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37) 이루지 못한 '압록강 국경수비대장'의 꿈
김희철 칼럼니스트 | 기사작성 : 2019-06-18 20:08   (기사수정: 2019-06-1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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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탄조끼와 우의를 입고 DMZ 안개바다 속에서 계곡과 능선을 누비는 모습[사진=김희철]

DMZ안개바다의 고도(孤島), 마도로스 GP장의 꿈은 압록강 국경수비대장

무수히 외쳤던 글귀, 화랑대 대강당 앞 기념비에 새겨진 ‘내 생명 조국을 위해’

견위수명(見危授命)의 정신자세로 "화랑대에서 동작동까지"를 좌우명으로 삼아

정성어린 국군장병 위문 손편지가 전방을 지키는 힘이 돼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유난히 밝은 달빛아래 비치는 희미한 산등선과 계곡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적을 찾기 위한 투쟁을 밤새도록 하면 눈은 올빼미가 되고 귀는 토끼귀가 된다.

이곳 저곳 기웃대면서 피곤에 지친 소대원들을 격려하고 졸고 있는 병사들을 깨우다 보면 어느덧 동녘은 훤하게 밝기 시작하고, 골짜기 골짜기에서 서서히 안개가 피어 오른다.

샘솟 듯 피어나던 안개는 하나 둘 씩 모여 시내물이 되어 흐르고, 다시 모여 강이 되고, 점점 안개바다가 되어버린다. 보이던 산등선과 계곡은 안개바다에 잠기고 우뚝 솟은 GP만이 돗단배가 되며 마도로스 GP장은 홀로 외로운 항해를 떠난다.

저 멀리서 파문을 일으키며 몰려오는 안개 파도를 헤치고 낚싯줄울 길게 드리우고 월척(간첩/공비)을 찾아 잡는 고깃배 … 필자는 그 외로운 어선의 선장이 되어 안개바다 속을 계속 항해했었다.

얼마 후에는 이 배(GP)에서 하선하여 잠수복으로 갈아입고 DMZ지뢰밭을 누비며 직접 수색과 매복작전을 통해 월척(간첩/공비)사냥에 나서게 된다. 관측하고 보고 만하는 마도로스에서 大漁(간첩)를 찾아 직접 잡는 마도로스 어부(작전소대)로 교대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GP를 인계하고 DMZ수색/매복작전을 담당하는 소대로 임무를 교대할 때를 앞두고 840m거리의 적 민경초소를 볼 때는 갑자기 내 눈의 살기를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너무도 가까운 거리의 적 민경초소에 몰래 뛰어가서 몇 놈의 목이라도 따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전의(戰意)가 불타던 생도시절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지뢰밭과 마주 보는 적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적을 코 앞에 둔 DMZ안개바다는 너무도 평화롭다. 生(생)과 死(사)의 교차로에 서있는 군인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타성에 젖은 것인가?

그래도 필자가 근무한 GP는 사단에서 적과 가장 가까운 거리의 VIP코스였다. 적을 관측하고 심리전을 전개하며, 상급 기관 및 외국 손님까지 방문하는 곳이라 바쁘게 근무하다 보니 어느덧 교대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교대를 얼마 앞두고 대대교육관 김 중위에게서 전화가 왔다. 참모 중대장들과 심의를 했는데 필자가 지휘한 소대가 최우수GP소대로 선정되어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대대 본부에서는 위생병이 군생활에 회의를 품고 자살하는 사고가 있었다. 또 휴가 병사는 집에서 놀러갔다가 뱀에 물려 인접사단 병원에 입원하는 사건도 발생하여 부대원들의 사기가 침체일로에 놓여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대대장이 방문한다는 전달이 왔다. 당시의 전기사정은 좋지 않았다. 수시로 전기가 끊어져 급수도 직접 물지게로 운반해야 할 경우도 있었다. 그날도 전기가 끊어져 대대장 방문 대비 보고서도 어쩔 수 없이 석유 호야등 밑에서 급하게 작성했다.

GP내무반에까지 들어오신 대대장은 소대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최우수 GP소대 표창’을 수여해 주셨다. 표창장을 받아 든 소대원들은 자신들이 前 소대장을 상급부대에 청원하여 보직해임시킨 장본인이란 것을 잊어버린 채 사기는 하늘을 찌르며 천정의 유리를 깼다.

그런데 필자는 표창장을 받아 들고도 배가 고팠다. 필자가 생도시절 “화랑대에서 동작동(현충원)까지...”를 외치며 견위수명(見危授命) 하는 자세로 지키고 싶은 곳은 남북으로 분단된 반쪽짜리 국경선이 아니라 진정한 한민족의 국경선인 ‘압록강 국경수비대’에서 군인으로 국경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개인의 꿈은 ‘압록강 국경수비대장’이었으나 현실은 DMZ 한 가운데 외롭게 떠있는 섬 중에 하나인 GP장이었다. 제한된 인원들과 동고동락하면서 근 6개월 가까이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을 하면 따분하고 지루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답답함을 해소시켜주고 힘을 불어 넣어주는 것들이 존재했다. 간혹 사단 심리전부대에서 심리 요원인 여군하사들이 GP를 방문해 적 민경초소에서 잘 보이는 관측대에서 노래도 하고 병사들과 춤을 추며 심리전을 전개할 때는 GP 축제의 날이었다.

또한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는 시절이라 부모형제나 친구들의 손편지가 사기고양에 큰 도움이 되였다. 여자 친구의 편지나 선물이 오면 본인 뿐만 아니라 타 전우들도 모두 들뜨는 분위기 였다. 특히 정성어린 어머니의 편지를 전 소대원들에게 낭독할 때에는 눈물이 글썽해지는 소대원들도 있었다.

소대장은 국가를 위하기에 앞서 동거동락하는 소대원들을 보며 그들을 위해 위험한 임무도 마다하지 않는다. 소대원들은 학생들을 포함한 국민들의 장병 위문 손편지와 선물 보따리를 받을 때 외로운 고도에서 혼자만이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응원해주는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임무를 다한다.

최전방에서 근무를 하다가 후방으로 재 배치 받은 동료 장교들까지도 전방 생활에 대한 애틋함과 추억에 전방 동료에게 격려와 위문을 했었다. 국민들의 위문편지처럼 장병들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군인들은 존재한다.

▲ 태릉 화랑대 대강당 입구에 있는 “내 생명 조국을 위해..”라는 기념비와 일기장[사진=김희철]

지금도 최전방 155마일 휴전선의 DMZ 안개바다와 푸른 하늘과 바다에서 우리의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피끓는 젊음을 불사르고 있는 많은 참군인들이 존재하고 있다. 국민들의 사랑과 응원을 받는 그들의 꿈은 아마도 ‘압록강 국경수비대’ 처럼 통일된 미래의 조국 영토를 지키는 군인이 되고 싶을 것이다.

생도시절, 태릉 화랑대 대강당 입구에 있던 “내 생명 조국을 위해..”라는 기념비 앞에서 청운(靑雲)의 꿈을 키우며 “화랑대에서 동작동(현충원)까지…”를 한없이 외쳤었다. 이 한 목숨을 국가를 위해 바치겠다는 각오를 잊지 않고 실천하는 참군인이 많아 질수록 우리나라는 더욱 번영하는 강국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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