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군 이야기 (20)]강원도 떠나 오산 기지로, 신임 정비과장이 불러온 '암흑시대'

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0.03.30 14:18 |   수정 : 2020.03.30 14:18

바라던 '전출명령' 받았지만 또 다른 시련이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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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3번 째 겨울을 맞이하고 다음해 1월 말이 되었다. 역시 혹한, 폭설과 싸우던 어느 날, 상급부대에서 전출명령이 내려왔다. 대대장이 필자를 대대장실로 호출했다. “그동안 고생 많이 했네! 가서 더욱 능력을 발휘하게!” 막상 전출명령을 받아보니, 기쁜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교차했다. 두려운 마음이란 다름 아닌 ‘과연 상급부대에 가서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동안 작은 부대의 생활에 익숙해진 탓일까? 어느새 우물안 개구리가 되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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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기지에서 대위로 진급한 후인 어느 여름날 사무실에서 [사진=최환종]

 

중대원들이 환송 회식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이곳 강원도 부대에서 3년간 강풍, 혹한, 폭설 등 힘든 추억을 안고 떠나면서 ‘다시는 이쪽으로 오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상급부대로 향했다. 상급부대 위치는 ‘오산 기지’이고, 새로 주어진 직책에서 1년간 생활은 강원도 부대와는 차원이 다른 또 다른 경험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 해 연말에 필자의 진로가 바뀌게 된다. 여러 가지가 복합된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강원도에서 3년 생활했더니 '강원도 사투리' 입에 배 

 

한편, 강원도에서 3년을 생활하면서 몸에 배인 것은 ‘강원도 사투리’다. 필자가 처음 강원도 사투리를 접했을 때는 그 억양이 매우 낯설었다. 필자가 처음 접한 강원도 사투리(억양)는 때로는 상대방을 하대하는 말 같기도 하고, 의문문 같기도 하고, 문장이 끝난 것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갈 때가 많았다.

 

초기에는 강원도 사투리에 적응이 안되었는데, 강원도 부대에서 근무한지 몇 개월이 지나면서 필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투가 강원도 억양으로 바뀌었음을 강원도가 고향인 동기생이 얘기해서 알게 되었다. 그 동기생 왈 “언제 강원도 사투리를 배웠어?”

 

강원도를 떠난지 꽤 많은 시간이 흐른 후, 6.25 당시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았는데 등장인물들은 강원도 사투리를 정말 잘 구사했다. 순간 오랜만에 듣는 강원도 사투리가 무척 반갑고 정겨웠다. 임관 이후 3년간 강원도에서 근무할 때는 느끼지 못하였지만(그리고 떠나면서는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강원도 사투리에 익숙해지고, 강원도가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음을 느꼈다.

 

오산기지 첫 보직은 '정비과 선임장교', 업무 적응에 어려움

 

강원도 부대를 떠나서 상급부대가 있는 ‘오산 기지’로 가게 되었다. ‘오산 기지(또는 ‘오산 비행장’)는 행정구역으로 따지면 대부분이 평택시(과거에는 송탄)에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산 비행장’으로 불리게 된 배경은 미군들이 ‘송탄’이라는 발음이 어려워서 발음이 쉬운 인접 도시인 ‘오산’을 비행장 명칭으로 불렀다는 데에 기인한다고 한다. (필자는 앞으로 ‘오산 기지’라고 표현하겠다.) ‘오산 기지’는 필자에게는 제 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오산 기지에서 소위 시절을 제외한 전 계급의 직책에서 근무했었고, 그만큼 오랜 기간 생활했고 정도 많이 들었다.

 

1월 중순에 오산기지의 상급부대로 가서 보직 신고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주어진 직책은 ‘정비과 선임장교’! 새로운 직책을 부여받고, 의욕적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대대에서 하던 업무와 장군이 지휘하는 부대의 업무는 차원이 달랐지만, 빠른 시간내에 업무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과 중위 계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봄이 되면서 정비과장(중령)이 새로 부임했는데, 신임 정비과장이 오면서 필자의 생활은 암흑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당시 필자는 중위, 과장은 중령! 계급 차이도 차이지만, 정비과장의 업무 스타일은 매우 독특했다. 보고서를 작성해서 가져가면 글씨를 못 쓴다느니(당시에는 손으로 글씨를 써서 기안했다), 철자가 틀렸다느니 등등 부서원들(필자보다 계급이 낮은) 앞에서 필자가 무안함을 느낄만큼 지적을 하는 것은 수시로 있었고, 가르쳐 주는 것은 없었다.

 

낮에는 사라졌다 나타나는 신임 정비과장, 불합리한 야근 많이 해 

 

그리고 낮에는 어딘가 사라졌다가 오후 3~4시쯤 되면 사무실에 와서 그때부터 이것저것 점검하면서 일하라고 다그치는데, 그때 의미없고 불합리한 야근을 참 많이 했다. 일과 후 퇴근(자유시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 해는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Summer time’ 제도를 시행했는데, 필자는 출근은 일찍하고 퇴근은 기약이 없는 그런 한 해를 보냈다. 그러다보니 오산 지역 동기생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생각도 못했고, 퇴근 이후 자유시간은 거의 없었다. (당시 오산 기지의 다양한 부대에서 근무하는 필자의 동기생들은 대부분 퇴근 이후에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필자의 사무실 분위기를 아는 동기생, 선배들이 가끔 찾아와 차 한잔 하면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유일한 마음의 휴식시간이라고나 할까? 간혹 야근(?)을 일찍 마치고 나갈 때 과장이 필자에게 ‘술 한잔 하자’고 할 때가 있었다. 나는 쉬고 싶은데 어쩔 수 없지......  그러나 그 술자리에서도 해괴한 지적 내지는 자기자랑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술값을 과장이 내었는가? 그것도 아니었다...상급부대 업무가 쉽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당연히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난관을 헤쳐나갈 각오도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군대가 ‘상명하복’을 생명과 같이 여긴다지만 이건 아니었다. 불합리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다 보니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야? 내 능력이 이것 밖에 안되나? 매일 지적이나 받고.’ 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고, 엄청난 회의감을 많이 느꼈던 한 해였다. 누구나 그렇듯이 군 생활이나 사회생활이나 어려울 때가 여러 번 있을 것이다. 필자에게 군생활 중 가장 어려운 시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필자는 주저없이 ‘정비과 선임장교였던 그 해’를 꼽는다.

 

어느덧 여름이 되었고, 필자는 대위로 진급했다. 대위 계급장을 전투복에 달면서(그때는 필자가 손으로 바느질을 해서 달았다), 계급에 대한 많은 중압감을 느꼈다. 그런데 대위 진급 이후에도 ‘회의감’은 없어지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과연 내가 통신특기 장교로서 성공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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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최환종 칼럼니스트기자 3227chj@naver.com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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