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꽃’ 탐관오리 방불케 하는 농어촌공사의 ‘갑질’
이상호 전문기자 | 기사작성 : 2019-07-08 13:34   (기사수정: 2019-07-08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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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이 가득 차 있는 산정호수(왼쪽)와 최근 바닥을 완전히 드러낸 산정호수의 모습. [사진제공=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 주민회]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태양광발전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사장 김인식)가 한편으로 조선 말기 탐관오리 수준의 횡포와 갑질로 원성을 사고 있다.

농어촌공사의 횡포와 갑질은 최근 한 방송사의 인기 드라마 ‘녹두꽃’에서 농민들이 동학혁명을 일으킨 결정적 원인이 된 고부군수 조병갑식의 ‘봉건적 횡포’가 100년이 지나도 공공기관 특유의 권위주의 등 문화적 잔재이자 적폐로 남아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연 70만 명 찾는 ‘한국의 하롱베이’ 포천 산정호수

농어촌공사가 물 퍼내는 바람에 바닥 드러내


한국농어촌공사는 일제 강점기인 1925년에 축조된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에 있는 국민관광지 산정호수를 관리하고 있다.

산정호수의 넓이는 1,537ha, 저수량은 1,923㎥으로 경기 북부지역에서는 가장 큰 호수로 꼽힌다.

호수 주변에는 명성산(해발 923m)과 망봉산, 망무봉 등 높고 낮은 산이 병풍처럼 호수를 둘러싸고 있어서 마치 베트남의 유명 관광지 하롱베이와 같은 풍광을 자랑한다.

서울에서 70㎢ 이상 북쪽에 해발고도가 높아 여름에도 가을 같은 날씨여서 연간 70만 명의 관광객이 산정호수를 찾아 1977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됐다.

그런데 최근 산정호수가 완전히 바닥을 드러냈다. 농어촌공사가 농지용수 공급을 위해 산정호수의 물을 모두 퍼냈기 때문이다.


지하수 고갈로 호수주변 주민들 큰 고통

관정허가 요청에 농어촌공사 “우리 땅엔 안돼!”


산정호수 주변에서 식당을 하는 주민들은 상수도가 없어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는데 호수가 바닥을 드러내자 지하수가 고갈되는 바람에 극심한 ‘물난리’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영북면과 산정호수 주민들이 최근 급히 예산을 마련해 호수 주변에 관정(管井)을 굴착하려 했으나 산정호수 및 주변 토지 소유권을 가진 농어촌공사는 “그 어떤 시설도 허가할 수 없다”며 단칼에 거절했다.

8일 영북면 주민이자 전국농민회 경기도 의장인 이길연 씨는 “식수 등 식당에필요한 물이 나오지 않는데도 농어촌공사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한국농어촌공사 가평·연천·포천지사의 김종택지사장에게 관정 굴착을 허가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농어촌공사 땅에는 어떤 시설물도 설치할 수 없다면서 거절했다”고 밝혔다.

농어촌공사는 지금까지 매년 봄철이면 인근 농지에 용수 공급을 산정호수의 물을 빼왔지만 호수가 바닥을 완전히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기도는 남경필 도지사 시절인 2016년 98억 원의 예산을 들여서 한탄강 인근에 대체 농수 공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물을 퍼올리는 모터가 여러 차례 녹아버리는 등 부실공사로 아직까지 완공을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산정호수 주민들은 관광객 감소뿐 아니라 올해처럼 지하수가 고갈되는 등 극도의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이다.


농어촌공사 갑질, 토지불하 갈등에 ‘앙금’?


농어촌공사는 그동안 산정호수 주민들과 갈등을 겪어왔다. 현재 산정호수 바로 옆에서 음식점을 하는 산정리 주민은 30여 가구에 이른다.

이들은 1970년대 초, 산정호수에 관광객이 많아지자 농어촌공사 땅에 간이식당을 차려 오늘에 이르고 있다. 농어촌공사는 지난 수십년 간 이들 음식점들로부터 부동산업자 못지않는 액수의 사용료를 받아왔다.

농어촌공사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사용료를 거둬서 착복하는 바람에 이중으로 사용료를 낸 사례도 허다했다. 농어촌공사는 그러면서도 오래된 건물의 개축은 일체 허용하지 않는 등 이중적 태도를 보여왔다.

주민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농어촌공사에 돈을 낼 테니 토지를 불하해달라고 요청하고 소송도 했지만 응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 관정 굴착을 거절한 것도 이런 갈등으로 인해 ‘앙금’이 쌓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아시아 최대 승진사격장, 파편과 소음, 국가안보 위한 주민들 60년 희생 외면


산정호수 주변에서 식당을 하는 30여 가구는 모두 이 지역 농사꾼 출신이다. 산정호수 바로 옆, 명성산의 동남쪽 사면에는 한미 양국 군이 사용하는 아시아 최대의 사격장, ‘승진사격장’이 있다.

한국전쟁 직후 생긴 승진사격장에는 주말도 없이 일주일 내내, 밤늦게까지 항공기 및 대형 곡사포에 의한 폭격과 포격이 그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난 60여 년간 수많은 주민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오발탄(誤發彈)과 도비탄(跳飛彈)으로 인해 목숨을 잃고 부상 당하기도 했다.

농업만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주민들 상당수는 승진사격장 주변의 탄피를 주워 팔기도 했다. 현재 산정호수 주변에서 식당을 하는 30여 가구의 주민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식당 부지가 농어촌공사 소유이기 때문에 매매도 안되고 외지인에 의한 투기 대상도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가 가장 중시하는 공공기관의 존재 이유는 대국민서비스다. 그런데도 농어촌공사는 ‘태생 유전자’인 ‘지주의식’을 못 버리고 있다. 농어촌공사가 갑질을 하는 대상은 지난 60년간 국가안보를 위해 희생해온 사람들이다.

포천시 자원봉사위원장 이성용(40) 씨는 “국가가 정당한 보상은 못할 지 언정 먹고사는 것도 못하게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동학란을 유발한 조병갑의 횡포를 보는 듯하다”라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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