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전쟁사] (7) 대한국민이면 반드시 기억해야할 8월 1일
김희철 칼럼니스트 | 기사작성 : 2019-07-24 10:04   (기사수정: 2019-07-2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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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병들을 학살하는 일본군(왼쪽) 과 일제시대 미국 주간지 '’더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에 실린 ‘1919년의 십자가 처형'이라는 제목의 한국인들이 십자가에 양팔을 묶인 채로 처형을 기다리는 모습 [사진제공 = 김희철/연합뉴스]

1907년 8월 1일 오전 11시 '대한제국 군대' 강제 해산

황실근위 시위대 제 1대대장 ‘박승환’ 참령, 충성을 다하지 못했다며 자결

전국적인 연합의병으로 ‘13도창의군’ 1만여명 결성, 서울탈환 작전을 전개

국가와 군대 없는 국민은 노예, 국가와 군은 공동운명체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지금부터 112년 전인 1907년 8월 1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날은 과거 우리가 대한(大韓)의 이름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상실한, 한마디로 거세를 당한 날로 오늘날 우리가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꼭 기억해야만 하는 날이기도 하다.

1907년 7~8월 고종황제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되었다. 1907년 8월 1일 오전 11시 동대문 밖 훈련원에서는 대한제국 군대가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그날 아침 맨손 훈련을 한다고 소집해 놓고 군부협판 ‘한진창’이 새로 왕위에 오른 순종황제의 군대해산 소칙을 낭독했다. 그 자리에서 한 사람 한 사람씩 계급장이 떼어지고 이들에게는 약간의 돈 몇 푼만 쥐어졌다. 해산당한 군인들은 지금의 종로와 을지로로 걸어 나와 돈을 땅바닥에 내던지면서 백성들과 함께 대성통곡 했다.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기 2년 전엔 ‘이근택’군부대신 등 을사 5적에 의해 우리의 외교권은 박탈됐고, 그 이전인 1894년의 청일전쟁, 1904년의 러일전쟁을 거치며 우리도 몰랐고 대비도 못했던 사이에 500년 조선의 역사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대한제국 군대해산 당일 황실근위 시위대 제 1대대장으로 국가보위와 황실보호 업무를 수행하던 ‘박승환’ 참령은 이 소식을 듣고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했으니 만 번 죽은 들 무엇이 아깝겠는가”라며 자결했다.

격분한 우리 군인들이 무기고를 털어 당시 숭례문 밖에 있던 일본군대 진영으로 쳐들어 갔다. 일본군들은 기다렸다는 듯 사격을 시작했고 그 자리에서 마지막 대한제국 군대 78명이 전사했으며 치열한 시가전은 계속됐다.

일본군은 막강한 화력을 동원해 공격했고 탄약이 떨어진 마지막 우리 군인들은 백병전을 감행하면서 최후의 항전을 벌였지만 패하고 말았다.

군대가 해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 군인들은 의병에 합류하였다. 이에 의병의 전투력은 강화되었으며 봉기 지역 역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민긍호는 원주에서, 지홍윤과 연기우는 강화에서 군인들을 이끌고 의거를 일으켰다. 이들은 유격전에 능숙하여 상당한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 이들과 더불어 경북 문경의 이강년, 강원도 원주의 이은찬, 호남의 기삼연·심남일·전해산·안규홍, 황해도의 이진룡·조맹선, 함경도의 홍범도, 경북 영천의 정환직 등이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투쟁하였다.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자, 이인영과 이은찬과 허위 등은 1907년 말 연합의병으로 ‘13도창의군’을 결성하였다. ‘13도창의군’은 경기도 양주에 약 1만 여 명의 병력을 집결한 후 1908년 1월 서울탈환 작전을 전개하였으나, 일본군의 선제공격으로 패배하여 해산되고 말았다.

결국 대한제국의 군대는 해산되었고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났으나 나라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상실한 대한제국은 3년 뒤 일제의 식민지가 됐다.

그 후 우리 민족은 의병, 독립군, 광복군으로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일제에 항쟁해 나갔지만, 광복 이후 1948년 창군될 때까지 41년 동안 이 땅에 우리나라 군대는 없었다.

조선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정유재란이 막을 내리던 노량 앞바다에서 이순신장군이 최후를 맞던 날(1598.11.18), 서애 유성룡은 임진왜란 동안 수 많은 공적에도 불구하고 영의정에서 한 달 이상 체임되어 있다가 파직된다. 그 후 1607년 선대의 과오를 철저히 징계하고 후대의 후환을 경계하고자 ‘징비록’을 집필했는데 그 핵심은 “자강(自强)”이었다.

그러나 꼭 300년 지난 뒤, 서애의 경고를 망각한 조선은 불과 일본의 2개 사단의 무력 앞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나라 없는 국민은 노예이며, 군대 없는 나라 또한 나라가 아니다. 국가와 군은 공동운명체다.

다행히 누가 뭐라고 해도 대한민국은 위풍당당한 국군을 보유하고 있다. 1948년 건국과 더불어 국군이 창설됐으며, 6.25남침전쟁을 맞아 우방의 군대와 힘을 합쳐 훌륭하게 싸워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지금은 국토방위의 책임을 넘어 15여개 국가에 세계평화질서를 위한 평화유지군을 파견, 국위를 높이고 있다. 또한 “군대 갔다 와야 사람된다”는 말이 있듯이 국민교육의 도장으로도 우리 군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동해 삼척항 인근 목선 입항 귀순 축소 은폐, 서해 거동수상자 신고 조작 등으로 우리 군이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게다가 지난 17일 장관 주관 32사단 잠망경 해프닝 화상회의시 청와대 통제와 간섭 등 군의 위상이 계속 추락하고 있다.

우리는 대한제국 군대 해산 112주년을 맞이하는 8월1일, 치욕스런 역사가 주는 쓰디쓴 교훈을 꼽씹어야 한다. 철저한 정치적 중립으로 “싸우면 이기는 전투형 군대”로 재도약하는 대한민국 국군이 되야 한다.

한국인은 우리 국군이 참군인으로 보다 더 노력하기를 독려해야 한다. 우리 국군이 국민의 깊은 신뢰와 절대적 지지를 다시 회복하길 기대해 본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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