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영 신화 김우중 전 대우회장 별세

정승원 기자 입력 : 2019.12.10 07:11 |   수정 : 2019.12.10 07:11

세계경영 김우중 전 대우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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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별세했다. [연합뉴스]


세계경영 전도사였지만 외환위기 고비 못넘겨

[
뉴스투데이=정승원기자] 샐러리맨에서 한국 재계서열 2위 그룹을 이끌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향년 8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89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에세이집을 펴내며 세계경영을 알렸던 그는 외환위기 당시 역대 최대 규모의 부도를 내고 해외도피 생활을 하는 등 끝내 명예회복을 하지 못한채 눈을 감았다.

그가 펴낸 에세이집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발간과 함께 수백만부가 필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실제 김우중 전 회장은 한국이 하루빨리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세계경영전도사 역할을 자처하며 당시 재계의 세계화 전략에 밑거름을 제공했다.

그는 만 30세 때인 1967년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섬유 수출업체인 한성실업에서 근무하던 샐러리맨에서 트리코트 원단생산업체인 대도섬유의 도재환씨와 손잡고 수출산업에 뛰어든 것이다.

트리코트 원단 수출로 큰 돈을 만지게된 그는 1973년 영진토건을 인수해 대우실업과 합쳐 그룹의 모기업인 ()대우를 출범했다. 이어 옥포조선소를 인수해 대우중공업으로 간판을 바꿔달았고 대우전자와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를 합쳐 대우전자를 출범시키는 등 그룹의 형태를 빠르게 갖춰 나갔다.

김 전 회장은 박정희 정권 시절 남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남미와 아프리카 시장 진출에 힘쓰며 세계경영의 기초를 닦았다. 이후 1990년대에는 폴란드와 헝가리,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등 동유럽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며 자동차 공장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하며 대우브랜드를 세계에 알렸다.

승승장구하던 김 전 회장은 공격적인 경영과 함께 급격하게 올라간 그룹 부채비율 때문에 외환위기 시절 김대중 정부 경제관료들과 극심한 마찰을 빚었다. 당시 경제관료들은 무리한 확장경영으로 그룹의 사세를 키웠던 그를 개혁의 대상으로 봤고 돈줄인 금융권을 앞세워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 김우중 전 대우그룹회장 발자취. [연합뉴스]



김대중 정부의 요구에 김 전 회장은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을 내놨지만, 19998월 그룹은 끝내 해체됐다. 그룹 해체와 함께 그는 형극의 길을 걸었다.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그는 징역 86, 벌금 1000만원, 역대 최대규모의 추징금 179253억원을 선고받고 영어의 몸이 됐다.

20081월 특별사면된 후 그는 옛 대우그룹 멤버들의 도움으로 베트남에서 청년실업가 양성 프로그램을 이끄는 등 재기를 노렸지만 투병생활 끝에 생을 마감했다. 김 전회장은 17조원에 달하는 미납추징금과 세금 등으로 명예회복에는 실패했지만 그가 남긴 발자취는 사후 재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록 대우그룹은 해체됐지만 대우라는 이름은 지금도 건재하다. 대우건설, 위니아대우(옛 대우전자) 대우조선해양(옛 대우중공업 조선해양부문), 미래에셋대우(옛 대우증권) 등은 여전히 대우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대우그룹 공채였던 대우맨들은 해마다 창립기념일인 322일 기념행사를 열어왔다.

김 전 회장은 2018322일 열린 51주년 행사에 마지막으로 참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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