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전쟁사](4) '조종사의 날'을 만든 한국판 가미가제, 고(故) 이근석 장군
김희철 칼럼니스트 | 기사작성 : 2019-07-03 10:20   (기사수정: 2019-07-0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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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군 11전투비행단소속으로 6·25 전쟁당시 장렬히 산화한 고(故) 이근석 장군 동상에 헌화한 뒤 거수경례를 하는 前 공군군수사령관 윤우(공사28기) 장군 모습 [사진 제공=공군군수사령부]

추모해야 할 전쟁 영웅인 '한국판 가미가제' 고(故) 이근석 장군

1950년 7월 3일 F-51 무스탕 전투기 첫 출격에서 산화
[뉴스투데이=김희철 컬럼 니스트]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판문점 회동이 트럼프 대통령의 제의에 따라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이어 "1953년 정전협정 이후 66년 만에 조·미 두 나라 최고 수뇌분들께서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에서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역사적인 악수를 하는 놀라운 현실이 펼쳐졌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앞으로도 긴밀히 연계해나가며 조선반도 비핵화와 조미관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나가기 위한 생산적인 대화들을 재개하고 적극 추진해나가기로 합의하셨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북미 정상회담으로 인한 긍정적인 남북 대화와 화해 협력도 좋지만 69년 전 동족상잔의 비극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7월이 되면 꼭 기억하고 추모해야 할 전쟁 영웅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6·25 남침 전쟁 중이던 1950년 7월 3일 경기도 수원부근 상공, 왼쪽 날개에 불이 붙은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 F-51 무스탕 한 대가 연기를 내뿜으며 북한군 탱크 20여대가 있는 무리로 돌진하는 한국판 가미가제가 있었다.

“3번기 도로 좌방 탄약차량 공격, 건투를 빈다! ...”

대공포 맞자 북한 전차 부대 한 복판으로 뛰어들어

공군은 11년 전 7월 3일을 '조종사의 날'로 정해

고(故) 이근석 장군(공군준장 1917. 1.17 ~ 1950. 7.3)은 평양보고를 졸업하고 17세에 일본 구마가아 비행학교에서 조종술을 배웠다. 담당 교관이 ‘비행술의 천재’라고 할 만큼 재능이 뛰어났다. 광복 후에는 한국 공군 창설에 힘을 쏟았다. 1948년 조선경비 사관학교 1기 간부후보생으로 졸업한 뒤 육군소위로 임관했다. 육군 항공기지 사령부에서 비행단장으로 근무한 뒤 육군대령으로 진급했다.

당시 한국군에는 연락기와 정찰기 30여 대만 보유하고 전투기는 없었다. 군 당국은 이 항공기로는 남하하는 북한군의 T-34 전차를 막을 수 없다 판단하고 6월 26일 이근석 대령을 포함한 10여 명의 조종사를 일본 이다쓰케 기지에 급파해 미공군으로부터 F-51 무스탕 전투기를 인수받게 했다.

체계적인 교육 훈련도 받지 못한 10여 명의 조종사들은 10대의 F-51 무스탕 전투기를 직접 조종해 현해탄을 건너오게 됐으며, 이것이 우리나라 첫 공군 전투기 조종의 시작이었다. 남침해 온 북한군에 맞서 싸울 전투기가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 조종사들은 경비행기 22대를 총동원해 초저고도로 비행하며 포탄을 손으로 투하해 전투를 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북한군의 서울진입을 24시간 동안이나 지연시키는 성과도 거뒀다. 급박한 전쟁 상황 때문에 이근석대령을 포함한 이들은 도착 다음 날인 7월 3일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해 도입한 F-51 무스탕 전투기의 첫 출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이 첫 비행에서 이근석 대령은 안타깝게도 적의 대공포를 맞았다. 순간적인 대공포에 엔진이 명중되자 탈출하기는커녕 적군 전차부대 한 복판으로 돌진해서 비행기와 함께 산화했다. 이근석은 “3번기 왼쪽 탄약차량 공격, 건투를 빈다”는 마지막 명령을 내린 뒤 이같은 희생적 공격을 함으로써 첫 전투기 조종사 전사자로 기록되게 됐다.

이 대령에겐 후에 최고의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이 내려지게 됐으며 공군은 2008년 7월 3일 전투기 첫 출격을 기념해 이날을 ‘조종사의 날’로 선포했다.

지금도 고 이근석 준장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용기를 기리기 위해 정기적으로 대구에 있는 이장군 동상에서 7월 기일을 전후해 추모식을 열고 있다. 공군의장대원 군악대 50여명이 군악을 울리고 한국항공 소년단 30여명도 동상 앞에서 경례를 한다. 공군군수사령관 등 현역 공군장군들도 매년 참가한다. 대구 비행장은 이장군이 생전 마지막으로 출격한 곳이기도 하다.

우리 군의 후배와 일부 국민들은 고 이근식 준장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 부패 척결의 마지막 표적으로 군이 활용되고, 과거 군사정권에 대한 좋지 않은 경험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군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고 있다. 미국 시민들이 군을 아끼는 마음에 비하면 고 이근석 장군에 대한 추모행사는 아무것도 아니다.

음지에서 묵묵히 충성하는 많은 군인들에게 배려와 격려 필요

그래서 몇 가지를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숨겨져 있는 전쟁 영웅들을 찾아 추모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참군인으로 존경 받던 고 한신·채명신장군, 월남전의 영웅 고 강재구·이인호 소령, DMZ에서 솔선수범하다 순직한 고 강병식 대령, 연평해전의 고 윤영하 소령을 포함한 6용사 등 숨겨져 있는 많은 영웅들을 찾아내고 추모해야 한다. 또한 현재 복무하는 군인들과 국민들에게 홍보하고 그 뜻을 이어 받도록 행사를 확대하고 고위급 정치인부터 솔선해야 한다.

둘째, 현역들 중 무기체계사업 등 많은 예산을 다루는 자들은 소탐대실(小貪大失) 명언을 명심해 정직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과거 린다김 사건으로 이미 망쳐놓은 백두금강 사업을 당시 현역 중령(現예비역 준장 서용석)이 도맡아 미 록키드사와 긴밀히 협조해가장 저렴한 예산으로 현재에 정보획득 시스템으로 발전시킨 좋은 사례도 있다. 아무튼 중용(中庸)에 있는 ‘계신호기소불도(戒愼乎其所不睹), 공구호기소불문(恐懼乎其所不聞)’라는 말처럼 보이지 않는 바에 경계하고 삼가며, 들리지 않는 바에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자세로 모든 사업에 임해야 한다.

셋째, 우리 국민들은 일부 그릇된 정치군인들이 전부가 아님을 분명히 알고, 음지에서 묵묵히 충성하는 많은 군인들에게 배려와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필자가 2011년 육본정책실장 근무 시 업무차 미국에 갔다가 일반 식당을 들렸는데 그곳에 있던 시민들이 군복을 입은 군인들을 보고 모두 일어서서 격려의 박수를 치는 모습을 목격하고 큰 감동을 받았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정치권에서 적폐 척결의 표적으로 군이 매도되고, 과거 군사정권에 대한 좋지 않은 경험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군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많은 국민들이 이국 만리 생활여건이 안좋은 곳에서 해외파병부대로, 전후방 각지 격오지에서 책무를 다하는 우리 아들과 딸들에게 격려와 배려를 보내고 있다.

군인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현재 이처럼 침묵하고 있는 많은 현명한 시민들도 있다는 것에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에 희망을 걸어 본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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