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군 이야기](15) 초급장교 생활...희망을 품고 부임한 첫 임지에서 깨진 고정관념들
최환종 칼럼니스트 | 기사작성 : 2020-01-20 11:02   (기사수정: 2020-02-2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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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위 시절, 복장을 보니 8월 한여름에 촬영한 사진 같다 [사진=최환종]

강원도 첫 임지로 가는 길에 대설 만나 시간 지연

무슨 일이 생겨도 시간 엄수? 군대도 사람 사는 곳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인생이란 우연의 연속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이제까지의 내 삶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이끌려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이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일까?” 첫 임지에서 3년간 배우고 익히고 경험한 것들이 앞으로 필자에게 주어지게 될 많은 임무와 연관이 있게 될 줄은 몰랐다.

작전사령부에서 보직을 부여 받은 후, 필자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임지로 향했다. 그해 4월 중순의 어느 날 오후, 필자는 전투복 차림에 무거운 군용 잡낭(Duffle bag. 아마도 ‘f’ 발음이 어려웠던 사람들에 의해서 ‘더블백 또는 따블백’으로 불려왔던 것 같다)을 들고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강원도 00지역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작전사령부에서 발급한 부임증에는 ‘00년 0월 0일 20시까지 00부대에 부임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날 서울은 약한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시외버스 안에서 졸다가 밖을 보니 주변이 온통 흰색이었다. 순간 ‘강원도는 비가 흰색인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잠을 깨고 다시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세상에! 4월 중순인데 눈이 오다니. 어떻게 보면 이때부터 남들이 잘 모르는 공군 생활이 시작되고 있었다.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흥미진진한 ‘나의 공군 생활’이 ...

잠시 더 졸다가 눈을 떴는데, 버스가 서 있었다. 고속도로 위에. 무슨 일인가 하고 상황을 보니, 고속도로 제설 작업이 지체되어서 차량들이 제자리에 서있는 것이었다. 거북이 걸음으로 버스가 운행하다가 중간 휴게소에 들렀다. 이미 시간은 18:00. 이런 운행속도라면 부임증에 적혀 있는 20시까지 부대에 도착은 어림도 없다.

공중전화로 부대에 전화를 걸어서 “신임 소위인데, 눈 때문에 도로가 막혀서 20시까지 갈수 없다‘고 얘기를 했더니 상대방은(누구였는지, 계급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걱정하지 말고, 부대 근처 마을에 오면 전화하란다. 생도 4년간 ’시간 엄수‘를 철저히 교육받고 생활화했던 필자는 너무 여유 있는 대답에 잠시 적응이 안되었다.

눈은 계속 내렸고, 거북이 걸음으로 가던 버스는 마침내 부대 근처 마을의 작은 버스 정류장에 멈췄다. 그때 시간이 대략 21:30. 눈은 무릎까지 쌓여 있었다. 부대에 전화를 해서 지금 도착했다고 하니까,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부대로 출근하란다. 당시 필자로서는 이해가 안되었다. 군(軍)은 시간엄수가 생명인데 이렇게 해도 되나???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그날 밤에 부대로 갈 수 없음을 확인한 필자는 마을에서 가장 깨끗해 보이는 여관을 찾아 짐을 풀었다. 그런데 여관 주인이 양초를 하나 준다. 정전이 되었으니 방에 촛불을 켜라고. 마을 도로에는 가로등이 켜 있었는데, 이 여관만 정전인가보다. 다시 60년대 시골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4월 중순에 내리는 눈, 부임시간에 별 관심 없는 부대원, 여관에서 주는 양초 등등... 신임 장교의 눈에는 많은 것이 신기했다.

모두 '엄한 상급자'? '자상한 ' 중대장도 있어

여관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받아보니 필자가 배치받은 부대의 중대장(즉, 필자의 직속상관)이라 하면서, 00다방에 있으니 나오라고 한다. 직속상관 명령인데 즉각 나가봐야지. 재빠른 동작으로 옷을 갈아입고, 00다방에 가서 중대장을 만났다. 중대장 얘기인 즉, ‘오후부터 눈이 많이 내려서 퇴근 버스 운행이 중지되었고, 중대장은 필자가 오늘 부임하는 것을 알고 있어서 필자를 만나기 위하여 걸어서 퇴근했다’는 것이다. 사관학교에서 배운 상급자는 엄한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이런 분이 있다니. 이래저래 그날은 필자의 ‘공군에 대한 관념’이 바뀌어지기 시작한 날이었다.

그리고 중대장이 필자에게 묻는다. ‘최 소위! 맥주 한잔 하겠나?’. ‘네, 감사합니다.’ 그날 저녁은 이런저런 얘기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날, 부대로 가는 트럭(정확히 표현하면 트럭과 버스를 합한 그런 형태다)을 타고 부대로 향했다. 전날 확인한 사항이지만 부대는 마을과는 꽤 떨어진 곳에 있고, 마을에는 부대원 가족들이 거주하는 군 아파트가 있을 뿐이었다.

부대에 도착했다. 같은 중대의 선임장교가 대대본부에 가서 신고준비를 하라고 하는데, 내 눈에는 대대본부가 어떤 건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건물이 창고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 부대는 전시(戰時)에 이동을 하는 부대라 모든 건물을 조립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사관학교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사항들이다. 더구나 필자는 비행단은 가봤어도 이런 소부대는 가본 적이 없기에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아무튼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을 출발하면서 놀라움의 연속이다.

전자장비 관련 보급이 첫 업무, 영관급된 후 그 가치 깨달아

혈기왕성한 신임 소위가 소부대에 가자마자 특별히 할 일은 없었다. 이 부대는 전자통신 관련 부대로서, 지상전투가 아닌 ‘첨단 전자장비’를 운용하는 것이 주임무인 부대에서 신임소위는 작은 부서의 ‘관리자’였을 뿐이다. 필자에게 처음 1년 간 주어진 임무는 전자장비와 관련한 보급 업무였다. 처음에는 보급 업무가 대단히 따분하고 ‘나는 통신 장교인데, 이런걸 왜 해야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훗날 영관 장교가 되면서 이때의 보급 업무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보급 업무의 흐름을 안다는 것은 계급이 올라갈수록 필자에게 대단히 도움이 되었다.

특히 중령 진급 후, 한미연합사령부에서 근무할 당시, 연합작전계획을 공부하면서 전쟁수행에서 ‘군수(보급)’의 비중이 엄청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군수업무를 경험하지 않은 많은 이들에게 군수(보급)의 개념을 이야기하면 ‘의식주 정도를 지원하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큰 그림에서 볼 때 ‘군수’는 실로 어마어마한 개념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전쟁 = 군수’라고 할 정도다.

한편 부임 후에 필자에게 주어진 중대장의 첫번째 지시사항은 ‘관련 규정’부터 공부하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가 하고 있는 업무가 규정에 따라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술 잘먹는 장교가 일도 잘한다"는 속설이 군림하던 시절

한편, 사관학교 4년간 술, 담배 등을 하지 않았던 필자는 임관 이후부터 술을 배웠다.사관학교에서는 3금(禁) 제도가 있는데, 이에따라 생도생활 4년간 세가지(술, 담배 등)는 금지사항이다. 그러나 담배는 배우려 해도 몸에서 받지 않았는데, 담배를 배우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 생각한다. 술도 건강에는 좋지 않다고 하지만 담배는 그야말로 백해무익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 당시 분위기는 ‘술을 잘 마시는 장교가 일도 잘한다’는 다소 억지스런 주장이 인정되던 때였다. 필자도 일과 이후에는 마을에서 선배 장교들과 ‘누가 누가 술을 많이 마시나’ 하는 경쟁을 벌이다시피 했다. 어떤 면에서는 강원도에서의 초급장교 시절이 필자의 군 생활 기간 중 가장 마음 편할 때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다음에 계속)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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