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 공표제한, 정부·여당-재계 vs 야권-언론계 '짝짓기 반응'
이상호 전문기자 | 기사작성 : 2019-09-18 07:10   (기사수정: 2019-09-18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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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조국 법무부 장관이 각 당 지도부 예방을 위해 국회 본청 현관으로 걸어가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 등 친인척이 딸의 진학 및 펀드운영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조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검찰의 피의사실공표 행위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해 논란이 되고 있다.

조 장관의 가족을 둘러싼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아 검찰 수사로 진실을 가려야 하는 상황에서 조 장관과 법무부가 이런 방침을 정했기 때문에 시빗거리가 된 것이다.

하지만 현재 피의사실 공표제한 문제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정부 여당,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 언론계, 재계는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여권과 재계는 적극 찬성하는 입장인 반면, 야당과 언론계는 반발을 나타내 예상치 못한 짝짓기 입장이 나타나고 있다.

형법, '피의사실 공표 시 3년 이하 징역'

피의사실공표로 처벌받은 수사관계자 '전무'


현행 형법은 특정인에 대해 검찰이 피고인으로 기소하기 전에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행위를 엄하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126조(피의사실 공표)는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當)하여 지득(知得)한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피의사실 공표금지는 국민의 명예 및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범죄수사의 원만한 수행과 공정한 재판을 위한 것이다.

피의사실이 기소 전에 공개되면 '법에 의한 재판'이 아니라 '여론에 의한 재판'이 될 가능성이 커져 공정한 재판을 받는 기본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검사나 경찰관 등 수사기관 관계자가 피의사실공표죄로 처벌받은 사람은 전무했다.

국민의 알 권리가 우선시 됐던 사회 분위기상 검찰청에서는 주요 사건 수사과정에서 기소(공판 청구)도 하기 전 매일, 심지어 하루 두 차례 수사책임자가 기자들에게 그날그날 수사상황을 브리핑하는 일이 관행처럼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 17일 조국 법무부 장관이 국회에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문 대통령-조국 장관 사법개혁 차원 접근

총수 수사 겪은 재계, '만시지탄(晩時之歎)...'


문재인 대통령이 다수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재야 법학자 출신인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강행하면서 내건 이유는 '사법개혁'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초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하면서 나온 '논두렁 시계' 사건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이자 변호사로서 이같은 피의사실 공표 행위를 강력하게 성토하는 등 '아픈 기억'이 있다.

조 장관에 대한 전격적인 수사를 놓고 윤석열 총장과 검찰을 강력하게 비판해온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같은 맥락에서 피의사실 공표행위 제한을 적극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 SK를 비롯한 주요 대기업 또한 피의사실공표 행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총수를 비롯한 고위 임원들이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정확하지도 않은 피의사실이 유포돼 여론재판에 시달려온 역사 때문이다.

특히 삼성그룹은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회계 의혹을 둘러싼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 툭하면 출처를 알 수 없는 수사내용(피의사실)이 언론을 통해 불거져 나와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 대기업의 홍보관계자는 "몇 년 전 총수가 검찰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검찰 관계자를 인용한 보도가 매일 진전된 내용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변호사를 통해 틀린 것을 오보라고 해명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피의사실 공표제한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고 했다.

야당, "조국 방어위한 검찰수사 압박"

언론계, "국민 알 권리 축소 우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권은 정부 여당의 이런 움직임을 조 장관 및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와 언론보도를 제한하려는 것으로 규정하고 반발하는 모습이다.

한국당의 강경한 분위기는 황교안 대표와 홍준표 전 대표가 각각 공안부와 특수부의 '스타검사' 출신으로, 피의사실 공표 문제와 직접적으로 맞닥뜨려온 경험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황 대표는 임수경 씨 밀입북 사건 등 주요 공안사건에서 국가정보원 등이 수사발표 등을 통해 피의사실공표가 일상화됐던 풍토하에서 주임검사로 일한 바 있다.

또 홍 전 대표는 검사 시절 피의사실 공표를 통해 외압 등으로 힘든 수사를 돌파하는 스타일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형 전기환 씨의 노량진 수산시장 관련 비리를 수사하면서 언론에 수사내용을 흘려 수사의 흐름을 개척했고, 빠찡꼬 사건 수사 때는 검사실을 찾아온 모든 기자에게 각기 다른 특종을 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언론계는 보수나 진보 등 성향을 막론하고 피의사실 공표금지로 국민의 알 권리 위축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정보산업인 언론의 특성상 현장기자의 취재, 팩트가 없어지면 보도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특히 종편TV 업계는 최근 몇 년 사이 시청률이 급상승하면서 인기 프로그램이 많아진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언론계는 피의사실 공표금지로 인한 오보 등 부작용도 우려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에서 검찰청을 출입하는 한 일간지 기자는 "지금도 검찰은 이미 피의사실 공표죄를 의식해 영장청구 등 아주 기본적인 팩트만 공식적으로 확인해주고 나머지는 간접취재 또는 은밀한 취재방식을 통해 보도하는 실정"이라며 "국민의 알 권리상 주요사건 속보를 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오보나 추측보도로 인한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사진제공=대한변호사협회]

법조계, "사법개혁 목표, 지향점을 분명히 해야"

대한변호사협회 등 법조계는 형법에 피의사실공표죄가 엄연히 있는 만큼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이다.

대한변협은 1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조응천 민주당 의원과 공동으로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 관행 방지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토론회에서는 피의사실 공표 금지를 강화하면서도 국민의 알 권리를 조화시킬 방안을 논의한다.

법조계에서는 피의사실 공표금지 강화가 조국 법부부장관 주변에 대한 수사와 맞물려 논란이 되고 있는 만큼, 먼저 사법개혁의 큰 그림을 제시해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검찰총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와 관련 "중요한 사건의 경우 수사단계에서 갖가지 억측성 보도로 인한 여론재판으로 이미 죄인이 된 뒤 포토라인에 서고 나중에 법원에서 죄의 유무, 경중이 가려져서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것이 한국적 사법 시스템으로 굳어져 버린 상황"이라면서 "사법개혁을 하겠다면 수사 및 형사소송 제도 전체에 대해 뚜렷하게 갈 길을 정하고 피의사실 공표 등 부수적인 문제를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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