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전쟁사](5) 국군 17연대, '화령장 전투' 승리로 낙동강 방어선 구축
김희철 칼럼니스트 | 기사작성 : 2019-07-10 11:11   (기사수정: 2019-07-10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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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시 상현리에 위치한 ‘화령장지구전적비’와 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던 국군17연대 부대기 [사진 =동영상 캡쳐]
북한군 15사단, 7월 10일 음성을 점령 후 계속 남진

국군 17연대, 상주 화령장에서 북한군 2개연대 괴멸시켜


[뉴스투데이=김희철 컬럼 니스트]

김일성의 인민군은 1950년 6월 25일 불법남침을 시작했다. 9월 인천상륙작전까지 7~8월 무더위 속에 남한 전역은 피바다가 되었다.

한편, 북한군이 6월 28일 서울마저 점령하자 미국은 일본에 주둔하던 미 제8군에 소속된 제24보병사단을 우선 한국으로 파병했다. 한국군과 미군은 ‘평택-충주-울진’을 잇는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막으려 했는데, ‘안성-평택’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미군은 금강 남쪽 지역으로 후퇴했다.

국군도 소백산맥의 ‘이화령-조령-죽령’ 지역으로 물러났다. 그러자 육군본부는 ‘문경-함창-상주’로 이어지는 지역에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7월 12일 함창에서 제6사단과 제8사단 병력을 중심으로 제2군단을 창설했다.

제1군단에 소속되어 청주에서 북한군과 싸우고 있던 국군 제17연대(인천상륙작전 참가)도 제2군단으로 소속이 바뀌었으며, 제6사단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기 위해 함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교통의 중심지인 화령장에서 유엔군 방어의 성패를 결정하는 기습결전 시도

후송된 백인엽 대령을 대신해 김희준 중령이 지휘 맡아 '대승' 거둬

부지휘관의 중요성 재인식 계기 돼


화령장은 경상북도 상주 북부인 화서면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보은과 괴산에서 상주로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임진왜란시에는 정기룡 장군이 의병을 조직하여 용화동 전투에서 승리하고 상주성도 탈환했던 국난극복의 현장이자 충절의 고향이기도 하다.

북한군 제2군단은 음성∼괴산 방면으로 남하한 제15사단을 상주 점령 목표로 화령장에 투입하였다. 북한군 제15사단은 동락리 전투에서 국군 6사단의 기습으로 괴멸된 예하 48연대를 재편성하여 7월 10일 음성을 점령한 후 보은 및 괴산∼상주 방면으로 계속 남하하였다.

부상을 당해 후송된 백인엽 대령 대신 부대를 지휘하여 함창으로 향하던 국군 제17연대의 부연대장 김희준 중령은 7월 17일 북한군이 괴산에서 상주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갈령을 넘어 화령장 방면으로 진격해오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는 곧 선두로 화령장 지역에 도착해 있던 1개 대대 병력으로 공격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갈령 아래 하송리와 상곡리 일대에 주둔지를 편성하고 있던 북한군 제15사단 제48연대 병력을 기습공격하여 250여 명을 사살하고 30여 명을 생포하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


▲ ‘화령장지구전투 상황도’와 17연대가 북한군 포로를 심문하는 모습 [사진 =동영상 캡쳐]
다음날인 7월 19일 제17연대장 김희준 중령은 북한군 제45연대가 후속하여 화령장으로 접근하는 것을 포로의 노획문서를 통해 알았다. 이에 제17연대장은 화령초등학교에 대기 중이던 제2대대를 봉황산으로 진출시켜 봉황산(741m) 너머 상주시 화남면 동관리의 갈령과 장자동 일대에 진지를 구축하고 매복시켰다. 예비인 제3대대는 제2대대 좌측인 장자동으로 이동하였다.

7월 20일 갈령을 넘어오는 북한군 제45연대 병력에게 오전부터 시작된 공격은 오후 2시까지 치열하게 전개되어 제2대대는 북한군 350여 명을 사살하고 26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북한군 제15사단은 예하인 제45연대가 동관리의 갈령 일대에서 기습을 받고 큰 타격을 입자, 동관리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에 따라 국군 제17연대장은 북한군이 전면공세를 취할 경우 이를 막아내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군단사령부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북한군 전면공세를 17연대가 긴급 투입된 1사단과 함께 격퇴

군단에서는 제1사단을 화령장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7월 22일 오전 화령장으로 이동한 제1사단은 예하 11, 12, 13연대 3개 연대를 화령장 부근에 전개한 후 갈령 고개 북방으로 북한군을 격퇴하기로 하였다. 7월 23일과 24일 제11연대는 갈령 부근에서 북한군을 공격했고, 23∼25일 제12연대는 장자동 부근에서 북한군과 격전을 치뤄 결국 북한군을 격퇴하였다.

국군 제1사단과 제17연대가 화령장 부근에서 북한군 제15사단과 일주일 넘도록 교전을 벌이고 있던 7월 24일, 작전지역을 미군에 인계하고 안동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음으로써 화령장 전투는 끝났다.


북한군 전선사령부의 '대구 조기진출 계획' 좌절시키고 인천상륙작전 참가

북한군은 상주 화령장 전투에서 예하 제15사단의 2개 연대가 괴멸되는 참패를 당했고, 병력과 장비의 대부분을 상실하였으며 북한군의 진격이 1주일 이상 지연되었다. 이 패전으로 북한군 15사단은 해체됐고 사단장 박성철은 인책, 해임당했다고 한다.

이 전투는 소백산맥의 험준한 지형을 뚫고 상주를 점령한 후 일거에 대구로 진출하려는 북한군 전선사령부의 계획을 좌절 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군과 유엔군이 방어 체계를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준 의미 있는 전투이다.

특히 국군 제17연대(김희준 중령)는 이 전투에서 600여명 이상의 북한군을 사살하고 1천여 점의 북한군 병기를 노획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러한 공으로 연대 장병 모두가 1계급 특진의 포상을 받았다. 또한 국군17연대(수도사단장을 하던 백인엽 대령이 연대장으로 재임명 됨)는 2개월 뒤인 9월,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여 서울 수복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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