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정주영 목장갑과 태광 회장님표 김치
이진설 경제전문기자 | 기사작성 : 2019-06-18 07:50   (기사수정: 2019-06-18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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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광그룹 계열사들이 임직원에게 비싼 김치를 판매하다가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두들겨 맞았다. [사진=뉴스투데이]

공정위, 임직원에게 고가김치 판매한 태광 적발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2000년 초 취재과정에서 현대그룹 CEO로부터 직접 들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 에피소드 한토막이다. 80년대 현대건설이 잘 나가던 시절, 한 임원이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건설용 목장갑을 만드는 회사를 하나 계열사로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당시 건설현장마다 목장갑 수요가 넘치자 계열사를 세워 직접 만들어 납품하면 돈이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하지만 정주영 명예회장은 이 제안을 단칼에 잘랐다고 한다. 현대건설이 목장갑까지 손대면 중소기업들은 뭐먹고 사느냐며 해당임원을 힐난했고 이후 정 명예회장 앞에서는 비슷한 제안을 하는 임원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과 자녀가 소유한 골프장이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골프장과 아무 상관없는 김치를 만들어 계열사와 임직원들에게 고가로 판매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두들겨 맞았다. 공정위는 이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공정위는 또 태광그룹이 계열사를 동원해 김치 뿐 아니라 이 전 회장의 부인과 딸이 소유한 회사로부터 와인을 사들인 사실도 적발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태광 계열사인 IT서비스업체 티시스는 이 회장 일가 소유였던 동림관광개발과 골프장(휘슬링락CC)을 인수하면서 나빠진 경영실적을 만회하기 위해 골프장에서 직접 김치를 만들어 계열사와 임직원에게 시세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판매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

이렇게 골프장에서 만들어진 김치는 kg당 1만9000원으로 조선호텔에서 판매하는 최고급 김치보다 30~40% 더 비싸고 시중에서 판매되는 김치의 3배 이상 가격으로 계열사에 팔렸다고 공정위는 지적했다.

더욱이 계열사들은 이 과정에서 판촉비, 직원 복리후생비 등을 써가며 김치를 구매했고 직원들에게 성과급 명목으로 김치를 지급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공정위는 태광 계열사들이 2014년 8월~2016년 9월 이 전 회장의 부인과 딸이 소유한 M회사로부터 임직원 선물 용도로 와인을 사들인 사실도 적발했다.

공정위는 태광계열사들이 김치와 와인 구매로 총수 일가에게 제공한 이익규모는 33억원에 달하며 대부분 이호진 전 회장과 부인 등에게 현금배당이나 급여 등의 명목으로 돈이 흘러갔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23조2항 규정에 따라 과징금 21억8000만원을 부과하고 이 전 회장과 전 태광 경영기획관리실장, 태광산업과 흥국생명 등 계열사 19곳을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태광 측은 “억울한 면이 있다”면서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목장갑과 비교되는 이번 김치 논란은 ‘회장님표 김치’로 두고두고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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