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둥이 기업 100년을 향해] ②아시안 뷰티 크리에이터 아모레퍼시픽
안서진 기자 | 기사작성 : 2019-08-13 15:39   (기사수정: 2019-08-13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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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모레퍼시픽을 지금의 화장품 전문기업으로 만든 건 윤독정 여사(왼쪽)와 동백기름(오른쪽)이다. 당시 '창성상점'을 운영하던 윤 여사는 최고의 원료를 찾기 위해 천릿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진제공=아모레퍼시픽]

1945년은 대한민국에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난 해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첫걸음을 뗀 해이기도 하다. 해방과 함께 맞은 자유속에서 도전정신과 기업보국(企業報國)의 마음으로 많은 기업들이 출범했다. 그 기업들이 70년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명멸해갔지만, 여전히 100년을 향해 힘찬 행보를 보이고 있는 기업들이 적지않다. 뉴스투데이는 74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그동안 눈부신 성장을 해온 해방둥이기업들을 조명한다. [편집자주]


[뉴스투데이=안서진 기자] '아시아를 대표하는 뷰티 기업', 'K-뷰티 열풍을 이끄는 기업', '전 세계 여성들의 화장 문화를 변화시킨 기업' 등 아모레퍼시픽 앞에는 항상 화려한 수식어들이 따라다닌다.

올해로 창립 74주년을 맞이한 아모레퍼시픽는 ‘태평양화학공사’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처음 이름을 알렸다. 1945년 광복직 후인 그해 9월, 혼란스러운 시대에도 불구하고 아모레퍼시픽은 품질제일주의 원칙아래 '태평양 너머의 더 넓은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 윤독정 여사의 동백기름이 아모레퍼시픽 출발점

사실 아모레퍼시픽을 지금의 화장품 전문기업으로 만든 건 아모레퍼시픽의 서경배 대표의 할머니인 고 윤독정 여사의 동백기름이었다.

윤 여사는 개성 남문시장에서 ‘창성상점’을 운영하면서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완성시켜 주는 동백기름을 만들었다. 당시 최고의 원료를 찾기 위해 천릿길도 마다하지 않았던 품질우선 정신은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의 시초다.

이처럼 강한 생활력과 뛰어난 사교성으로 ‘여장부’로 불리던 윤 여사를 두고 서성환 선대회장은 늘 '우리 회사의 모태는 나의 어머니'라는 말을 즐겨하곤 했다. 그의 말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기업가정신과 도전정신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후 서성환 선대회장은 어머니가 운영하던 창성상점을 태평양화학공업사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으로 화장품 사업을 시작했다.

▲ 메로디 크림은 한국 최초로 상표를 붙인 화장품으로 아모레퍼시픽이 내놓은 첫 브랜드다. 광복 이후 혼란스런 틈을 타 가짜 상품이 활개칠 당시 '품질경영'을 바탕으로 정직하게 승부했다. [사진제공=아모레퍼시픽]

태평양화학공업사의 첫 번째 제품은 ‘메로디 크림’이다. 메로디 크림은 서성환 선대회장이 서울에서 독자적으로 사업을 전개하며 내놓은 첫 공식 브랜드였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상표법 제정(1949년)보다도 1년이나 앞선 1948년에 소개돼 한국 최초 상표를 붙인 화장품으로 불린다. 정신없던 광복 이후 서성환 선대회장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품질경영’ 정신을 바탕으로 위조 상품들 틈에서 정직하게 승부했고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최초’, 그리고 ‘최고’를 향한 아모레퍼시픽의 70년 미(美)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국전쟁으로 위기를 겪고 있던 1951년에는 한국 최초의 식물성 포마드인 남성용 헤어크림 ‘ABC 포마드’를 출시했다. 메로디 크림과 ABC포마드 두 제품이 모두 인기를 끌면서 1959년 태평양화학공사를 법인으로 전환했다. 1964년에는 방문판매 제도를 도입해 화장품 업계에서 ‘유통’ 이라는 개념을 처음 실시했다.

▲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을 성장하게 만든 것은 해외 수출 덕분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오스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국산 화장품의 수출을 진행했다. [사진제공=아모레퍼시픽]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을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한 동력은 바로 해외로의 수출이다. ‘오스카’라는 이름으로 1964년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산 화장품의 수출이 이뤄졌으며 글로벌 시장 진출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다. 이후 아모레퍼시픽은 1990년대 초 프랑스, 중국 등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며 해외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승승장구하며 어느덧 25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한 아모레퍼시픽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1990년대 시작된 글로벌 경쟁 체제 속에서 복잡한 사업구조와 노사 간의 갈등, 계열사들의 위기로 인해 뷰티 외 계열사 매각 등의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업은 화장품


위기 속에서 서성환 선대회장은 자신의 사업 구조를 재평가하며 ‘아모레퍼시픽의 존재 이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자문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화장품이었다. 서성환 선대회장은 "나는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화장품 외길이야말로 나의 꿈이고 삶 자체이며 화장품 없는 내 인생은 아무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후 서성환 선대회장의 아들 서경배 대표이사가 1997년 3월 사장에 취임했다. 서 회장은 ‘아모레퍼시픽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화장품이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더욱 더 화장품 사업, 그 중에서도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했다.

1997년 ‘설화수’라는 브랜드 론칭을 통해 세계 최초의 한방 화장품 브랜드로 입지를 다졌다.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사명도 지금의 '아모레퍼시픽(AMOREPACIFIC)'으로 변경했다. 서 회장은 "60년 가까이 써오던 태평양이라는 이름을 영문명에 녹여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 하기 위한 첫 번째 재정비 작업은 영문 사명으로 변경하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사명 변경 이후 아모레퍼시픽은 글로벌 시장 확장 및 성장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화권, 아세안, 북미 등 3대 주요 시장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중동, 서유럽, 호주 등 신시장 개척을 위해 주력을 다할 방침이다.

▲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은 올초 신년사에서 “글로벌 혁신 상품 개발, 차별화된 고객경험 선사, 디지털 인프라 개선을 통해 지속적으로 해외 진출을 위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사진제공=아모레퍼시픽]

특히 서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글로벌 혁신 상품 개발, 차별화된 고객경험 선사, 디지털 인프라 개선을 통해 지속적으로 해외 진출을 위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또 세계로 향하는 아시안 뷰티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해 아모레퍼시픽은 2025년 ‘원대한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선보였다. 서 회장은 신년사에서 "우리 아모레퍼시픽은 K-뷰티의 유행을 넘어서는 근본적으로 한 차원 더 높은 목표인 아시안 뷰티를 창조하고 전파하는 일에 모든 의지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면서 "아시안 뷰티로 우리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30개국에 이어 50개국을 향한 도전을 차근차근 밟아가며 글로벌 유목민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해외 시장 개척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글로벌경영을 중시하는 그의 경영이념에 따라 올 하반기에는 미주 시장에 이니스프리 매장을 추가로 론칭해 미국 내 브랜드 점유율을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의존도가 가장 높았던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최근 아모레퍼시픽은 다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아모레퍼시픽은 서성환 선대회장 이후 숱한 위기를 맞아온 바 있다. 그때마다 아모레퍼시픽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서성환 선대회장때부터 이어져온 ‘아시아 미의 정수를 세계에 전파하겠다’는 단 하나의 소명 정신이었다.

아모레퍼시픽에게 드리운 이번 적자 위기도 창업 초심으로 숱한 위기를 넘겼던 과거의 위기를 돌파해 또다시 제2의 전성기를 맞을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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