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스토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사랑했던 작가지망생

정승원 기자 입력 : 2020.01.19 22:04 |   수정 : 2020.01.19 22:04

소설 '베르테르'를 사랑했던 작가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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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과 악수하는 신격호 당시 롯데회장. [연합뉴스]


일본서 혈혈단신으로 기업 일으킨 1세대 창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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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정승원기자] 19일 타계한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은 젊은 시절 작가지망생이었다. 그가 세운 기업 롯데는 단테, 셰익스피어와 함께 세계 3대 시성으로 꼽히는 요한 볼프강 괴테의 첫 번째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온 여주인공 샤로테의 애칭 로테(Lotte)에서 따온 것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55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940년대초 유학길에 올라 일본 와세다 실업학교 고등부(지금의 와세다대학 이학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1946년 졸업 후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밀항선에 몸을 싣고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이때만 해도 작가지망생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문학 대신에 사업가의 길을 걷게된다. 1948년부터 사업을 시작한 그는 그해 일본에서 주식회사 롯데를 설립했다. 베르테르가 죽으면서까지 사랑했던 여인 로테가 일본에서 재벌기업의 시초로 재탄생한 것이다.

신 명예회장은 총 3명의 부인을 뒀다. 첫째부인 고 노순화 여사를 비롯해, 둘째부인 일본인 시게미츠 하츠코, 셋째부인 미스롯데 출신의 서미경 씨 등이 그들이다.

신 명예회장은 1940년 동향(경남) 출신의 고 노순화 여사와 결혼을 하지만 1년만에 그가 일본 유학길에 오르면서 사실상 결혼생활은 파국을 맞게된다. 노 여사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1960년 세상을 떴다. 신 명예회장의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노순화 여사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으로 건너간 신 명예회장은 1952년 시게미츠 하츠코(重光初子) 여사와 재혼을 했다. 시게미츠 하츠코 여사의 외삼촌은 시게미츠 마모루(重光葵) 전 일본 외무대신이다. 그는 일본이 패망할 당시 미주리 함에서 목발을 짚고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모습으로 대중에게 각인됐다.

후에 '전범'으로 처벌받았으나 곧 가석방으로 풀려났고, 정계에 복귀해 영향력을 발휘했다. 신 명예회장이 재혼이후 사업에서 승승장구 한 것도, 그의 일본이름이 시게미츠 타케오(重光武雄)인 것도 명문가로 꼽히던 처가댁의 명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신 명예회장은 일본 정계와도 인맥이 넓다. 교도통신은 신 명예회장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외조부로 한일수교에 관여한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 전 총리를 비롯해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1918~2019) 전 총리 등 일본 정치권과도 인맥이 두터웠다고 전하고 있다.

시게미츠 하츠코 여사 사이에서 장남 신동주 전 일본롯데 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회장이 태어났다.

마지막으로 신 회장의 셋째 부인 서미경씨와의 사이에는 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이 태어났다. 서씨는 미스 롯데 1기 출신이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노환이 오기전까지 직접 경영을 챙기면서 일본은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한국은 신동빈 회장에게 맡기는 이원화 체제를 갖췄다. 이원화 체제 과정에서 한국 롯데는 외향적인 신동빈 회장의 지휘아래 꾸준히 성장한 반면 일본 롯데는 발전이 상대적으로 더디면서 힘의 균형은 신동빈 회장 쪽으로 쏠리게 됐다.

롯데그룹 전체를 신동빈 회장이 물려받은 것도 이같은 실적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신 명예회장은 비록 말년에 자식들간의 경영권분쟁을 지켜보고 경영비리 의혹에 휘말려 어려움을 겪었지만 1세대 창업주로서의 품격을 끝까지 지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빈소. 많은 사람들이 그의 타계를 애도했다. [연합뉴스]



교도통신은 1940년대 초반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신 명예회장이 롯데를 설립하기까지 과정을 전하면서 "10대에 혼자 (일본으로) 출국해 일본과 한국에서 거대 그룹을 구축한, 재일 한국인 중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신 명예회장의 별세 소식을 전하면서 "한일 양국에서 매출액 10조엔의 거대 재벌을 구축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전쟁에 짓밟힌 한국을 재건하기 위해 정부와 한 팀이 돼 일한 마지막 사업가 세대 가운데 한 명이었다""이들 세대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별칭의 급속한 산업화를 이끌었다"고 신 명예회장을 추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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