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위기관리] 북한의 '신(新) 통미봉남', 고육지책이지만 '외교적 결례'
김희철 칼럼니스트 | 기사작성 : 2019-06-27 15:21   (기사수정: 2019-06-2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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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국장 권정근은 미국에는 대화 재개를 원한다며 '온전한 대안'을 갖고 나와라 하고 남측에 대해서는 북미간 소통 과정에 '참견하지 말라'고 강조해 과거 북한의 '통미봉남 외교전술'의 재연 우려를 낳고 있다. [사진제공 =연합뉴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대규모 식량난)으로 아사자 300만명 발생

WFP를 통한 국내산 쌀 5만톤 대북지원 행정절차 6월말 내 마무리

북한 외무성 국장, "조미간 대화에 남조선은 참견 말라"

문재인 대통령의 적극적 역할 견인하려는 고육지책?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중재자 역할 해온 한국 정부에 대한 '외교적 결례'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1995년 대홍수와 1996~1997년 가뭄 탓에 극심한 기근이 겹치며 북한은 처음으로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할 정도의 극심한 식량난에 빠졌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운 대규모 식량난으로 아사자가 무더기로 발생한 사건이다. 먹을 것이 없어 나무뿌리도 삶아 먹었다는 참혹한 기근이었다. 이 기간 동안 정확히 알 순 없으나 사망자만 3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식량공급 사정이 나아져 최소 소요량을 거의 충족하고 있으나 남한과 비교하면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1996년 이후 약 16회에 걸쳐 2억4000만달러를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의 북한 취약계층 지원사업에 공여했다.

그러다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사태가 터지면서 이런 지원을 전면 중단했다. 문재인정부도 2017년 9월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의 취약계층을 돕는 사업에 800만달러를 우선 지원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로 아직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금년 5월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은 최근 공개한 '5월 북한 국가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식량 불안정과 주민들의 영양실조가 만성적이고 광범위하다"며 "특히 여성과 어린이 등 취약계층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식량계획(WFP)가 집계한 식량 부족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의 수는 1010만명이다. 이는 북한 전체 인구의 40%가 넘는 수준이다.

통일부는 지난 2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보고에서 대북 식량지원에 필요한 남북협력기금을 지출하기 위해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열고 서면심의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사안의 시급성을 고려해 이번 6월안에 관련 절차를 끝낼 방침이다.

지원 안은 국제시세로 약 270억원 어치인 쌀 5만톤과 세계식량계획(WFP)에 지급할 수송·모니터링 비용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27일 조선중앙통신에 등장한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은 이날 담화문을 통해 "미국과 대화를 하자고 하여도 협상 자세가 제대로 되어있어야 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과 협상을 해야 하며, 온전한 대안을 가지고 나와야 협상도 열릴 수 있다"고 밝혔다.

권 국장은 "미국이 쌍방의 이해관계에 다같이 부합되는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할 생각은 하지 않고 대화 재개를 앵무새처럼 외워댄다고 하여 조미(북미) 대화가 저절로 열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권 국장은 이어 남측의 북미대화 '중재' 노력과 관련해 "조미 대화의 당사자는 말 그대로 우리와 미국이며 조미 적대관계의 발생근원으로 보아도 남조선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조미관계는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와 미국 대통령 사이의 친분관계에 기초하여 나가고 있다"며 "우리가 미국에 연락할 것이 있으면 조미 사이에 이미 전부터 가동되고 있는 연락통로를 이용하면 되는 것이고 협상을 해도 조미가 직접 마주 앉아 하게 되는 것만큼 남조선당국을 통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며 밝혔다.

권 국장은 또 "남조선당국자들이 지금 북남 사이에도 그 무슨 다양한 교류와 물밑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광고하고 있는데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며 "남조선당국은 제집의 일이나 똑바로 챙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 미국과는 실리적 통상외교를, 남한 정부의 참여는 봉쇄) 외교전술이 다시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권 국장은 "조미 대화가 열리자면 미국이 올바른 셈법을 가지고 나와야 하며 그 시한부는 연말까지"라며 "미국이 지금처럼 팔짱을 끼고 앉아있을 작정이라면 시간이 충분할지는 몰라도 결과물을 내기 위해 움직이자면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는 못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더불어 "미국은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가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위협까지 했다.

북한이 북핵협상의 교착상태에서 '신(新) 통미봉남정책'을 재가동할 것처럼 발언하는 이유는 뭘까. 한국의 역할을 부인하려는 게 속마음은 아닐 것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조력없이 자신이 원하는 '단계적 비핵화'를 관철시키기란 불가능한 구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히려 좀 더 적극적인 한국의 역할을 견인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이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과의 북핵협상 무산이후 처한 정치적 난국을 돌파하려는 의도가 강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성을 갖고 북핵협상의 조율자 역할을 수행해온 한국 정부를 배제하려는 듯한 제스처는 외교무대에서 중대한 '결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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