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불려간 재벌총수]⑧ 정경유착’까지 수출한 대우 김우중 회장
이상호 전문기자 | 기사작성 : 2019-06-17 08:33   (기사수정: 2019-06-1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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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8월 13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강제집행면탈 혐의로 기소돼 공판을 마친 뒤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는 모습. [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대한민국이 IMF(국제통화기금)의 혹독한 구조조정 관리 하에 있던 1999년 8월26일 제일은행 등 100여 채권단은 ㈜대우와 대우자동차, 대우중공업 등 12개 주요 계열사를 워크아웃에 넣기로 합의해 대우그룹은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1998년말 기준으로 대우그룹의 자산총액은 78조 원으로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 해외사업장 500여곳, 고용인력 15만명을 거느린 대한민국 최초의 ‘글로벌 기업’이었다.

김우중 대우 회장은 이때만 해도 워크아웃만 잘 끝나면 자동차사업 정도는 계속 경영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훗날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6개월만 나가 있으면 정리해서 잘 되도록 하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대우그룹에 대한 사법처리가 다가오던 1999년 10월. 중국의 대우자동차 부품회사 준공식에 참석한다며 출국한 김우중 회장은 2005년 6월14일 귀국할 때 까지 5년8개월 동안 ‘수배자’ 신분으로 해외 도피생활을 했다.


◆ 대우그룹 사법처리 다가오자 5년8개월 ‘유랑’

사법사상 최대 추징금 ‘18조원’


금감원은 1999년 12월 대우 특별감리반을 출범시키고 2000년 9월 15일 분식회계 등 혐의로 대우 임직원 52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김우중 회장이 1997년 이후 3년간 가공자산 조작 및 차입금 누락 등으로 5개 계열사에 대해 41조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하도록 지시한 뒤 이를 근거로 금융기관으로부터 10조원을 불법 대출받은 혐의로 수배했다.

또 영국에 있는 비밀 금융조직인 대우 런던법인(BFC)을 통해 수출대금 미회수, 해외차입금 누락 등으로 25조원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도 추가했다.

2005년 4월 대법원은 김우중 회장이 없는 상황에서 대우 관계자들에게 실형과 함께 23조원의 추징금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우중 회장의 몫은 17조9,000억원, 사법사상 최대 추징금이었다.

김우중 회장은 2005년 6월13일 밤, 베트남 하노이발 아시아나 항공기의 비즈니스석 전체를 예약, 출발한 뒤 다음 날 새벽 6시경 인청공항에 내려 검찰로 향했다. 대우사태 피해자들이 김 회장이 탄 차의 유리창을 깨고 플래카드를 던져 넣는 바람에 그를 태운 차는 뒷 유리창이 깨진 채 출발했다.

검찰 조사를 받다가 식사시간이 되자 김우중 회장은 “라면사리를 넣은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고 했다. 오랜 해외생활로 밥과 김치가 그리웠던 것이다.


◆ 1조5,000억 비자금 행방 최대 관심사

정·관계 로비, 해외은닉 여부 주목


김우중 회장에 대한 대검 중수부 수사의 최대 관심사는 25조에 달하는 해외 비자금 중 행방이 묘연한 13억달러(1조5,000억원)의 사용처였다.

당시 대검 중수부장은 김대중 정부 청와대 사정비서관 출신의 박영수 검사장, 주임 검사는 최근 김학의 전법무부차관 성접대의혹 수사단장을 지낸 여환섭 대검 연구관(현 청주지검장)이었다.

검찰과 대우그룹 안팎에서는 용처가 드러나지 않은 이 자금 대부분이 김 전 회장의 개인 비자금으로 전용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대우사태를 전후해 정·관계 로비에 사용되거나, 해외에 은닉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김우중 회장과 대우그룹 경영비리 수사가 정경유착의 적나라한 실태를 보여줄 것이라는 예상은 막대한 비자금 규모와 함께 김 회장의 폭 넓은 정·관계 인맥, 사업스타일 때문이었다.

김 회장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과 1980년대 전두환 대통령 등 신군부는 물론, 김영삼 김대중 전대통령과도 본인과 경기고 인맥 등을 통해 폭넓고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대우그룹이 특유의 금융권 차입과 M&A를 통해 초고속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비결도 정·관계,금융권 네트워크였다.

1980년 신군부가 집권했을 때, 김우중 회장은 중복투자 해소라는 명분으로 대우 위주로 기업지도를 다시 그렸다. 이 때문에 정주영 이병철 회장은 그를 몹시 혐오했고, 이병철 회장은 “김우중 과는 사업을 하지말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소문까지 나왔다.


◆ 검찰, 철저히 대우비리에 국한, 김우중 수사

‘자진귀국 거래설’ ‘김우중의 협박설’ 파다


김우중 회장 조사를 시작한 검찰이 가장 먼저 발표한 것은 “김우중 회장의 해외 도피는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김 회장이 해외도피중 외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제기한 ‘김대중 정부와의 거래설’을 일축한 것이다.

이후 검찰 수사에서도 김우중 회장의 정·관계 로비나 비자금 내역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검찰은 철저히 김 회장과 대우그룹의 분식회계를 통한 사기대출 혐의에 국한해서 수사하고 기소했다.

김우중 회장은 1년여 수감생활을 하다가 2007년 말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로 사면됐다.

당시 검찰은 김우중 회장의 정·관계로비 혐의에 대해 “막연한 심증 외에는 뚜렷한 증거가 없어 수사가 어렵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박영수 중수부장은 사석에서 “김우중 회장의 입이 보통 무거운 것이 아니다”고 ‘고충’을 토로 하기도 했다.

그때 검찰의 김우중 회장 수사가 대우그룹 경영비리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을 두고 두가지 ‘설(說)’이 있었다.

하나는 장장 5년8개월에 걸친 해외도피 중에 김 회장과 정치권, 검찰간에 모종의 ‘딜’이 이루어졌다는 내용이다.

당시 검찰은 김우중 회장에 대해 “안잡나? 못잡나” 식의 여론압박을 받고 있었기에 그의 자진 귀국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또 하나는 ‘김우중의 협박설’이었다.

IMF 사태에서 대우그룹 해체까지는 약 2년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이 기간 중 김 회장과 대우그룹은 생존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를 제대로 수사하면 “여야(與野)가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권 전체가 붕괴할 것” 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실제로 김우중 회장은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에도 집권세력 뿐 아니라 야당에도 계파를 따지지 않고 정치자금을 통해 보험 드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 ‘김우중 비자금 사용처’

“한국정치 뿐 아니라 세계정치 문제”


국내 뿐 아니었다.

김우중 회장이 베트남에 은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정부는 베트남 정부에 그의 신변을 넘겨달라고 요청했지만 공산당 부서기가 단칼에 거절하는 일이 있었다.

그 후 김 회장은 프랑스에서 임시 국적을 얻어 생활하기도 했는데 프랑스 집권세력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외신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김 회장은 ‘세계경영’ 과정에서 동유럽의 민주화, 시장개방 바람에 편승해 유럽 전체로 사업을 확장했다. 김우중 회장은 이 과정에서 ‘한국식 정경유착’까지 수출한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비자금 보관소인 대우 런던법인(BFC)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와 관련해, 나중에 이런 얘기가 나왔다.

“그 때 BFC를 파헤쳤다면 대한민국이 문제가 아니라 세계 정치의 위기가 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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