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불려간 재벌총수]⑨ 구치소앞 비서실
이상호 전문기자 | 기사작성 : 2019-06-20 07:01   (기사수정: 2019-06-2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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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구치소 전경(왼쪽)과 SBS TV 드라마 '초면에 사랑합니다'에 등장하는 재벌 비서실 장면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서울구치소는 경기도 의왕시 포일동에 있다. 도로명 주소로는 의왕시 안양판교로 143이다.

대한제국 말기인 1907년 서울 서대문에 경성감옥으로 문을 열었는데 서대문형무소로 불리다가 1967년 서울구치소로 이름을 바꿨고, 1987년 지금 위치로 옮겼다.

일제 강점기에 유관순 열사 등 독립투사, 1970~80년대에는 수많은 민주화운동가들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렇게 서대문형무소는 항일·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지만 의왕으로 이사간 뒤 서울구치소는 단죄(斷罪)된 전직 대통령과 정치인 등 고위 공직자, 재벌총수들이 드나드는 불명예의 공간이 되었다.

김우중, 최태원, 이재용 등 거쳐간 서울구치소

굴곡진 재벌사 상징하는 ‘불명예의 공간’

지금 서울구치소 앞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열렬 지지자들이 이곳을 ‘서청대(서울구치소로 옮긴 청와대라는 뜻)’로 부르며 각종 집회를 열고 있다.

현재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천하의 권력을 주물렀던 권력자들 뿐 아니라 검찰에 불려간 재벌총수들도 대부분 서울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 내놓으라 하는 재벌총수들이 한때 이곳에 머물렀다.

권력자나 재벌 총수 등 그래도 선택받은 사람들만 수감되는 서울구치소의 독방(독거실) 면적은 6.56㎡(1.9평). 접이식 매트리스와 관물대, TV, 1인용 책상 겸 밥상, 세면대에 화장실이 같이 있다.

‘대저택’에 사는 재벌 총수들로서는 자기 집 화장실 크기의 1/10도 안 될 공간에서, 특히 무더운 여름에 식사와 용변을 해결한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수사와 재판을 서울에서 하는 피의자와 피고인을 우선적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하긴 하지만, 서울구치소는 가장 ‘인기있는(?)’ 구치소다. 서울에서 가까워야 가족과 임원, 변호사 등의 면회와 업무보고 등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벌 총수가 구속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면 해당 기업은 의왕시 포일동 서울구치소 맞은 편 큰 길가 건물의 사무실을 빌려 ‘임시 비서실’을 만든다. 실제 포일동의 몇몇 건물은 이런 임대업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서울구치소 앞 ‘회장 비서실’ 마련

가족 면회, 변호사 접견 등 옥중 수발


구치소나 교도소는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제한되고 좁은 담벼락으로 외부와 차단된 별개의 세상이다. 호의호식(好衣好食)하던 사람, 부자일 수록 적응하기가 힘들다.

‘구치소 앞 비서실’의 가장 중요한 업무 또한 평소처럼 옥중에 있는 회장님의 일정표를 만드는 것이다. 회장님 가족과 친인척, 임원들의 면회와 보고 못지않게 변호사 접견이 중요하다.

재벌총수들에게 공통된 수감생활의 고통은 구속이라는 속박과 더불어 낯설고 불편한 환경, 그리고 고독함이다. 두명의 변호사가 두시간~네시간 씩 접견을 하면 좁은 감방이 아닌 비교적 쾌적한 접견실에서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변호사 접견은 국민의 기본권이기 때문에 대부분 재벌총수들이 수감 초기에 매일을 이렇게 지낸다. 이런 수요 때문에 <김앤장> 등 재벌총수 사건을 주로 수임하는 대형 로펌에는 수사나 재판이 아닌 ‘면회담당 변호사’를 따로 두고 있다. 과거에는 접견을 간 변호사들이 암암리에 휴대폰을 쓰게 하고, 담배를 피우도록 하는 일도 많았다.

최근 문제가 된 모 재벌총수 뿐 아니라 과거에는 총수의 병력(病歷)을 잘 활용해서 병원진료를 다닌 뒤 특실에 입원하고, 이를 이유로 석방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 과정에서 해당기업 관계자가 교도관이나 의사 등 구치소 관계자들을 매수해 발각되는 일이 잦았다.

실제로 모 기업의 총수가 구치소안에서 먹을 수 없는 생선회와 초밥 등을 너무 먹고싶어 하자 비서실에서 구치소 의료진을 매수해 치료용 약통에 생선회 등을 담은 ‘삼단도시락’을 감방에 넣어줘 물의를 빚기도 했다.


대중 영합, 기업 길들이는 수사

기업인 잡범 취급 풍토 사라져야

재소자들 사이에서는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지만 징역(처벌)은 평등하지 않다.”는 속담이 있다. 이것은 두가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즉 재산에 따른 사법적 불평등을 지적하는 말이다. 둘째는 같은 ‘징역 1년’이라도 거친 밑바닥 삶을 살아온 사람과 편안하게 산 사람에게 그 고통은 형량할 수 없이 다른 무게를 지닌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노숙자는 식사와 잠자리 마련의 고통을 덜기 위해 자청해서 감옥행을 하는가 하면 재벌총수는 하루라도 빨리 풀려나기 위해 100억 원대의 변호사비를 지출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처럼 많은 기업과 재벌총수가 검찰 수사를 받는 나라도 없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기업인이 수사와 사법처리의 대상이 된 것은 급성장 과정에서 불법을 넘나든 경영과 회계 등 기업문화가 주된 원인이다.

죄가 있으면 누구나 예외없이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기업을 권력의 아래로 두고 길들이려는 정치적 의도로 이루어지는 수사, 기업인 전체를 잡범 취급해서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풍토 또한 사라져야 할 과거의 악습, 적폐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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