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1) 분노로 떨리는 손끝에서 떨어지는 낙담의 담뱃재…
김희철 칼럼니스트 | 기사작성 : 2019-12-30 15:22   (기사수정: 2019-12-3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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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최저 기온을 기록하는 눈 덮힌 대성산 정상에서 바라본 민촌과 삼천봉 및 적근산 그리고 DMZ너머 이북 지역의 첩첩산중 [사진제공=동영상 캡처/연합뉴스]
해임통지도 못 받았던 전임 중대장은 결혼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1984년 12월 18일 유난히도 살을 애는 듯한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 날씨 속에서 전임자 없는 중대장 취임식을 했다.

왠지 출발부터 썩 개운하지 않았다. 마치 소대장 시절에도 갑자기 대대장이 호출하여 명을 받고 지휘문제로 전 소대장이 해임된 GP장으로 급하게 취임했던 기억([김희철의 직업군인 이야기] (30) GOP부대의 ‘노루’ 트라우마와 GP의 '배신자들' 참조)이 떠올랐다. 필자는 문제가 있는 부대, 전 지휘자가 해임된 부대 위주로만 취임하는 전담 지휘관이 된 기분이었다.

취임식 후 며칠이 지났을 때, 부임한지 6개월 밖에 안되었지만 해임통지도 못 받았던 전임 중대장은 결혼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했다. 필자보다 임관이 5년 빠른 삼사출신 군선배였다. 그는 휴가전에 자신이 근무하던 자리에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중대를 지휘하는 필자를 보면서 얼마나 당황했을까?

필자의 경례를 받는 둥 마는 둥…… 아무런 말도 없이 중대 행정반 난로 옆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는 상기된 얼굴로 분노에 떨면서 한 모금 빨고는 부들부들 떠는 손이 내려올 때에 맞추어 낙담에 찬 담뱃재도 힘 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 대대 본부에서 전임자를 호출했다. 그는 타대대 참모장교로 보직이 결정되었고 그렇게 쓸쓸하게 떠났다.


영하 28도의 혹한 속에 지휘관 교대 FTX 실시

필자가 부임한 중대는 대성산 서측 방어진지를 담당하는 임무가 부여되어 있었다.

대대에서 새로 부임한 작전장교가 중대장 교체 후 FTX (작전계획 시행훈련) 계획을 수립했다. 하필이면 훈련 일정이 그해 가장 추운 날씨로 기온이 영하28도까지 내려가는 기간 이었다.

전 중대장이 보직 해임된 중대라 간부 및 병사들도 사기는 침체되어 있었지만 혹한을 고려하여 조정해 달라는 말조차도 못할 정도였다. 필자도 갓 취임한 직후이라 부여된 훈련임무를 그대로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주둔지에서 비상경보가 발령되고 중대원들은 완전군장을 꾸리며 생활관을 정리한 후 연병장에 집합했다. 그 와중에 동작이 느리고 요령을 피우는 병사들을 소대장은 심하게 혼을 내고있었다.

병사를 친자식처럼 아끼는 행보관, ‘이런 부대에 왜 사고가?’하는 의구심

마침 중대 인사계(행정보급관) 박무열 원사는 그 모습을 보며 병사를 감싸고 있었고 인사계보다 어리지만 상관 장교인 소대장은 매우 화가 나 있었다.

“소대장님, 때리지 마세요…! 아직 잘 모르고, 서툴러서 그래요….. 이해해 주세요…..”하는 박 행보관의 모습에서 병사들을 자식같이 아끼는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모시던 직속상관인 중대장이 보직 해임되는 안타까움도 있었겠지만 부대의 어머니로서 역할을 잘 하고 있었고, 사위가 타부대에 근무하는 대위였다고 했다.

‘시졸여애자 고 가여지구사(視卒如愛子 故 可與之俱死)’의 의미인 “장수가 병사들을 사랑하는 아들 돌보듯 한다면 가히 생사를 같이할 수 있다”는 손자병법 지형편을 확인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필자는 병사를 친자식 같이 아끼는 행보관의 모습에서 ‘이런 부대가 왜 사고가 많았지..?’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촉각을 다투는 시간이라 동계군장 상태만 확인하고 진지로 출발시켰다.


FTX 훈련중 심야의 대대장 현장 방문, 고생해놓고도 당혹


진지 투입로는 그동안 계속된 제설작업으로 눈은 치워져 있었지만 북향이라 빙판이었다. 3시간 가까이 군장을 맨 상태에서 제설도구를 추가로 휴대하고 대성산 진지로 올라갔다.

영하 20도가 넘는 추위였지만 등과 이마에는 땀이 흘렀고 진지에 도착하니 쌓인 눈이 교통호를 메워 허벅지까지 빠지는 상태라 바로 제설작업을 했다. 필자는 통신병과 함께 각 소대진지를 둘러보았다.

눈이 많이 쌓인 곳은 키를 넘어 터널을 만들어 통과했고 각 소대진지를 다니니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그래서 소대장들의 작전계획 설명을 간단히 보고받고는 중대원들의 야영준비가 걱정되어 분침호와 산병호(콘크리트로 만든 진지) 안의 정리 상태위주로 확인했다.

중대 OP로 돌아오니 행보관이 도착해 있었다. 5/4톤 통차를 타고 빙판 투입로로 저녁을 추진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게도 교통사고 위험이 상존하는 것이었지만 그때는 병사들의 끼니를 해결하는 방법이 그것 밖에 없었다.

등에는 순찰로 땀이 흥건했지만 손과 발은 얼어 있었다. 특히 눈속을 헤메이다 보니 젖은 전투화는 완전히 얼어 있었다. 신발은 벗어 발을 말리며 식은 국으로 저녁식사를 했는데 얼어붙은 밥알도 맛은 있었다.

행보관이 복귀하고 야간 전투 준비를 했다. 야간에는 추진조를 운용하기 때문에 소규모 병사들이 분리되어 배치된다. 필자는 다시 통신병을 데리고 야간진지를 확인하기 위해 중대 OP방커를 나왔다.

몇시간이 흘렀다. 야간진지 확인을 위한 산악 이동간 발의 열로 얼었던 젖은 군화는 다시 녹았고 등에는 또 땀이 흘렀다. 하지만 얼굴과 장갑낀 손에 부딪히는 대성산 삭풍은 코밑에 고드름을 만들었고 손은 꽁꽁 얼었다.

순찰 및 확인을 마치고 다시 중대 OP 벙커로 돌아오자 피로가 엄습했다. 그때 통신병이 옆 소대 전화기가 불통이라고 보고했다. 각소대의 인원장비 이상유무를 확인하고 취침에 들려다가 걱정이 앞섰다.

책임감이 강한 통신병은 단선이 난 것 같다며 전선과 전화기를 들고 확인하러 출발했다. 필자는 너무도 피곤하여 침낭속에 몸을 담았다.

그 때 중대 OP 문이 열리며 누가 들어왔다. 호롱불 속에 비춘 모습을 보니 대대장(예비역 소장 양치규, 육사29기)이었다. 그는 엄동설한 속에 작계시행 FTX중인 중대가 걱정되어 직접 현장확인을 온 것이었다.

침낭 속에 잠시 몸을 담았던 필자와 통신병은 급하게 옷을 추리며 일어났고 대대장은 한심한 듯 바라만 보았다.

“9중대장, 인원 장비는 이상 없나..?”라고 질문하며 추위 속에 병력관리 잘하라고 당부하고 떠났다. 하지만 대대장은 "지휘관은 마지막 까지 부하들을 확인해야한다..."는 무언의 교훈을 주는 여운을 남겼다.

아찔한 순간이었고 통신병 진희선 병장(현 서울시 부시장)은 “대대장님 화 나신 것은 아닌가요?”하며 걱정을 하였다.

이미 각 소대진지를 모두 확인하고 필자의 위치로 복귀해 쉬는 중이었지만, 제대로 훈련상황 보고도 못 드렸고 이완된 모습을 보였기에 필자도 첫 훈련에 실망을 드린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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