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뉴 리더] 현대중공업 정기선 부사장(상) 합리성과 유연함 바탕, ‘정주영 리더십 재창조’ 과제
이상호 전문기자 | 기사작성 : 2019-07-24 07:07   (기사수정: 2019-07-2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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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대 조선사인 현대중공업 3세 경영에 나선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 [사진제공=현대글로벌서비스]

삼성과 현대·기아차, LG그룹 등 대한민국 경제신화를 이룩한 주요 대기업의 창업주에 이어 2세까지 별세하거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남으로써 창업 3·4세대 경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들 3·4세대는 ▲연령 30~40대의 ‘X세대’이자 ‘N세대’적인 특성에 ▲외국 유학을 통한 경영수업, 글로벌 의식을 가진 사람들로 선대가 만든 기업문화의 토대 위에 각각의 경영철학과 전략으로 새로운 기업문화를 추구하고 있다. 뉴스투데이 는 이와 같은 3·4세대 경영시대의 새로운 기업문화 트렌드를 해당 기업 현장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文대통령 청와대 초청 계기, 정기선 ‘현대중공업 3세경영’ 가시화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이원갑 기자]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30대 그룹 총수와 최고경영자(CEO)들을 초청, 일본의 수출규제 대책을 논의했을 때, 가장 눈길을 끈 인물은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이었다.

38살의 정 부사장이 대통령 주재 행사에 주요 그룹 총수와 함께 참석함으로써, 자산규모 기준 국내 10위 기업인 현대중공업그룹의 ‘오너 경영’ 부활이 가시화되고 있다.

당초 이 행사에는 전문경영인인 권오갑 그룹 부회장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청와대 쪽에서 정 부사장의 참석을 권했다고 한다.

앞서 지난달 26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부총리와의 회담 이후 진행된 오찬에도 정 부사장이 참석한 바 있다.

▲ 10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대주주 정몽준 정치·스포츠 활동으로 현중(現重), 오랜 전문경영인 체제
현대중공업은 한국경제의 기적을 상징하는 세계 최대 조선회사다. 정주영 창업주가 울산 바닷가 허허벌판에 조선소 부지만 잡아 놓고 거북선 그림이 있는 500원권 지폐로 영국 은행을 설득해서 만들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현대중공업은 1973년 설립된 이후 글로벌 조선시장 점유율 1위를 놓치지 않으며 대한민국을 ‘조선대국(造船大國)’으로 이끌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현대중공업이 본궤도에 오르자 서울대 졸업 후 미국 유학을 다녀온 6남 정몽준 현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에게 경영을 맡겼다.

정몽준 이사장은 현대중공업에서 1982년에 사장, 1987년에 회장을 지내며 현대중공업을 세계 1위 조선회사에 올려놓았다.

그는 1988년 제13대 총선을 시작으로 7선 국회의원을 비롯해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 후 대선 출마, 2009년 한나라당 대표 취임 등 오랜 기간 정치와 스포츠외교 분야에서 활동했다.

정 이사장은 1991년 현대중공업 고문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는데, 이후 현대중공업은 10대 그룹 가운데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유일한 기업으로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왔다.


겸손하고 수줍은 성격, 아버지와 ‘판박이’

정몽준 “골치 아프게 경영까지...” 가업 승계 부정적

정기선 부사장은 아버지 정몽준 전 의원과 여러모로 닮았다. 우선 아버지처럼 공부를 잘 했다. 아버지 정몽준 이사장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아들 정기선 부사장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나왔다.

정 이사장이 미국 컬럼비아대·MIT·존스홉킨스대에서, 정 부사장은 스탠퍼드대에서 대학원을 졸업하며 미국 명문대 유학도 다녀왔다.
부자 모두 학군사관(ROTC)으로 군 복무를 한 30 기수 선후배 사이기도 하다.

정기선 부사장은 말수가 적고, 겸손하며, 수줍어하는 성격도 부친과 판박이라고 한다.

정몽준 전 의원이 정치권에 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자녀들에게는 회사 경영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말한 바 있다. “미국처럼 대주주로 편안하게 살면 되지 골치 아프고 피곤하게 경영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라는 것이었다.

현대중공업 사장과 회장을 역임하면서 자신이 겪었던 고달픈 경험을 자녀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은 심정을 토로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군 복무를 마친 정 부사장의 첫 직장은 뜻밖에도 동아일보 기자로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재직했다.

아버지 정 전 의원은 국회의원 시절 입버릇처럼 “나는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다”라고 했는데, 그 영향이 많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한편으로는 장남에게 회사 경영 외에 좋아할 만한 일이나 직업을 찾아보는 기회를 만들어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 부사장은 지난 2006년 현대중공업 재무팀에 입사해 대리로 근무했고 미국으로 유학해 MBA를 취득하고 보스턴컨설팅그룹 등에서 경험을 쌓은 뒤 현대중공업으로 복귀했다.

“범(凡)현대 수평·수직 분업 구조, 現重그룹만 소유-경영 분리는 불가”

정기선 부사장이 가업 승계의 길로 가게 된 것은 ‘필연’으로 보인다. 주요 대기업이 창업한 지 50년 정도밖에 안 돼 재계 전반에 가족 경영이 뿌리내린 재계 상황에서 현대중공업과 같은 큰 회사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기는 쉽지 않은 현실이다.

현대·기아차 그룹을 비롯한 범(凡)현대가 기업 대부분이 3세 경영체제에 돌입하고 있는 것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주영 회장 시절 현대그룹 계열사 CEO를 지낸 인사는 “현대그룹은 현대건설과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라는 3대 주력기업을 중심으로 정주영 창업주의 형제 및 자녀들이 계열사를 맡아서 수평 및 수직분업을 이루는 기업”이라며 “아직도 범현대가를 통해 이런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대중공업이 소유와 경영의 분리로 현대 가문에서 이탈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은 선박 건조비용의 20%에 달하는 막대한 양의 선박용 후판(厚板)을 현대제철 등으로부터 조달하는데, 현대제철 입장에서 현대중공업의 경영권이 다른 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원하겠느냐는 것이다.

정몽준 전 의원이 당초 생각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 그룹 안팎에서는 정 전 의원의 부인 김영명 여사와 정주영 전 회장의 막내 동생인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부회장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현대울산조선소 모습. [사진제공=현대중공업]

그룹 선박·해양영업,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 겸직

활발한 대외활동, 실적 통해 경영능력 ‘과시’

정기선 부사장은 현재 그룹 내 선박·해양영업 부문 대표와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도 겸직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2014년 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의 영업조직을 통합해 그룹 선박·해양영업본부를 출범시켰다.

당초 가삼현 사장이 영업본부의 사업대표였고 정 부사장은 부문장이었는데 가 사장이 지난해 11월 현대중공업 공동 대표이사에 선임되면서 대표가 됐다.

가 사장이 현대중공업 대표 자리에 오른 것 또한 정 부사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정 부사장은 지난 몇 년간 주로 미래사업 분야에서 경영 전면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다.

지난해 5월 로봇 사업과 관련해 현대중공업지주와 독일 쿠카그룹의 업무협약을 직접 나서서 체결했고 8월에는 카카오인베스트먼트 등과 의료빅데이터 합작 법인 설립 계약을 맺기도 했다.

그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현대글로벌서비스의 매출이 급신장하면서 그룹 내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선박의 개조 및 유지, 보수사업 등을 하는 이 회사는 친환경 선박 개조 시장이 블루오션으로 주목받으면서 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은 지난해 4월 기자간담회에서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정기선 부사장이 지난 2014년부터 강력히 주장해 세우게 된 회사"라며 "스스로 책임지고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판단해 대표이사를 맡긴 것"이라며 힘을 실어 줬다.

▲ 2017년 6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뒷줄 첫 번째)의 장녀 정남이 아산나눔재단 상임이사(앞줄 세 번째)의 결혼식에 모인 가족. 부인 김영명 예올 재단 이사장(앞줄 네 번째),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뒷줄 두 번째), 차녀 정선이 씨(앞줄 다섯 번째), 차남 정예선 씨(뒷줄 여섯 번째) [사진제공=연합뉴스]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5.1% 확보…3대 주주

아버지 정몽준 지분 상속에 1조원 필요

정기선 부사장은 지난해 3월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5.1%를 확보, 3대 주주가 됐다. 정 부사장이 현대중공업그룹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최대 주주인 아버지 정몽준 전 의원의 지분 25.8%를 물려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속세만 1조원 가량을 내야 할 것으로 추산되는 만큼 상속자금 마련이 큰 과제다.

이와 관련, 정 이사장과 정 부사장은 지난해 보유 주식을 담보로 수천억 원대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분 확보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38살의 나이에 아직 미혼인 점, 정몽준 이사장의 나이와 건강을 감안할 때 정기선 부사장의 전면 등장이 빠른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최근 재계 경영 판도가 급속히 창업 3, 4세대로 넘어가는 추세를 볼 때, 속도 조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실제로 정몽준 이사장은 1982년 31세의 나이에 현대중공업 사장이 됐고, 5년 뒤에는 회장에 올랐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30세인 1999년 현대자동차 이사로 경영에 참여해 5년 만에 기아자동차 사장으로 승진했다.

역시 현대가 3세인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2007년 35세의 나이에 회장이 됐다.

여기에 최근 청와대가 정기선 부사장을 ‘실질적인 오너’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고, 삼성과 LG, 한화 등 3세 경영에 나선 오너들과의 관계 등 재계에서도 ‘정기선 현대중공업 체제’는 기정사실화 되는 양상이다.

합리성과 유연함 바탕 ‘정주영 리더십 재창조’ 과제

현대중공업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과정은 지금까지 비교적 순탄했고 전망 또한 밝아 보인다. 하지만 현대중공업그룹은 웬만한 기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국가·사회적 상징성이 큰 기업이다.

‘대한민국 경제신화의 거목(巨木)’인 창업주 정주영 전 회장의 족적이 남아있고 국민적 자부심의 대상이면서 울산 등 지역 사회와 끈끈하게 연결돼 있다.

여기에 ‘투쟁적 노조’의 원조인 현대중공업 노조와 대우조선해양과의 합병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예고되고 있다.

정기선 부사장은 할아버지 고 정주영 전 회장을 ‘롤 모델’이자 스승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30년 세월 동안 정치인이자 스포츠 외교인의 길을 걸으며 2002 월드컵 신화를 이루는 한편 부의 사회환원을 위해 노력해온 아버지도 무척 존경한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재창조하고,아버지 정몽준 이사장의 실적을 넘어서는 것이 관건이다. 다른 재벌기업 3세에 비해 훨씬 벅찬 숙제라고 할 수 있다.

그를 지켜봐 온 현대중공업 관계자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한 임원은 “정주영 회장과 정몽준 이사장을 합쳐놓은 것 같은 훤칠한 키와 외모, 소탈하고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다 보니 직원들이 잘 따른다”라고 전했다.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도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 모두 지켜본 바로는 정말 겸손하고 성실하다”라고 평했다.

창업 3,4세대, 젊은 경영인들의 특성이자 장점은 합리성과 개방성, 창의성이다. 정기선 부사장이 합리성과 유연함을 바탕으로 정주영 리더십을 재창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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