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43) 국제신사를 '철면피'로 만든 최전방 오지
김희철 칼럼니스트 | 기사작성 : 2019-09-03 16:13   (기사수정: 2019-09-0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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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관생도 시절 스스로를 '국제신사'라고 칭했던 육군 소위들은 전방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결혼한 선배의 집에 찾아가 물펌프질을 해주고 '회포' 푸는 '철면피'가 되곤 했다. [사진제공=김희철/동영상캡처]

군부대 자유시간 핸드폰 허용, 필자의 초급 장교 시절엔 상상도 못할 일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금년 4월부터 군에 복무하는 병사들에게 일과 후 자유시간과 휴무일에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게 허용되었다. 덕분에 가족들과 연락을 할 수 있고 또 자신의 발전을 위해 정보도 쉽게 접촉하게 되어 병사들은 대단히 만족한다. 하지만 음란물 시청, 도박, 부대 보안에 취약함 등이 제기되어 재검토가 필요한 실정이다.

게다가 병사들의 평일 외출도 허용되었고 위수지역 통제도 지역 개념에서 2시간 내 지역으로 완화되었다. 하지만 필자가 최전방에서 근무할 때에는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세상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필자가 초급장교 시절, 당시에는 지금의 혜택은 생각도 못 했고 서울에서 부대까지 이동하려면 마장동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무수한 검문소에서 헌병과 마주치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서울로 나올 때는 더욱 검문을 심하게 했다.

게다가 비포장 도로로 덜컹거리는 덕택에 흙먼지가 밀려들어오는 차안에서 멀미와 싸우며 긴 시간을 가야했다. 부모님이나 애인이 면회를 갈려면 하룻 밤을 잘 각오로 가야했다. 특히 최전방 GOP지역에서는 출입 통제로 가족들을 볼려면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식당 없는 전방 오지 근무, 결혼한 선배집을 선술집으로 만든 '철면피' 되기도

식당이나 주점이 거의 없는 전방 격오지는 퇴근 후나 휴일에 마땅하게 소일할 거리가 없었다. 서울까지 나오는 것은 감히 생각도 못했다. 같은 대대에 통신대장으로 함께 근무하던 동기(안철주 중위)와 1시간을 걸어 민간마을로 내려가면 마땅히 들릴 곳이 없어 쉽게 찾는 곳이 결혼한 동기생집이나 선배집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방문한 집에 동기나 선배가 없더라도 가족은 반갑게 맞이하면서 남편 없이도 저녁 밥을 차려주어 대접을 했다. 시골 쪽방 셋집에서 고생하는 선배/동기의 가족이 안스러워 물가에 가서 펌프질을 하여 식수나 용수를 길어주는 등 약간의 봉사만 하면 그날은 맛있는 삼겹살로 배불리 한 끼를 때우고 늦게 퇴근한 선배와 소주까지 곁들여 회포를 푸는 날이었다.

사관생도 시절 국제신사라고 자부했던 육군 소위들은 철면피와 철판으로 변해 있었다. 식당 없는 전방 오지의 선배와 동기집을 하도 자주 찾아가서 선배집을 선술집으로 만들었고, 신사도와 체면도 없는 철면피/철판 인간이 되어 폐를 끼쳤다.

몇 년이 지나 필자가 결혼하자, 내가 했던 행동은 그대로 나에게 적용되었다. 전방을 찾아오거나 전입온 선후배들도 똑같이 결혼 후 마련한 필자의 셋방집을 수시로 찾아왔다. 그 동기와는 지금도 철판, 철면피라고 서로 부르며 미소를 짓고, 내 집사람도 그때 일들을 회상하면 힘들지만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한다.

▲ 철면피와 철판이었던 동기생 안철주와 시외버스에서 헌병이 검문하는 모습 [사진제공=김희철/동영상캡처]


지나친 규제는 위법을 양산하고, 이완된 규율은 방종과 무질서를 낳아

국제신사를 철면피와 철판으로까지 만들며 폐를 끼쳤던 선배의 가족은 아직 짝이 없는 후배가 안타까워 대학 후배나 친척을 소개시켜주어 평생 반려자가 된 사례도 많았다.

필자도 인접 소대장 유승한중위(학군19기)의 동생을 소개 받아 지금의 내 짝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만남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최전방에서 결혼했다면 우선은 이상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 간혹 근무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그 친구(지금의 처남)는 내게 소개를 해주기 위해 휴일에 서울을 다녀왔다. 하지만 당시에는 엄격한 위수지역 통제로 서울을 갈려면 증명서가 필요했다. 무수한 검문소에서 헌병들이 증명서를 확인하기 때문이었다. 출장을 신청해 증명서를 발급받으려면 복잡하고 잠깐 휴일을 이용해서 다녀오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행정권이 있는 연대나 포병대대의 인사장교들에게서 출장증을 몇장씩 확보하고 비표를 확인하여 증명서를 임시로 작성해 이용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마침 선배 소대장이 증명서를 제공해주어 그 친구는 무사히 서울에서 지금 내 가족의 사진을 가져왔고 필자는 사진을 보고 만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위수지역이 시간개념으로 교통도 편리해져 2시간내 복귀할 수 있는 서울을 나가는 것이 가능하지만, 당시의 지나친 규제는 헌병 검문을 통과하기 위한 또다른 위법을 양산하고 있었다.

사실 그 위법 행위 덕에 필자는 평생 반려자를 만날 수 있었고 결국 결혼으로 성공했다. 전후방 격오지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의 가족을 포함한 전우애와 의리, 선배들의 무한한 후배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지난 5월 군 수사당국이 경기도 육군 모 부대 내에서 일부 병사가 휴대폰을 이용해 스포츠 도박을 한다는 제보를 입수해 5명의 병사를 적발했다. 이 중 최근 전역한 A병장은 입대 후 960차례에 걸쳐 무려 1억8000만원 액수의 도박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얼마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도박 문제에 대해 상담을 군인 상담자는 2017년 48명에 불과했지만 2018년에 약 3배인 123명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2019년에는 5월까지 집계했음에도 117명에 달했는데 도박자 중 상담을 신청한 이들만 집계한 통계이기 때문에 실제 도박자는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된.

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휴대폰을 이용한 군 내 각종 부정·불법행위 적발은 2350건에 달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사병은 물론 부사관, 장교까지 포함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부대 내에서 병사들의 일과 후 휴대폰 사용을 허용해준 뒤 사병들의 휴대폰 도박이 급증한 영향이 가장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핸드폰 사용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비록 인생 반려자를 얻기 위해 위수지역 이탈 등의 무리한 위반 행위를 했지만 당시의 지나친 규제는 또다른 위법을 양산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핸드폰의 무분별한 허용 등 이완된 규제는 방종과 무질서를 낳기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최선이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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