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군 이야기(19)] 강원도에서의 초급장교 생활④ 포효 못했던 맹수의 심정과 아찔했던 침투훈련

최환종 기자 입력 : 2020.03.23 15:12 ㅣ 수정 : 2020.03.23 15:12

'기만용'으로 여겼던 지뢰지대 대신에 철조망을 넘었던 건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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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리스트] 강원도 부대 생활이 어느덧 3년차로 접어들었다. 부대 생활은 계절별로 똑같은 일과가 반복되기에 익숙해지고 있었고, 자연과의 싸움도 웬만큼 적응이 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혹한, 폭설, 강풍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2년차 봄에 공군작전사령부 전투태세 검열을 받은 이후에는 대대장의 인정을 받게 되었고, 부대원들과도 한층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작은 부대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는 것이 왠지 모르게 답답했다. 큰 부대에서 보다 많이 배우고 익혀서 더 높이 나래를 펴고 싶은데, 이렇게 작은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으니 내 스스로가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규모가 큰 부대에서 근무를 해야 장비(레이다)에 대해서도 더 많이 배우고, 대인관계도 더 넓힐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통신 특기를 부여받은 다른 동기생들은 2년차에 접어들면서 모두들 큰 부대로 전속하였으니 필자가 답답해 했던 것도 당연했을 것이다.

 

연말에 부대내에서 중대원들과 함께 [사진=최환종]
 

타부대 전출은 2년 차 가을에 얘기가 있긴 있었다. 같은 대대급 부대라도 임무와 장비에 따라서 일하는 수준이 다른데, 그때 전출이 예정되었던 부대는 대대급 부대 중에서도 임무 중요도가 상위권에 속하는 부대였다. 물론 장비도 다르고. 그 부대에 가면 장비에 대해서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중대장 이하 중대원들과 전출회식까지 마친 상태였는데, 며칠 후에 ‘전출 취소’라고 통보가 왔다. 이유는 모른다.

 

그때 심정은 참으로 답답했다. 필자가 유배를 간 것도 아니고 강원도 골짜기에서 3년째 근무라니!  당시 대대장은 앞서 ‘영하 55도일 때 순찰을 지시’했던 분인데, 대대장에게 면담 신청을 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대대장은 여기저기 전화를 해 보더니 필자에게 ‘이미 결정이 나서 방법이 없다. 1년간 나와 같이 더 근무하자’라는 취지의 말을 하며 필자를 다독였다. (이로부터 1년 후 이 대대장의 도움으로 상급부대로 보직을 옮기게 되었다.)

 

필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3년차 근무에 매진했다. 그러나 필자의 마음은 ‘야생에서 뛰어다니지 못하고 우리에 갇혀있는 듯한, 마음껏 포효하지 못하는 맹수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답답한 심정이었다.

 

한편 3년차도 혹한, 폭설, 태풍 등의 악기상과 싸우면서 지나갔고 어느덧 겨울이 다가왔다. 예년과 같이 초겨울의 어느 날, ‘독수리 연습’이 실시되었고, 필자가 근무하는 부대에도 ‘가상 적 침투훈련’ 날짜가 하달되었다. 침투훈련 날짜를 일주일 정도 앞두고 대대장이 특별 지시를 하였다. “금일 야간에 장교 1개조가 가상 적이 되어 부대 밖에서 부대로 침투하는 훈련을 실시한다.” 가상 적 침투조에 필자도 선발이 되었는데, 부대에서 오래 근무했고 지형지물을 잘 아는 장교를 포함해서 선발하라는 대대장의 지시가 있었다(이 대대장은 ‘영하 55도일 때 순찰을 지시’했던 그분이다). 필자가 당시 이 부대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장교였으니 당연히 선발되었다.

 

그날은 월광이 50%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은밀 침투하기에는 상당히 좋지 않은 조건이었다. 야간 기온 강하에 대비해서 복장을 단단히 갖추고 부대 밖으로 나갔다. 중대원들은 “잘 침투해 보세요!”라며 격려 반, 농담 반으로 얘기한다. 가상 침투조는 3명으로 구성되었고, 필자가 제일 막내였다. 가상 침투조 3명은 침투 지점을 3군데 지정하고 부대 외곽 멀리 나갔다 다시 접근하기로 하였다(철조망 5미터 이내로 근접하면 침투에 성공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그러나 부대원들도 어디가 취약한지 알고 대비했기에 침투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일몰 후부터 부대 밖으로 나가서 거의 밤 12시 쯤에 상황종료가 되었다. 상황종료가 될 즈음, 우리 침투조 3명은 추위와 눈 때문에 매우 지친 상태였다. 당시 위치는 부대 반대편 끝이었다. 부대 반대편 끝에까지 간 우리는 이제 부대로 복귀해야 하는데, 여기서 잊지 못할 일이 있었다.

 

즉, 필자의 부대는 당시 육군 부대와 인접해 있었고, 축구장으로 표현하면 축구장 반은 필자의 부대이고 나머지 반은 육군 부대였다. 하프라인이 두 부대의 경계선이고, 철조망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각 부대의 정문은 하프라인 한쪽 끝에 인접하여 각각 위치하고 있었고(즉, 하프라인 한쪽 끝을 점 A, 다른 한쪽 끝을 점 B라고 하고, 각 부대 정문은 점 A 부근에 인접하여 있다고 생각하자),  별도의 후문은 없었다.

 

지형 특성상 부대를 외곽에서 한바퀴 돌아보려면, 부대 정문(점 A)으로 나간 후에 반시계 방향으로 가서 부대 반대편(점 B)까지 갔다가 다시 시계방향으로 부대 정문(점 A)으로 돌아와야 한다. 물론 육군 부대 쪽으로 돌아가도 되지만 그쪽은 지형이 더 험하다. 또 지뢰도 매설되어 있었다.(그러나 당시 우리는 지뢰매설이 단순히 기만용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부대 반대쪽 끝까지 간 우리는 부대 복귀 방법을 놓고 잠시 토론은 했다. 1안은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자. 2안은 육군 부대 쪽으로 돌아가자(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뢰는 없다고 생각했다). 3안은 이 지점에서 철조망을 넘어가자. 토의결과 시간을 가장 아낄 수 있는 3안으로 시행했다. 대학때 산악반이었던 선배 장교가 시범을 보이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서 철조망을 넘어서 부대로 복귀했다.

 

한편, 2안을 시행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지뢰가 실제로 매설되어 있음을 몇 년 후에 알았고, 부대원이 실수로 지뢰지대에 들어 갔다가 지뢰를 밟아서 부상당한 사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육군 부대는 그로부터 10여 년 후에 공군으로 소속이 바뀌었고(이 얘기는 후에 자세하게 언급하겠다), 필자가 장군으로 진급하고 여단장이 되었을 때 그 부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우연치고는 소설 같은 우연이다. (다음에 계속)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