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전쟁사](2)'구월산 여장군' 이정숙과 '동락리 전투'의 김재옥
김희철 칼럼니스트 | 기사작성 : 2019-06-23 07:33   (기사수정: 2019-06-2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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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번 없는 여(女)전사’들과 이정숙(오른쪽) 여장군 [사진출처=국가보훈처]

'구월산 유격대 女將軍’으로 불린 고(故) 이정숙, 남편 김종벽 대위와 함께 반공 유격전

구월산 유격대 생존자, 정부에게 16만원 보조받아

‘김원봉 복권/서훈’ 보다 ‘6·25남침전쟁’의 숨은 영웅들 선양사업을 우선해야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6·25남침전쟁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며 서해무장대를 조직, ‘구월산 유격대 여장군(女將軍)’으로 불린 고(故) 이정숙도 있었다.

6·25 당시 구월산 유격대를 창설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워 충무무공훈장을 받은 남편 고(故) 김종벽 대위에 이어 부부가 동시에 일반적인 공로훈장이 아닌 무공훈장 수훈자로 건국 이래 처음이고 부부무공훈장 수훈은 전 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사례이다.

이정숙은 1922년 2월 함흥태생으로 6·25남침전쟁 직전 공산군 손에 부모와 남편을 잃었다. 본인도 복역하다가 탈출에 성공하여 1950년 10월 황해도 안악군에서 '서해무장대'를 조직, 무장대원 70여명과 농민군을 진두지휘하여 북한군과 싸웠다. 이후 서해무장대는 김종벽 대위가 이끄는 구월산 유격대에 합류하였다.

일명 동키 제2부대로 불린 구월산 유격대는 동년10월 중순,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과 이도면 등의 반공청년들로 조직된 '연풍부대'를 모태로 하여 육군본부 정보국 소속의 김종벽 대위가 후퇴 중 반공청년들의 자생적 무장조직을 규합한 최초 150여명으로 1950년 12월7일 창설한 유격대이다.

구월산 유격대에 합류한 뒤 이정숙은 김종벽 대위의 보좌관 직책을 맡아 다양한 특수작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특히 1951년1월18일 고립된 재령유격부대를 구출하기 위해 촌부로 가장한 채, 밤새 100리를 걸어 적 포위망을 뚫고 89명을 구출하였고, 이외에도 월사리 반도 상류작전, 어양리 지역 상륙작전 등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전쟁중에 육군참모총장 표창도 받았고 “구월산의 여장군”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여성 유격대의 상징으로 꼽히는 이정숙 구월산 여장군의 활약상은 1960년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바 있으며 최무룡 감독의 영화 “피어린 구월산”과 고우영 화백의 만화 “구월산 유격대”를 통해서도 생생하게 그려져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았으나, 최근 보수와 진보의 정치논쟁 속에서 전쟁영웅들의 활약상이 국민들의 뇌리 속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구월산 유격대와 더불어 백령도를 근거로 반공유격전을 펼쳤던 일명 “8240동키부대”의 전사자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윤보선 대통령이 1961년 8월 한국일보 사장 장기영의 협조를 받아 백령도에 “반공유격전적비”를 세웠던 것이다.

제 8240 동키부대는 황해도 일대의 마을 청년들이 스스로 조직한 결사대가 모체이다. 이름도 계급도 없는 유격대가 되어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중공군, 인민군들과 거의 맨손으로 싸워온 구월산 유격대에 감동한 미군이 이들이 지낼 수 있는 막사와 싸울 수 있는 무기를 공급하면서 조직한 부대이다.

따라서 구월산 유격대는 그때부터 무소속, 무계급의 유격대가 아닌 ‘제 8240부대 동키부대’ 소속이 되었고, 1951년 초에는 2500명으로 늘어났고 휴전 직후 해체될 때까지 800명 규모를 유지했다.

그들은 각종 유격전투를 하는 동안 적 사살 4000여명 생포 57명의 놀라운 전과를 올렸으며, 1954년 백령도로 철수하기 전까지 아군과 연합군들의 사기를 올리고 작전수행에 큰 시너지를 제공했다.

하지만 지금의 옹진군 백석면 형제 바위가 있는 비산곶 전투에서 이들이 탄 배가 적 포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175명 중 171명이 전사하고, 백령도를 사수하기 위해 싸우다 결국 516명이 목숨을 바친 것은 너무도 안타깝다. 그런데 정말 더 가슴 아픈 것은 이러한 분명한 역사가 존재하지만 구월산 유격대의 기억은 점점 사라지고 보상 또한 미흡하다는 점이다.

구월산 유격대 박부서 회장은 “구월산 유격대 생존자들에게는 정부에서 1인당 16만원을 지원하고 있다”면서 “과연 이것이 나라를 위해 장렬하게 전사, 혹은 생존자들에게 주는 합당한 보상이냐? ”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희생덕택에 오늘의 평안을 누리는 우리들은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하고 싶은 심정이다. 여기서 정부와 국회 그리고 언론들은 이러한 현실을 널리 알리고 적정한 보상이 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 충주 여교사 협의회에서 고(故) 김재옥 여교사의 추모를 기리기 위해 설립한 비문 [사진=김희철]


민간인 최초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고(故) 김재옥 여교사와 '동락리 전투'

김재옥이 제공한 북한군 정보를 활용해 기습한 국군, '화려한' 첫 승리 거둬

1966년 임권택 감독이 영화 '전쟁과 여교사' 만들어 빅히트

동락리 전투는 6·25 남침전쟁 초기 후퇴를 거듭하던 우리 국군에게 희망을 심어준 첫 번째 승리를 거둔 전투이다.

전투경과를 보면, 7월 4일 9시 충주중학교를 출발한 제6사단 7연대 2대대(대대장 소령 김종수)는 저녁에 충주 신덕 저수지에 이르러 진지를 점령했다. 제7연대장(중령 임부택)은 음성 방어가 긴급하다는 판단 하에 제1, 2대대를 무주리와 음성으로 이동 배치하고, 제3대대는 생극으로 전진시켰다.

7월 6일 북한군 제48연대는 “국군이 차를 타고 도망쳤다”라는 동락초교 ‘김재옥’ 여선생과 주민들의 말을 듣고 신양리까지 수색한 결과 국군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후 안심한 듯 동락리에 진출한 야포의 엄호 아래 신양리를 경유하고 음성으로 진출하기 위해 야음을 이용, 주력부대가 차량으로 7월 7일 새벽 5시경 동락리를 통과하고 있었다.

이때 국군 제7연대 3대대장은 공격 명령을 내렸고 적은 크게 당황하여 혼란에 빠졌다. 한편 가섭산 북쪽 644고지를 점령하고 있던 제2대대는 7일 새벽 5시 고지 아래로 신속히 내려가 6시에 공격을 개시하자 기습을 받은 북한군은 당황하며 동락초등학교 교정에서 국군 제 3대대 방향으로 사격을 하던 적의 야포가 2대대 방향으로 포구를 돌리고 있었다.

이때 제2대대 8중대장 신용관 대위는 81mm 박격포 1문으로 사격을 개시했다. 이에 북한군의 포진지를 파괴했고 후속탄에 의해 야적된 포탄 상자도 연쇄 폭발됐다. 이후 제 2대대는 북한군의 저항이 거의 없이 잔적을 소탕할 수 있었다.

동락리전투에서 국군은 ▲적 사살 2186명 ▲포로 132명 ▲122mm 곡사포 6문 ▲76mm 박격포 18문 ▲기관총 32정 ▲소총 1956정 ▲장갑차 4대 ▲1/2톤 트럭 60대 ▲1/4톤 짚차 15대 ▲사이드카 7대 ▲무전기/전화기 16대 ▲말 24필과 상당량의 탄약 등을 노획하며 6·25 남침전쟁 발발 이후 최초 승리이자 최고의 전과를 올리는 기록을 세웠다. 이에 비해 국군의 손실은 전사 9명, 부상 53명뿐이었다.

노획장비는 대전에서 국민에게 전시함으로써 국군의 승리를 국민에게 널리 알렸다. 노획품은 소련 제품이라는 표시가 있어, 소련이 6·25전쟁에 개입했다는 증거로 유엔에 보내졌다. 승전 보고를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제 7연대 전 장병에게 1계급 특진의 영예를 주었다.

이 동락리 전투의 승리는 북한군의 통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달성할 수 있었다. 또한 북한군 실태를 국군에게 알린 동락초등학교 여교사였던 ‘김재옥’ 선생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민간인으로서 '태극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 전투는 ‘포화속으로’, ‘피어린 구월산’과 마찬가지로 1966년에 임권택 감독이 당대의 최고 스타배우 김진규와 엄앵란을 기용해 ‘전쟁과 여교사’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해 대히트도 했다.

학도의용군, 불암산 호랑이, 구월산 유격대 등 잊혀진 이름들을 다시 기억해야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참여한 것을 강조하면서 "통합된 광복군은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 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김원봉 복권 및 서훈’을 한 때 진행했었다.

한반도를 침공하여 ‘흥남철수’, ‘1.4후퇴’ 등 동족상잔의 비극을 더욱 심화시킨 중공군의 최고지도자인 시진핑이 이번 20일 북한을 국빈 방문했다. 정부는 이번 방북으로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이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인 상황에서 이뤄져 북미대화 재개의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6·25남침전쟁의 숨은 영웅들은 잊은 채 남침의 책임자 중 한 명인 김원봉 서훈과 시진핑 방북 결과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김원봉 복권 및 서훈’ 보다 오히려 ‘6·25남침전쟁’의 숨은 영웅들의 고귀한 영혼을 기리는 선양사업을 거국적이고 최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조선시대의 의병과 6·25 남침전쟁시 학도의용군, 불암산호랑이, 구월산유격대 등 처럼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떨쳐 일어난 '숨은 영웅들'에 대한 선양사업은 국가의 가치를 재확인시켜주는 의미가 크다.

매년 치러지는 구월산 유격대 추모행사시 제단 앞의 액자(박정희 대통령 휘호)에 적혀있는 명언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처럼 “세상이 아무리 평안해도 전쟁을 잊고 있으면 국가에 위기가 닥친다”는 뜻의 사마법의 명언을 6·25남침전쟁 70주년을 한 해 앞둔 시점에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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