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4) 회자정리(會者定離)와 굼벵이의 '구르는 재주' 발견
김희철 칼럼니스트 | 기사작성 : 2020-01-23 10:56   (기사수정: 2020-01-2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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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부대 내 노후 된 막사 외부의 주변환경(좌측)과 당시 생활관 내부의 유일한 보온시설 이었던 페치카 화구안에 조개탄을 넣는 모습 [사진자료=3사단/김희철]
‘생자필멸(生者必滅),거자필반(去者必返),회자정리(會者定離)’는 세상사의 진리

사단 구원투수로 칭찬받았지만 전출간 친구의 빈자리는 허전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부재자 투표가 끝나고 정상적인 부대운용으로 돌아오자 사단에서는 GOP교대 준비 지시가 하달되었고 연대는 GOP투입전 교육을 시작했다.

필자가 속한 대대는 예비로 지원임무가 하달되었고, 신원조회가 통과된 일부 간부 및 병사들은 GOP투입부대의 인원보충을 위해 전출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인접 10중대장으로 근무하던 동기 고(故) 한황진 대위([김희철의 직업군인 이야기](35) ‘호국보훈의 길에도 통하는 미스트롯을 키운 힘’ 참조)는 GOP투입 대대로 떠났다.

생자필멸(生者必滅, 산 사람은 반드시 죽고), 거자필반(去者必返, 떠나간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며),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헤어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정한 이치이다)라는 명언처럼 “모든 것이 무상함을 뜻한다”는 법화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부재자 투표로 늦어진 GOP투입준비 때문에 공식적인 환송회식도 못하고 그를 아쉽게 떠나 보내야 했다. 승리부대 전입동기로 2년전 GP장 시절부터 정도 많이 들었는데…, 적과 대치하는 GOP중대에서 건강하게 근무 잘하고 기회가 되면 침투하는 간첩을 잡아 영웅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했다.

그가 떠난 지 일주일이 되자 다른 대대는 GOP투입 준비에 바쁘게 보내고 있었지만 필자가 속한 대대도 전투준비 및 부대관리에 대한 사단 감찰검열이 있어 정신이 없었다.

다행이도 새롭게 보강된 대대작전장교 지동수 소령(전 사단교육장교)이 치밀하고 깐깐하게 준비했고, 대대장의 명확한 지도가 있어 수감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감찰참모가 검열결과 강평시 구원투수로 부임해 나름의 역할을 한 작전장교와 보직 해임된 중대에서 몸부림을 쳤던 필자를 칭찬해주어서 보람을 느꼈으나, 왠지 GOP투입부대로 전출 가버린 인접 중대장 동기생의 빈자리가 너무도 허전했다.

‘상호 현상태보존' 원칙을 안지킨 막사는 폐허 수준
문제병사 전입 많아 180명으로 늘어난 중대원 관리에 난감

드디어 GOP부대 교대가 이루어졌다. 중대는 대성산 전방에 위치해 유격장을 담당했던 부대에서 예비임무인 적근산 후사면의 좁고 깊은 골짜기 지역으로 이동했다.

부대교대는 많은 에피소드를 낳는다. 상급 부대에서는 부대교대 원칙인 ‘상호 현상태 보존 후 인원만 이동’을 강조했다. 이것은 노후 된 막사 생활을 위해 시설을 보강하고 소소하게 설치했던 편의시설과 부착물들을 그대로 남겨놓아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방지하자는 지침이었다.

그러나 교대전에 지휘관들은 사전 협조회의에서 이 원칙을 준수하기로 상호 약속하지만 부대원들은 새롭게 이전한 부대에서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모두 떼어갔다.

따라서 상호교대 후에 지휘관들은 교대전 좋은 관계에서 교대후에는 서로 불편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당시에도 부대 이동후 인수한 막사에 들어서니 거의 폐허 수준이었다.

이른 봄의 문턱에서 기온은 약간 올라 낮 양지녁에는 따사하지만 밤이 되면 전방 골짜기의 삭풍은 막사안에서도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중대원들은 1~2년 뒤에 또 이동할 막사이지만 내 집으로 생각하고 정리를 시작했다.

마치 신축 건물에 입주한 것처럼 모든 것을 새롭게 보강해야 했다. 전방의 봄은 오히려 겨울보다 더 춥다. 그래서 창문에 바람 막는 문풍지도 붙이고 당시 유일한 보온 수단이었던 페치카도 보수하는 등 분주하게 편의시설을 보강했다.

그러던 중 부대원이 하나 둘 씩 늘어났는데, 그 이유는 GOP투입은 하였지만 추후 신원조회가 불분명하거나 사고뭉치로 판단된 병사들이 GOP에 적응을 못하고 예비인 필자의 중대로 전입오기 때문이었다. 지난 사단의 감찰검열 이후 연대에서는 부적격이나 GOP근무에 회의를 품은 병사들까지 타 중대도 있는데 모두 필자의 중대로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소대장과 선임하사관들은 전입 면담부터 이러한 문제사병 관리에 짜증을 내고 있었고, 연대에서 중대장인 필자를 믿고 맡기는 것도 좋지만 이런 전입자를 포함한 중대원이 180명까지 늘어나자 시설도 부족하고 신상 등의 부대관리에도 부담감이 늘어나 난감할 지경이었다.

▲ 중동부전선 GOP철책과 우측, DMZ 에서 국군장병들이 지뢰와 폭발물을 제거하는 모습 [사진자료=국방부]
폭우로 전방 GOP철책 150m가 전도되어 경계에 취약점 발생

GOP근무 '부적격 병사'가 맹활약해 공사기간 단축에 기여

부적격 병사는 '구르는 재주' 가진 굼벵이

어느덧 여름이 되어 폭우가 일주일 동안 쏟아지자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더 중차대한 임무가 부여되었다.

퇴근 후 관사에서 모처럼의 휴일을 즐기던 일요일 밤에 군용 전화벨이 힘차게 울렸다. 중대 막사는 관사에서 약 3분 거리로 인접해 있어 전화가 뜸했는데 그것도 밤에 걸려온 전화라 급박한 위급상황이 발생했는지 걱정이 되었다.

“나 연대장인데, 9중대장 지금 쉬고 있지?”하며 연대장이 대대장도 아닌 중대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그동안의 폭우로 전방 GOP철책이 대규모로 전도되어 다음날 아침에 중대원들을 인솔하여 GOP 철책복구를 위해 투입하라는 지시였다.

필자는 연대장 통화가 끝나고 바로 대대장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대대장도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소대장들을 비상소집 시키고 중대로 들어갔다.

GOP 철책 공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원이었다. 중대원의 3분의 1이 새로이 전입 온 GOP 근무 부적격자로 실제 투입가능한 인원을 선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보안부대 담당관은 부적격자들을 모두 제외한 인원들만 투입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어쩔 수 없이 투입지역에서 근무하다 전입 온 병사와 면담을 했다. 보안부대 담당관의 이야기처럼 그가 변심해서 월북이라도 하면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하지만 이 병사를 제외하고 투입할 때에는 그는 중대원들에게 왕따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다행히도 그 병사는 자신을 꼭 데리고 가달라고 건의했다. 그 지형도 잘 알고 있으며 동기들도 많이 있어 이번 공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간청했다. 소대장들도 그 병사가 중대 전입 후 생활을 잘했다며 포함시키는 것에 동의했다.

결국 “중대장이 직접 관리하면서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면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보안부대 담당관을 강력히 설득하여 투입인원에 포함시켰다.

밤새 공사도구를 점검하여 부족분은 연대에 건의하고 GOP 지역에서는 3인조 행동을 하는 원칙준수를 위해 조편성도 마쳤다. 잠시 눈을 붙인 후 아침에 연대에서 지원 나온 트럭을 타고 출발했다.

공사지역에 도착에서 숙영준비부터 했다. 마침 그 지역은 필자가 DMZ 에서GP 장으로 근무했던 곳으로 작전시 늘 다니던 익숙한 지형이었다. 그곳은 위의 좌측 사진 같이 경사진 곳으로 GOP 철책 150미터 정도가 폭우에 쓸려 내려가 흔적도 없었고, GOP중대에서 경계병을 촘촘히 배치해 놓은 상태였다.

숙영지 편성 중에 공사용 철책들이 도착했다. 현장지도 나온 연대장은 “최대한 빨리 철책을 설치하는데, 2주내에 완료하라”고 강조했다. 아마도 전도된 GOP철책 지역으로 간첩이 침투하거나 변심한 인원들이 월북하기에 용이하다는 취약점이 있기 때문에 불안했던 것 같다.

중대원을 2개 팀으로 편성해서 양쪽에서 동시에 시작하기로 했고 철책설치조, 시멘트비빔조, 운반조, 기타 지원조로 편성했다. 물론 GOP중대의 경계병 외에 일단 유사시를 대비하여 실탄을 휴대한 상태로 자체 경계조도 배치했다.

쏜 화살처럼 일주일이 금방 지나가고 있었다. 소대장은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야간 작업을 건의했다. 보안부대 담당관이 "야간 작업은 병력관리에 특히 위험하다"고 의견을 제시했지만 주간작업만 하는 것은 연대장의 조기 공사완료 지침을 해소하기에는 안일한 조치 같아 야간 작업을 감행했다.

곳곳에 횃불을 만들어 대낮같이 밝힌 상태에서 중대원들은 참으로 열심히 임무를 수행했고 필자는 중대원들이 자랑스러웠다.

특히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속담처럼 GOP근무 부적격자로 낙인찍혀 중대에 전입왔던 그 병사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자신이 근무했던 GOP 소대에서 근무용 간식인 라면과 빵 그리고 추가로 필요한 도구 등을 확보해 중대원들에게 나눠주며 그 누구보다도 동분서주 바쁘게 뛰어다녀 중대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처음에 연대장이 2주로 공사 기간을 한정했던 것 보다 4일을 단축시킨 10일 만에 완료되었다. “남아(男兒)는 자신을 믿고 인정해주는 사람을 위해 충성을 다한다”는 말처럼 굼벵이(?)까지 포함된 중대원들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정확히 129m, 43칸의 철책설치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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