을 3.3㎡으로 명문화했다. 하지만 부칙에 ‘장군 묘역이 소진될 때까지 시신 매장 및 26.4㎡ 허용’이라는 단서 조항을 넣었다. 서울현충원은 1996년 장군 묘역이 소진되었지만 대전현충원은 올해 4월말 기준으로 27위를 모실 수 있는 공간이 남아 있다.

 

백 장군 측은 한 때 경북 칠곡의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장지로 검토했다고 한다. 다부동은 6·25전쟁 초기 백 장군이 제1사단을 이끌고 북한군 3개 사단을 물리쳐 풍전등화의 나라를 구한 곳이어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는 “국가가 관리하는 곳에 개인묘지를 만들면 특혜가 된다”면서 “내 묏자리는 대전현충원으로 결정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전현충원 장군 묘역 곧 소진…서울현충원 안장 추진해야

 

백 장군 측 관계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서울현충원에서 국가유공자 묘역에 백 장군 묘지를 만들겠다는 연락이 오긴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권에서부터 친일 논란이 일고 있는 지금 분위기로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 게다가 백 장군이 더 오래 사신다면 대전현충원의 장군 묘역조차 소진돼 3.3㎡ 규모의 장병 묘역에 안장해야 한다.

 

따라서 채명신 장군이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전우들과 같이 사병 묘역에 안장됐듯이 서울현충원의 6·25전쟁 참전 사병 묘역에 백선엽 장군이 함께 싸운 전우들과 안장되는 모습은 어떨까? 서울현충원은 보훈처가 아닌 국방부가 관리하는데다 채 장군의 선례가 있어 백 장군만 좋다고 하면 추진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친일 인사라고 ‘파묘’를 주장하던 정치인도 명분을 잃게 되고, 채명신 장군에 이어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백선엽 장군이 안장된 서울현충원은 국민교육의 역사적 현장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게 되며, 백 장군 또한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명예로운 군인으로 국민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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