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뉴 리더] 현대중공업 정기선 부사장(하) 상생의 노사관계 향한 ‘현대중공업 기업문화’ 확립 과제
이상호 전문기자 | 기사작성 : 2019-08-07 07:00   (기사수정: 2019-08-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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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7월 서울 포시즌 호텔에서 정기선 당시 현대중공업 전무가 사우디의 칼리드 알 팔리 신임 에너지산업광물부 장관(이하 석유장관)과 미팅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이원갑 기자] 현대중공업은 오랫동안 국내 대기업 중 근속 연수 1위를 차지해왔다. 이직률도 극히 낮은 기업군에 속한다. '좋은 직장'이라는 의미다.

정몽준 현대중공업 최대 주주는 정주영 창업주가 생전에 설립한 아산재단 이사장, 정 회장 작고 10주년인 2011년에 만든 아산나눔재단의 명예이사장으로 재계 최대 규모의 사회공헌 사업을 벌이고 있다.

현대중공업 직·간접 고용인원은 5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회사가 위치한 울산시 동구는 일본 토요타시(市)처럼, '현대중공업시(市)'로 불릴 만한 기업도시다.

현대중공업은 연간 1조5000억원 대의 급여, 월 2000억원이 넘는 자재대금을 울산 지역경제에 공급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에게 저가로 공급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은 물론, 공연장 체육관 공원 등 사회기반 시설 대부분은 지자체 예산이 아닌 현대중공업 돈으로 지은 것이다.

정몽준 이사장이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처음 당선된 이래 이 지역에서 무소속으로만 내리 5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막대한 사회 및 지역공헌 불구

분규와 파업으로 부정적 이미지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기업 이미지는 부정적인 편이다. 현대중공업과 연관되는 핵심 키워드는 ‘잦은 분규와 파업’, ‘강성노조의 철밥통 지키기’ 등 부정적 단어들이다.

최근에도 현대중공업 노조는 대우조선해양 노조와 함께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노조는 지난 5월 기업결합(합병)에 반대하면서 주주총회장을 불법 점거했다.

노조의 불법·폭력에 대해서 현대중공업이 재산 가압류를 신청하고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노사는 더욱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1980년대 후반 노동계 민주화를 이끌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의 탄생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운동권 대학생 출신들이 회사 안팎에서 조합원들을 교육했다.

1995년부터 2014년까지는 온건노조 집행부가 등장해 민노총을 탈퇴하면서 19년 연속 무분규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다시 강성노조가 득세하는 양상이다.

현대중공업 사내외 노조 게시판에는 여전히 정치구호가 난무하고, 심지어 사회주의 혁명가 레닌의 저작물을 소개하는 게시물도 찾아볼 수 있다.

현대중공업의 미래, 한국 조선산업의 명운이 걸린 대우조선해양과의 합병의 성사도 노조가 최대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이 2월 26일 서울 아산생명과학연구원에서 2019년도 아산장학생 장학증서 수여식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아산사회복지재단]

정주영 시대 못 만든 ‘현대중공업 기업문화’

“이봐! 해봤어?”는 상명하복 시대의 ‘신화’

정주영 창업주는 현대중공업이라는 국가적 기업을 만들어 한국경제 신화를 이룩했고, 정몽준 이사장 경영시대에 명실상부한 세계 1위 조선사로 도약했다. 그러나 두 사람 다 현대중공업의 기업문화는 만들어 내지 못했다.

1987년 정치 민주화에 이어 노동계에 민주화 바람이 불어 닥쳤을 때, 현대중공업은 한국 자본주의의 얕은 뿌리, 기업문화 부재를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노조의 불법파업과 사업장 점거를 진압, 해산하기 위해 수만 명의 전경이 선박을 이용해 울산만에 상륙하고 이들을 향해 사제 박격포를 쏘아대던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독재, 정주영 회장의 ‘밀어붙이기’로 경제를 일으키던 시절, 기업문화라는 게 있을 리 없었다. 허허벌판에 회사를 만들어 월급을 주니 기업가는 책임을 다했고, 산업역군이라는 사명감, 상명하복(上命下服)식 군사문화가 기업문화를 대체했던 시절이었다.

정주영 창업주의 가장 유명한 어록 중 하나, “이봐! 해봤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던 시절,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리더의 추진력을 칭송하는 ‘신화’였을 뿐이다. 더 이상 밀어붙이기가 아니라 상생, 소통의 시대이다.

현대중공업 노사가 1995년부터 2014년까지 19년 연속 무분규 기록을 세운 것은 강성노조에 대한 염증과 실리주의 선회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한편으로는 1991년 정몽준 이사장이 현대중공업 회장에서 고문으로 일선에서 비켜나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한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 2018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본사에서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왼쪽)과 알 나세르 아람코 최고경영자(CEO)가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중공업]

정기선 부사장, ‘상생과 소통’, ‘혁신’에 최우선 행보

정기선 부사장은 상생과 소통, 선대의 전통 위에 새로운 기업문화 창조라는 과제를 잘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 부사장은 2016년 4월 제18차 세계 LNG컨퍼런스에 참석, “우리도 노조를 충분히 이해한다. 설득을 해나가겠다. 계속 사업을 영위해 나가려면 같이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해 10월에는 “앞으로도 우리의 역량을 지키면서 성장까지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 우리의 사업 지위(시장 1위)를 지키기 위해 최악의 시장 상황을 가정해 준비해야 한다. 같이 일하는 근로자들과 노조 등 여러 방면에서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노조와의 상생을 바탕으로, 필요한 혁신을 하겠다는 것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뉴리더로서 행보를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노조 또한 조선업의 지속가능성, 회사의 발전에 대해 같은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인이다.

현대중공업 등 울산지역에서의 오랫동안 노동운동, 울산 동구청장을 경력을 지닌 민중당 김종훈 의원은 “조선산업은 4차, 5차 산업혁명을 맞이해도 꼭 필요한 산업”이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친환경, 스마트십 등 미래 선박 기술 확보를 위해 기업 연구소와 국책 연구소를 통합한 국책연구소 설립을 정부에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노사가 충돌하는 지점은 구조조정과 인력감축, 즉 일자리 문제다.

정기선 부사장은 2016년 4월 제18차 세계 LNG컨퍼런스에서 “조선업은 사이클이 분명히 있는 사업으로 어떻게 보면 건설업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경기 사이클에 따라서 필요할 때는 린(lean:군더더기 없는) 해질 필요가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김종훈 의원은 조선업의 ‘중·일 샌드위치론’이나 ‘조선업 사양론’을 부정하고 “숙련된 인력의 유지 확보가 한국 조선산업의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현대중공업은 최근 5년 간 거의 1만 명에 가까운 구조조정을 통해 조직의 군살을 제거해왔다.

앞으로 대우조선해양과의 합병 과정에서도 낙후된 사업영역 및 중복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수적인 만큼 어떻게 해결할지가 관건이다.


‘연속과 단절 사이의 균형’ 추구 기업문화 필요

권오갑 가삼현 등 전문경영인 면면 ‘도움’

일반적으로 소비재를 생산하는 ‘B2C 기업’이 ‘B2B 기업’에 비해 기업문화 구축에 적극적이다. 소비자 친화형 기업문화를 통해 소비자와 소통하는 것이 최근의 트렌드이기도 하다.

현대중공업이 별다른 기업문화가 구축되지 않은 것은 이런 B2B 기업의 특성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또한 막대한 지역 및 사회공헌에도 불구하고 현대중공업의 긍정적인 이미지로 연결되지 않은 것은 정주영식 ‘노블리스 오블리주’ 관점이 ‘나눔’이 아니라 ‘베풂’에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찍이, 사회주의 등 대안적 체제가 아닌 자본주의 기업이 인류의 미래를 열어 줄 것이라고 통찰했던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1909~2005)가 가장 중시한 것은 조직의 지속가능성이다.

그는 연속과 단절 사이의 균형, 지킬 것은 지키면서도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버릴 것은 버리는 기업 체제와 문화 구축을 지속가능성의 관건으로 보았다.

정기선 부사장은 긍정적이고 참여의식이 강한 'Y세대‘이자 소통에 능한 ‘N세대’적인 특성으로 오랜 시간 현대중공업을 이끌었던 아버지 세대의 전문 경영인에 비해 이와 같은 연속과 단절에 능한 경영적 자질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그룹 안팎에서는 현재 현대중공업을 이끌고 있는 권오갑 부회장, 가삼현 사장 등 대표적인 전문경영인들이 정몽준 이사장과 함께 축구협회에서 2002년 한일월드컵 유치와 4강 신화를 이룩하는 등 ‘중후장대(重厚長大) B2B 기업’ 현대중공업 밖에서 경험을 쌓은 것이 정 부사장의 성공적인 경영승계 및 기업문화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노사상생을 향한 현대중공업의 기업문화 정착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가적으로도 노사문제는 역대 대통령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다.

하지만 급변하는 조선산업의 여건과 노사 양측의 세대 변화로 인해 과거에 비해 소통과 상생의 가능성이 넓게 열려있다.

그렇기에 ‘정기선 리더십’이 더욱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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