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실종’ 7가지 원인과 현장들
이상호 전문기자 | 기사작성 : 2019-09-11 07:01   (기사수정: 2019-09-1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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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에서 귀성객이 열차에 오르기 위해 탑승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추석, 한가위는 설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양대 명절이다. 추석이면 수천만명이 고향과 친척집을 향해 ‘민족대이동’을 벌여왔다. 하지만 전통 명절로서 추석은 거의 실종된 상태다. 고향을 찾아 온 가족, 친척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송편을 나눠먹는 추석이 급격히 사라지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핵가족화와 만혼(晩婚), 비혼(非婚) 트렌드가 만든 가족 공동체 해체, 차례(제사) 성묘 등 명절 전례(前例)의 단절, 해외여행 등 웰빙트렌드의 확산이 추석 실종의 주 원인이다. 그런가하면 장기적인 경기위축과 취업난,한국사회의 극심한 정치적 분열로 인한 세대갈등 또한 추석 같은 명절에 일가 친척과의 만남을 꺼려하는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추석이 사라지는 증거, 그 현장을 모아본다.

① ‘차례(茶禮)’, ‘제사(祭祀)’가 사라진다

10일 보건복지부 등 행정기관, 유통업체, 사회단체 등의 진단을 종합하면 도시와 농어촌 등 지역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명절 차례(제사)를 지내는 집은 절반에 못 미치는 30~40%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추석과 설 등 명절 차례가 없어지는 주 원인은 ▲음식마련 등 차례준비의 번거로움 때문에 성묘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고 ▲고령화로 인한 고향 부모의 요양원 입원 등 가족사 ▲차례 준비로 인한 부부 등 가족간 갈등이다.

차례준비 및 뒷처리가 ‘명절 증후군’의 가장 큰 원인이 되다 보니, 최근에는 몇 년째 추석이나 설을 앞두고 여성단체 등이 “명절을 없애달라”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하고 있다. 한 청원자는 "명절만 되면 음식을 준비하는 여성들도, 장시간 운전하는 남성들도 모두 힘들어 이혼율이 증가한다"며 "명절로 인한 부담을 줄여달라"라고 말했다. 자신을 결혼 20년 차 주부라고 밝힌 한 청원자는 "차례를 지내는 집은 명절이 갈등과 스트레스의 원인"이라며 "제사가 따로 있는데, 왜 명절에 차례를 지내야 하나"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아울러 기제사 또한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지난 5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조합원 65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남성은 16.7%, 여성은 2.4%만이 자신의 사후에 자손들이 제사를 지냈으면 좋겠다고 응답했다.

② 재래시장, 대형마트 ‘추석특수’는 옛말

장기적인 경기부진, 차례 생략, 간소화 등의 영향으로 ‘추석특수’는 사라진지 오래됐다. 추석 나흘전인 지난 8일, 대구 경북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인 서문시장과 대형마트들은 대목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한산했다.
이날은 대부분 대형마트가 의무휴업일로 전통시장은 명절특수를 기대했지만 썰렁할 뿐이었다.

경북 최대 수산시장이라는 죽도시장(포항시 북구) 횟집 거리는 한산하기만 했고, 건어물전 역시 시간이 갈수록 고객은 줄었다. 의무휴업일을 변경해 이날 영업을 한 구미·경산 등지의 대형마트도 추석 선물 특별코너는 썰렁했다. 시장 상인들은 경기 침체와 얼어붙은 소비심리로 변화하는 차례 문화에 “명절특수는 찾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포항수협 관계자는 “통상 명절을 일주일가량 앞둔 시점이 되면 문어 1㎏에 6만원 이상 오르거나 대목에는 최고 7만원까지 할 때도 있었다. 특히 올해는 어획량이 30%나 감소했음에도 가격이 3~5만원 수준이라는 것은 수요가 줄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예년에 비해 ‘이른 추석’과 중부지방을 강타한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강세를 예상했던 과일 가격이 보합세를 유지, 추석경기가 없음을 보여 주었다. 없어지거나 간소화되는 명절 차례 도한 추석경기를 없애는 요인이 되고 있다.

서문시장에서 만난 한 소비자는 “차례상 준비는 최소한으로 할 것”이라고 말하거나 “명절음식은 비싸고 손도 많이 가고, 먹을 것도 없다. 그 비용으로 평소 가족들이 좋아하는 고등어·갈치·오징어 등을 샀다”고 말했다.

③ 고령화 영향, 부모님은 치매로 요양원에

고령화 시대, 초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부모님이 살아 계시지만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경우가 많다. 지난 몇 년 사이 수도권 주변에 하루에도 몇 개씩 노인전문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 생겨나고 있다. 고향에 홀로 계신 연세 많은 부모 중 한분이 요양원에 계시는 가정도 많다.

이런 가정에서는 추석이나 설은 명절이 아니라 부모님 면회가는 날이 된다. 경남 거창이 고향인 형모씨(57)는 93세인 노모가 치매로 고향의 요양병원에 입원중이다. 형씨는 “4년전 어머니가 입원하신 뒤로 한달에 한번은 찾아 뵙는다는 원칙으로 들르고 있지만 못하는 달이 많다”면서 “명절이나 설에는 차례가 없고 고향에 갈 수 있는 형제들 끼리 병원에서 만난다”고 말했다. 노인질환, 특히 치매로 인한 가족환경의 변화가 명절의 실종을 부채질 하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일 추석 연휴기간에도 평소와 같이 치매상담콜센터를 24시간 계속 운영한다고 밝혀, 이런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④ 만혼(晩婚), 비혼(非婚)세대 귀향은 추석전 주말에

남녀에 관계없이 대한민국에 급증하는 만혼, 비혼세대는 명절이 귀찮다. 취업준비, 전문직, 직장생활, ‘나홀로 문화’에 푹 빠진 그들에게 명절 때 친척들을 만나는 것은 가장 피하고 싶은 일 중 하나다. “시집 장가 안가느냐” “직장이 어디냐” “직업이 뭐냐” “월급은 얼마나 되느냐” 등등 짜증나는 질문, 대답하기 싫은 질문이 귀찮다.

그래서 이들은 추석이나 설 등 명절 직전 주말에 부모님 선물과 용돈을 들고 고향을 다녀온다. 유통업체에 다니는 김슬기(34.여)는 주말인 지난 7일 부모님과 작은 오빠가 사는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고향에 다녀왔다. “추석에 안오고 왜 미리 오느냐”는 어머니에게 김씨는 “추석에 당직이 걸려서 회사에 나가봐야 한다”고 둘러댔다. 김씨는 추석연휴 동안 회사에 나갈 일도, 여행을 가는 등 특별한 계획이 없다.그냥 집에서 TV를 보고 낮잠을 자는 등 혼자서 휴식을 가질 생각이다.

⑤ 추석연휴 호텔 예약률↑..대부분 문여는 골프장

국내 유명 호텔·리조트 등에 따르면 올 추석 연휴 객실 예약률은 지난해보다 급증했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추석날에는 문을 닫았던 골프장들이 대부분 영업에 나서고 추석당일 예약(부킹)도 거의 완료된 상태다. 부산 해운대 한 5성급 호텔은 연휴인 12일∼15일 일일 평균 객실 예약률이 지난해 연휴보다 20%가량 높다고 소개했다. 이 호텔 관계자는 "추석 연휴가 비교적 짧아 외국보다는 국내 관광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 여행 보이콧 움직임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설악 한화리조트, 대명 델피노 골프&리조트 등 강원 설악권 리조트 대부분도 연휴 동안 객실 예약이 거의 완료된 상태다. 제주 서귀포 소재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가 마련한 추석 맞이 패키지 상품은 지난해보다 2주가량 빨리 판매돼 완판을 앞두고 있다. 제주도관광협회는 이번 연휴 약 19만명이 제주를 찾을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닷새간의 추석 연휴 중 9월 23∼26일 입도객(17만7,327명)보다 7.1% 늘어난 수치다.

경주 보문단지에 객실 290여개를 둔 A 콘도는 연휴 객실예약률이 12일 85%, 13일 90%, 14일 85% 등으로 지난해보다 10% 정도 높게 나타났다. 경기도 포천시에 있는 P 골프장은 추석 당일인 13에도 문을 여는데 현재 에약률은 95%에 이른다. 이 골프장 관계자는 “우리 골프장 뿐 아니라 인근에 있는 5개 골프장 모두 추석에 문을 여는데 대부분 부킹이 완료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10년전만 해도 추석날에는 찾는 사람이 없고 골프장 종사자의 귀성 등으로 폐장했던 것과 달라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⑥ 정치논쟁, 세대갈등이 싫어서

추석 차례상에 올라가는 것은 송편과 과일 등 제수용품 만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명절 차례 후 집집마다, 일가 친척들이 모이면 빠지지 않는 것이 정치논쟁, ‘시국토론’이다. 촛불시위와 박근혜 전대통령 탄핵, 문재인 정부 출범, 조국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논란에 이르기까지 최근 몇 년 사이 대형 정치사건이 많았기에 명절이면 그 열기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세대별 정치적 입장차이가 심한 편이다. 부모님과 자녀 사이의 보수-진보, 세대간 갈등이 극심하다. 과거에는 주로 정보가 많은 도시에서 온 자녀들이 시골의 부모님을 설득하거나 가르치는 입장이었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많이 변했다. 저녁시간 종편TV의 정치토론 프로그램을 많이 시청하는 시골 고연령층 세대의 정치의식과 신념이 확고해지는 경향이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경기도 가평이 고향인 이모씨(42.서울 강동구 천호동 자영업)는 “몇년 전 부터 고향에 가면 아버지가 정치 이야기를 꺼내는데 나보다 여러가지,상세하게 알고 논리적으로 설명해 내가 밀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나는 감각과 느낌으로 저런 정당, 저런 정치인이 싫다고 하면 아버지는 집요하게 추궁한다”면서 “요즘은 아버지와 정치 이야기를 안하려고 말이 나와도 피한다”고 전했다.

토론은 말, 토론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가족 사이에도 말은 비수가 되고 상처를 낼 수 있기에 ‘정담(情談)’을 나누는 추석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⑦ 짧은 연휴,대체휴일 검색어 상위에

이번 추석연휴는 목요일인 12일부터 일요일인 14일까지 4일, 예년의 추석이나 설에 비해 연휴기간이 짧은 편이다. 이 때문에 일부 포털사이트에는 왜 이번 추석연휴 마지막날이 토요일과 겹치는데 다음 월요일인 16일을 대체휴일로 지정해주지 않는지, ‘추석 대체휴일’이 검색에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2014년부터 시행된 대체휴일 제도는 추석과 설 등 명절과 주요 국경일이 일요일과 겹칠 때만 대체휴일을 만들어 왔다.

명절연휴가 짧을수록 귀향이나 친척집 방문 등 이동을 회피하는 이유가 된다. 연휴가 짧을수록 교통정체가 극심해서 고향을 오가기가 힘든 것은 사실이기에 자식고생 걱정하는 부모님에게는 핑계가 아닌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있다. 고향에 가는 차편 이에따라 10일 오전 현재 포털의 추석관련 검색어 1위는 ‘추석특집 TV영화’였다. 이번 추석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자세를 보여주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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