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철의 검사수첩 (4)] “남편 친구가 저를 강간했어요”…성범죄 수사가 어려운 이유

이상호 기자 입력 : 2020.05.28 05:05 ㅣ 수정 : 2020.05.2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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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에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경찰로부터 강간죄 고소사건이 송치됐다. 경찰은 피고소인에게 혐의가 있다고 보고 기소의견이었다.
 
하지만 강간사건이고 혐의가 있으면 중한 범죄여서 구속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구속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의아했다. 내용을 살펴보니, 고소인의 남편은 다른 사건으로 구속된 상황이었고 피고소인 A씨는 남편의 아주 절친한 친구였다.

 

■ 고소인 “강간이었다” VS A씨 “합의된 성관계였다” 주장 엇갈려

 

고소인의 주장에 따르면, 남편이 구속되자 의지할 데가 없어진 고소인은 평소 남편의 절친이어서 자신과도 허물없이 지내던 A씨에게 물적‧심적으로 여러가지 도움을 받았다. 특히 남편 옥바라지를 하면서 변호사는 어떻게 선임해야 하는지, 합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세상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어서 당황스럽기만 하던 차에 A씨와 대부분 논의를 하였고, 자기 일처럼 도와주던 A씨가 고소인으로서는 무척 고마웠다.

 

그러던 어느 날 A씨가 고소인을 사무실로 불렀다. 고소인은 A씨가 남편과 관련된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상의를 하려고 부른 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하던 중 A씨가 돌변하여 자신을 강간하였다고 했다.

 

반면 A씨는, 고소인의 남편이 구속된 이후 여러 도움을 주다가 고소인과 많이 가까워졌고, 그러다보니 성관계를 맺은 것도 맞다. 하지만 강간은 아니다. 성관계는 고소인과 합의하에 이루어진 것이지, 절대로 고소인을 강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직접증거 없고 양측 주장 배치.. 고소인과 A씨의 잦은 만남에 의심

 

경찰은 양측의 주장을 토대로 수사를 했다, 하지만 사건 당일 목격자도 없었고 고소도 몇 개월이 지난 다음에 이뤄진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두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 몇가지 보강수사를 마친 후 고소인의 말이 맞다고 판단하여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던 것이었다.

 

스토리만 놓고 보면, A씨는 고소인의 남편과 굉장히 친한 친구사이로, 친구가 구속된 상태에서 친구의 아내와 합의된 성관계를 맺는다는게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되는 것이기에 경찰이 A씨 말을 믿지 않는 것도 일리는 있어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고소인과 A씨가 너무 자주 만났다는 것이다.

 

A씨 주장에 따르면 고소인의 남편이 구속된 이후 한 두번 상의를 했다고 하는데, 그에 비해 음식점을 같이 가거나 함께 보낸 시간이 너무 길고 통화도 잦았다.

 

강간이 있었다고 한 시점 이후에도 고소인과 A씨는 계속 통화를 한 사실이 통화 기록에 나타나 있고, 고소인도 A씨와 함께 식사를 하고 시간을 보낸 사실에 대하여는 다툼이 없었다.
 
그래서 이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좀 더 면밀히 사건을 살펴볼 필요성을 느꼈다. 일단 고소인과 A씨가 함께 갔다는 음식점들의 CCTV를 확인하기로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 영상이 지워진 곳도 있었고, 어떤 곳은 CCTV 자체가 아예 없고, 있지만 작동되지 않는 곳도 있었다. 어렵게 두 군데 정도의 영상을 확보했다. 영상을 보니 고소인과 A씨의 모습은 연인 같은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이 영상을 보고 나니 고소인의 주장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소인과 A씨를 각각 따로 불러 당시 상황과 구체적인 정황에 대해 물었다.
 
■ 고소인 남편의 출소로 드러난 사건의 전말

 

조사 과정에서 고소인과 A씨가 성관계를 가진 이후 고소인의 남편이 출소한 사실을 알게 됐다. 출소한 남편은 우연히 아내인 고소인과 A씨 간의 관계가 연인관계로 발전해서 성관계까지 가진 것을 알게 됐다.

 

나는 고소인이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A씨와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지고도 허위로 고소한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고소인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당신의 말을 다 믿고 싶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믿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당신과 A씨가 성관계를 한 것은 남편 입장에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고, 고소인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어놓고 이제와서 허위로 고소하여 A씨가 강간죄로 처벌된다면 그건 더 큰 잘못을 하는 것이다. 만약 고소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면 사실대로 말해주기 바란다”

 

한참을 조사하다가 밤 아홉시쯤 됐을 때였다. 조사를 받던 고소인이 펑펑 울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남편이 구속된 상태여서 너무 힘들고 외롭고 의지할 사람이 없다보니까 A씨와 가까워졌고 남편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가지게 됐고 그러다보니까 성관계까지 가지게 됐다. 너무 후회스럽다. 하지만 남편에게 사실대로 이야기 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30분 동안 눈물을 쏟아내면서 고백한 진실은 이렇다.

 

출소한 남편이 자신과 A씨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성관계를 했는지 캐묻자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인정을 했다. 그런데 남편이 구속돼 있는데 바람이 났다고 하면 면목도 없고 맞아 죽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사실과 달리 강제로 당한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그러면 고소하자는 남편의 말에 따라서 고소를 하게 된 것이다.
 
결국 나는 A씨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하고 고소인은 고의로 멀쩡한 사람을 죄인으로 몬 죄, 즉 무고죄로 기소했고 결국 유죄가 선고되었다. 고소인의 무고 혐의는 죄질이 매우 좋지 않았지만 구속하지는 않았다.

 
남녀간 애정관계 및 사회적 이해관계가 결부된 성범죄는 수사와 사건처리가 까다롭다. 사진은 영화 '해피엔드'
 

■ 성범죄 사건에 대한 인식변화가 수사의 어려움으로 작용

 

대개 고소인의 주장과 피고소인의 부인 진술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검사, 수사관, 판사도 피해를 봤다는 여성을 대체로 믿게 돼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그런 피해를 당했다고 허위로 지어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

 

성범죄 수사가 굉장히 어려운 이유다. 이 사건처럼 남편과의 관계 때문에 불가피하게 허위로 고소할 수 밖에 없던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금전적 이유로 합의하에 가진 성관계를 강간이라고 주장하는 사례도 있었다. 비록 아주 일부이긴 하지만 모든 사건에서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이라고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최근에는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변했다. 예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거의 하늘과 땅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처벌 수위도 과거에 비하여 지금은 형량이 2~3배 이상 늘었다.

 

피해자를 조사하거나 재판에서 증언하는 것이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급적 피해자는 한번의 조사로 종결되게끔 되었다. 법정에서 증언을 여러 번 한다거나, 피해자가 경찰에서 한번 조사를 받았는데 검찰에서 다시 조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아주 예외적으로만 인정되고 있다.

 

■ 여성인 피해자의 ‘가짜주장’ 의심 금기시되는 풍토는 문제

 

피해자 보호 강화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 때문에 극소수 사건이기는 하지만 허위로 고소한 피해자의 주장을 확인하기는 매우 어려워졌다.

 

언젠가부터 여성인 피해자의 진술을 믿지 않고 의심하는 것이 수사기관에서 매우 금기시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까 자칫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강간으로 몰려 무고한 죄인을 낳을 수도 있는 그런 위험성도 커진 것이다.

 

100건, 1000건 중 한 두 건 있을 수 있는 잘못된 고소사건은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걸러져야만 되는데 그렇지 않을 않을 가능성이 생겨버린 것이다.
 
2차 피해는 반드시 막아야 되는게 맞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정말 가해자인지 명학하게 규명하는 것 또한 형사소송에서 중요한 목표가 되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강간사건에서 검사가 혐의없음 처분을 하거나 오히려 고소인을 무고로 기소할 할 경우 여성 시민단체에서 들고 일어나 검사의 처분을 비난하는 일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검사는 이럴 때 참 괴롭다. 그냥 여론대로 처분하면 뭇매를 맞을 일이 없겠지만 진실에 대한 판단이 여론과 반대일 때, 큰 고민에 빠지게 된다.

 

증거로 사실관계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사건이라면 검사가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만, 상당수 사건은 당사자의 상반된 주장만 있을 뿐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 애매한 상황에서 검사는 신념에 따라 처분을 해야 하는 것이다.

 

원래 검사에게 주어진 사명, 의무는 여론 등 외부적 환경과 관계없이 스스로 독립적으로 열심히 수사해서, 수집된 증거에 따라 판단하고, 그 판단대로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사건에 대한 검사의 처분, 판사의 판결을 놓고 정치‧사회적 입장에 따른 비판과 논쟁으로 비화되는 일이 잦아졌다.

 

검사의 결정, 판사의 판결이 소신대로 이루어지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사회풍토.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나라의 법치주의를 생각할 때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