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뉴 리더] 두산그룹 박정원 회장(상) ‘미완의 중공업기업 완성’이 최대 과제
이상호 전문기자 | 기사작성 : 2019-09-24 07:22   (기사수정: 2019-09-24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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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캐리커처. ⓒ뉴스투데이

삼성과 현대·기아차, LG그룹 등 주요 대기업의 창업주에 이어 2세까지 별세하거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남으로써 창업 3·4세대 경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들 3·4세대는 ▲연령 30~40대의 ‘N세대’이자 Y세대’적인 특성에 ▲외국 유학을 통한 경영수업, 글로벌 의식을 가진 사람들로 각각의 경영철학과 전략으로 새로운 기업문화를 추구하고 있다. 뉴스투데이 는 이와 같은 3·4세대 경영시대의 새로운 기업문화 트렌드를 해당 기업 현장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두산그룹은 2019년 5월 기준, 재계 서열 15위 기업집단이다.

동학농민운동 2년 뒤인 1896년, 고종 임금이 궁궐을 떠나 러시아 대사관으로 도피했던 ‘아관파천’이 있었던 해 8월, 창업주 박승직이 서울 종로에서 창업한 ‘박승직 상점’이 두산그룹의 시초다.

1987년 설립된 동화약품, 조흥은행(신한은행)과 더불어 창업한 지 120년이 넘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오랜 역사를 반영하듯, 2016년 3월부터 창업 4세인 박정원 회장(57)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 왼쪽부터 증조부인 창업주 박승직, 할아버지 박두병 전 회장, 아버지 박용곤 전 회장, 박정원 현 회장 [사진제공=두산, 연합뉴스]

두산, 창업 120년 넘은 최고령 기업

박정원 회장, 창업 4세 경영시대 도달
두산그룹은 포목점으로 시작했다. 창업주였던 박승직은 조선에서 생산되는 포목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수입산 포목까지 취급하여 박승직상점은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박승직상점의 주요 단골들에게 사은품으로 화장품을 제공했는데 반응이 좋자 1916년 공장을 만들어 ‘박가분’이라는 화장품을 생산해 큰 성공을 거뒀다.

이 성공으로 종로의 거상이 된 박승직은 일제로부터 1925년 박승직상점을 주식회사로 개편했다.

1946년 박승직의 아들이자 박정원 회장의 할아버지인 박두병이 두산상회를 세워 주류 생산에 뛰어들었고, 1952년 동양맥주, 약자(略字)로 OB라는 이름의 브랜드를 출범시켰다. 1978년까지 두산그룹의 이름도 ‘OB그룹’이었다.

▲ 2016년 9월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두산베어스 선수들을 격려하는 박정원 두산 회장 모습 [사진제공=연합뉴스]

박정원 회장 재계 뉴 리더 경영능력 평가 최상위권

두산 베어스 ‘화수분 야구’ 같은 ‘화수분 경영’ 추구

박정원 회장은 서울 대일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두산그룹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했다. 입사 후 미국 보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두산그룹 내에서 잔뼈가 굵은, ‘국내통’이다.

두산산업에 입사한 뒤, 동양맥주 과장, 이사, 두산상사BG 대표이사, 두산건설 부회장, 두산모터스 대표이사, 두산 부회장, 두산건설 대표이사 회장, 두산 베어스 구단주 등 그룹 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두산그룹 관계자들은 박정원 회장이 과묵하고 소탈한 성격이라고 말한다. 두산가(家)의 장손이자, 4세들 가운데 맏형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어깨가 무거워져서 생긴 품성으로 보인다.

박 회장의 가장 중시하는 경영철학 중 하나가 ‘인재육성’인데, 현재 그가 구단주를 맡고 있는 두산베어스를 보면 그런 점을 알 수 있다. 두산베어스는 무명 선수를 발굴해 육성하는 ‘화수분 야구’로 KBO 리그를 호령하고 있다.

박 회장의 야구사랑은 유명하다. 고려대 재학 중 야구 동아리에서 2루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야구와 기업경영을 연결해 “기업의 성과는 특정 개인이 아닌 팀플레이에 의한 경우가 많고 이런 팀플레이로 이룬 성과가 훨씬 크고 지속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면에서 경영은 야구와 유사한 점이 많고 야구를 보면서 기업 경영의 시사점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 적도 있다.

박정원 회장은 4년 전 KBS 탐사보도팀이 삼성 이재용 현대차 정의선 등 재계 주요 그룹 뉴 리더 11명의 경영능력을 놓고 실시한 전문가 50명의 조사에서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에 이어 2위로 평가받은 바 있다.

두산그룹의 기업 순위에 비해 총수의 경영능력은 ‘최상위권’이라는 것이다.

▲ 두산중공업이 국산화한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의 최종 조립 공정 모습 [사진제공=두산중공업]

‘중공업기업, 두산그룹 완성’이 가장 큰 과제

최근 발전용 가스터빈 독자개발로 ‘박차’


박정원 회장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중공업 기업으로서의 ‘두산그룹’을 완성하는 일이다. 이와 관련, 최근 두산그룹에 큰 경사가 있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 18일 독자 개발한 ‘한국형 발전용 가스터빈’이 국산화 현장을 공개했다. 2013년 가스터빈 개발에 뛰어든 후 6년, 총 1조 원의 연구개발비가 투입된 국책과제인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초도품의 최종 조립행사였다.

발전용 가스터빈은 부품만 4만여 개에 달해 ‘기계공학의 꽃’으로 불린다.

음속의 1.3~1.4배 속도로 회전하기 때문에 1500도 이상 고온에서 견딜 수 있는 초내열 합금 소재가 핵심 기술이다. 또 복잡한 형상의 고온 부품을 구현하는 정밀 주조 능력, 대량의 공기를 압축하는 기술 등이 필요하다.

독자 개발한 가스터빈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두산중공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가스터빈은 두산중공업의 숙원 사업이었다. 2013년 이탈리아 기업 인수·합병(M&A)을 추진했다. 하지만 “가스터빈은 국가 전략사업”이라며 팔려 하지 않았다. 두산중공업이 독자 개발한 ‘S1’ 모델은 효율과 성능에서 미국·독일 등에 뒤지지 않는다. 2030년까지 신규 복합발전소에 한국형 가스터빈을 사용할 경우 약 10조원의 수입대체 효과가 기대된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사고’ 후 식품 등 경공업 정리

두산그룹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기술소재사업, 정보유통사업, 생활문화사업 등 경공업 위주였다.

OB맥주를 비롯, 코카콜라를 유통하던 두산음료, 두산백화, 두산경월, 병뚜껑을 만드는 삼화왕관, 두산상사는 폴로 랄프 로렌 같은 의류에 월풀의 세탁기까지 수입했다. 유가공사업(두산유업)과 즉석김치(두산종합식품)까지 손댄 적도 있었다.

1982년 프로야구단 OB 베어스를 창단하고, 1985년에는 동아출판사 및 동아인쇄공업을 인수해 출판·인쇄업에 진출하기도 했다.

두산그룹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은 1991년 발생한 이른바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이다.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두산전자가 낙동강에 유독성 화학물질인 페놀을 유출, 낙동강을 상수원으로 하는 대구·경북, 부산 경남 지역에서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등 큰 위기에 직면했다. 당시 두산그룹의 OB맥주, 코카콜라, 버거킹, KFC, 네슬레, 코닥, 3M 등 소비재는 물론, 부동의 맥주시장 1위였던 OB맥주가 직격탄을 맞게 된다.

이 사건으로 창업 3대 장자이자 박정원 회장의 부친인 박용곤 회장이 물러나고 기업 이미지 쇄신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지만, 1995년 적자규모 9000억 원, 부채비율 625%로 창사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OB맥주' 등 가업포기 놓고 형제 간 반목도

1996년 두산가(家) 3세들은 그룹의 미래를 건 가족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그룹의 뿌리인 식품 등 소비재 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회의였다.

큰형이던 박용곤, 둘째 박용오는 소비재 산업을 버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집안의 뿌리나 다름없는 OB를 버리는 것은 가문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라며 완강히 반대했고 셋째 박용성, 막내 박용만 등은 "다 죽게 생겼는데 가업(家業)이 무슨 소용이냐"며 되받아쳤다고 한다.

형제 간의 갈등이 그룹 전체로 번져나가면서 3남 박용성, 5남 박용만이 차남 박용오를 회장 자리에서 퇴출시켰고 박용오는 박용성과 박용만을 비자금 조성과 탈세혐의로 고발하는 등 집안싸움이 벌어졌다.

형제 간의 싸움은 "지금 상태면 3개월 안에 그룹이 망할 수도 있다. OB맥주의 매각을 고려해야 한다"는 미국 컨설팅 업체 맥켄지사의 경고로 마무리됐다.

마침내 창업 3세대의 장자인 박용곤이 맥주를 비롯한 소비재 산업 철수를 결정하면서 두산은 OB맥주를 비롯해 코카콜라, 버거킹, 3M 등 계열사를 매각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000년 이후 한국중공업 등 국내외서 ‘공격적 인수합병’

2000년대에 들어 두산그룹은 인수합병과 비주력 사업부문 매각을 통해 중공업, 플랜트 기업으로 변신했다. 2000년대 초 10년 남짓한 기간 두산그룹의 행보는 공격적이었다.

돈이 되는 주력 기업들, 해외 프랜차이즈 식당 기업들과 종가집 김치까지 몽땅 비싸게 팔아넘기며 실탄을 장전한 뒤, 2001년 한국중공업(두산중공업)을 인수함으로써, 중공업 그룹으로 변신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2003년 고려산업개발(두산건설), 2005년 대우종합기계(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한 두산은 해외에서도 엄청난 인수합병을 이어나갔다.

최근까지, 이루어진 인수합병을 통해 두산중공업을 모태로 글로벌 건설중기, 해수담수화, 발전플랜트 시장 등 글로벌 ISB(인프라 지원산업) 분야를 석권하려는 두산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 [자료=두산, 그래픽=뉴스투데이]

박정원 회장은 총수에 오르기 전부터 두산그룹의 미래와 관련해 중요한 결정을 내려왔다. 1999년 두산 부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상사BG를 맡은 뒤 사업 포트폴리오를 수익사업 위주로 정리, 다음 해인 2000년에 매출액이 30% 이상 늘어나기도 했다.

▲ [자료=금융감독원, 그래픽=뉴스투데이]

유동성 문제가 중공업기업 변신에 ‘발목’

신규시장 개척 등 수익성 확보가 ‘과제’

그는 두산그룹의 성장동력 발굴하는데도 일조했다. 두산 지주부문 회장으로서 2014년 연료전지사업, 2015년 면세점사업 진출 등 그룹의 주요 결정을 주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재계 안팎에서는 두산그룹을 불안하게 보는 시선들이 많다.

2016년 이후 끊임없이 들어 유동성 위기설이 불거지고 있다. 주요 계열사의 실적이 악화되고 만기가 도래하는 채무에 비해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부족해 금융권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2018년 이후 두산중공업, 두산밥캣, 두산인프라코어의 흑자전환으로 분위기가 한결 나아졌다. 특히 두산인프라코어는 중국의 개발 열풍으로 영업이익이 1조원에 육박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한국신용평가는 두산그룹에 대해 계열사인 두산중공업과 두산건설 유동성 위험이 고조되면서 신용도 하방압력이 커졌다고 평가, 우려를 이어나갔다.

한신평은 특히 두산중공업에 대해 "사업기반 및 수익구조 약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신평은 “신한울 3·4호기 등 신규 원전 6기 도입 백지화, 노후화된 원전의 단계적 폐쇄 등 에너지믹스 변경 정책으로 수주잔고 감소세를 겪고 있다”면서 “대외적으로도 친환경에너지 정책 기조와 경기 불확실성 고조 등이 이어져 수익성이 둔화되는 경향”이라고 분석했다.

두산중공업의 수주잔고는 지난 2017년 말 17조 3000억원이었으나 올해 상반기 기준 14조 1000억원으로 감소한 상태다.

한신평은 "현재 진행 중인 신고리 5·6호기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양질의 대체 수주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뚜렷한 실적 저하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두산그룹은 2000년 이후 근 20년간의 노력을 통해 중공업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밑그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수익 부진으로 인한 유동성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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