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불려간 재벌총수]⑦ 최고의 기업인을 대하는 정치의 자세- 김영삼과 정주영
이상호 전문기자 | 기사작성 : 2019-06-13 07:01   (기사수정: 2019-06-13 09:31)
354 views
201906130701N
▲ 1992년 4월23일 열린 한국 정치·사회학회 공동학술발표회 리셉션장에서 당시 민자당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왼쪽)과 국민당 정주영 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정주영 회장은 14대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두달 뒤인 1993년 1월15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뒤 선거법 위반과 비자금조성(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기소됐지만 구속은 면했다.

정 회장을 조사한 검찰 수뇌부는 청와대 뿐 아니라 취임을 목전에 둔 김영삼 당선자에게 그의 구속 여부를 물었다.

당시 황교안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 등 주임검사들의 의견은 “수천억 원에 달하는 비자금 조성과 여러 건의 선거법 위반 혐의가 무거워서 구속 사유에 해당한다”는 의견이었다.

여기에 “고령에다 정치보복으로 비쳐질 국민정서 등 고려해야 할 점도 있다”는 참고의견도 달았다.

김영삼에게 이 문제를 보고한 참모에게 돌아온 YS의 답은 이랬다고 한다. “그라면(정주영 회장을 구속하면) 내가 뭐가 되노?”


◆ 정주영 회장 구속 건의받은 김영삼

“그라면 내가 뭐가 되노?”


김영삼 대통령은 정주영 회장의 대선 출마를 두고, “돈과 권력을 한꺼번에 갖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노했다. 정주영에 대한 김영삼의 분노는 당시 대선구도 때문이었다.

김영삼, 정주영 후보는 계층(중산층 이상)과 지역(비호남)에서 표가 겹치는 상황이었다. 개표 결과 민자당 김영삼 후보가 득표율 42.0%로 1위, 민주당 김대중 후보가 33.8%로 2위, 국민당 정주영 후보 16.3%로 김영삼 후보가 당선됐다.

하지만 정주영 후보는 강원도(34.1%)와 충청도(20%대 후반)에서 평균 득표율 이상 표를 받으면서 선전했다. 선거를 앞두고 현대그룹 회사가 많은 울산을 중심으로 영남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정주영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됐기에 김대중 후보측은 정주영 후보의 선전을 염원했다.

그러나 선거를 딱 1주일 앞두고 노태우 정부 법무부장관 출신이던 김기춘 등이 모여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을 만들어 낸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영남표는 김영삼 후보에게 결집하고 말았다.


◆ 김영삼 대통령의 ‘선 굵은 정치’

법원, “경제성장, 올림픽 유치...” ‘선처’


이렇게 김영삼에게 정주영은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지만, 구속까지 하는 것은 본인의 체면과 승자로서의 아량 등 선이 굵은 김영삼의 정치스타일과 맞지 않았던 것이다. 검찰은 “정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는 국가에 대한 기여도, 국제사회에서의 지위, 고령 등을 감안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1심 재판부는 재판 9개월만인 1993년 11월1일 정 회장에게 집행유예가 없는 징역 3년형을 선고하고도 법정구속을 하지 않았다. 1994년 7월11일 서울고등법원은 정주영 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창업한 현대그룹이 오늘날의 국가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 점, 전경련 회장 및 대한체육회장 등을 맡아 각 분야에서크게 기여한 점, 79세의 고령인 점 등을 감안해 관대한 처분을 내린다”고 밝혔다.

당시나 지금이나 법원, 사법부는 대통령과 여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정주영 회장이 끝내 구속되지 않은 것은 최고의 기업인에 대한 김영삼 대통령과 사법부의 ‘예의’였다. 정주영 회장 또한 자신이 만든 통일국민당을 탈당하고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는 등 김영삼 대통령에게 ‘성의’를 보였다.


◆ 무의미한 재판에 지루한 정주영 회장

당시엔 ‘여성 판사’ 응시하다 재판장 ‘경고’

정주영 재판은 지루했다. 그의 횡령과 선거법 위반 혐의는 패자에게 씌워진 죄였고, ‘정치재판’이었기에 검사와 변호사간에 이루어지는 법정공방도 긴장감이 없었다. 가장 지루한 사람은 정주영 회장 본인이었다.

고령에 정치 도전의 꿈이 꺾인 정주영 회장은 급속히 쇠약해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몇시간씩 진행되는 재판은 고통 그 자체였다. 재판 과정에서 이런 해프닝도 있었다. 재판장이 갑자기 재판을 중단시키고는 피고인(정주영 회장)측 변호사를 불러 서 한참을 상의했다.

그날 재판이 끝난 뒤 알아 본 자초지종은 이랬다. 당시 정주영 재판을 하던 재판부는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부로 재판장 1명에 배석판사 2명으로 구성됐다. 그런데 배석판사 중 한명이 당시로서는 희귀하게 여성판사였다.

지루하고 무의미한 재판, 내용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딱히 눈길 줄 곳도 마땅치 않았던 정주영 회장은 생전 처음보는 여성 판사를 신기한 눈초리로 재판 내내 응시했다. 그 여성 배석판사가 재판장에게 이를 항의했고, 재판장은 정주영 회장 변호인을 통해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던 것이다.


메일보내기
보내는분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내용
 
주요기업 채용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