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위기관리] 생사기로(生死岐路)에서 싸웠던 연평해전 용사에 대한 예법
김희철 칼럼니스트 | 기사작성 : 2019-06-11 14:56   (기사수정: 2019-06-1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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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장군의 유묵과 제1 차(1999년), 제2 연평해전(2002년)에서 벌어진 남북간 교전 [사진=방송화면 캡처]

99년 이후 북한의 서해도발로 아군은 전사 55명 부상 42명의 인명피해 발생

국가 번영 위해 군인 예우에 대한 '해현경장(解弦更張)'필요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6월 15일은 제1연평해전(1999년)이 일어난 날이다.

당일 8시 45분 북한 경비정 7척이 우리 고속정에 접근하여 충돌공격을 감행하자 우리 해군은 1차, 2차 밀어내기 경고를 실행했고, 9시 28분 북한 경비정 684호가 25mm 기관포로 선제공격을 가해왔으며 어뢰정 3척도 가담하였다. 북 경비정 684호는 우리 고속정과 초계함의 대응사격 등 반격으로 반파되어 퇴각하였다.

14분간 진행되었던 교전에서 고속정 325호 정장 안지영 대위 등 7명이 부상당해 긴급 후송되었고, 이에 반해 북한군은 어뢰정1척 침몰, 경비정 1척 침몰, 3척이 파손되고 1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라는 뜻의 ‘위국헌신 군인본분 (爲國獻身軍人本分)’은 안중근 장군이 여순 감옥에서 남긴 유묵(遺墨)중의 하나이다. 오른쪽 아래편에 안중근 장군 자신의 수장인 (手掌印, 손바닥으로 찍은 도장)을 먹물로 찍어서 더 유명해졌다.

軍人은 本分을 다하기위해 안중근 장군의 또다른 유묵처럼 ‘견위수명(見危授命, 위기를 보면 목숨을 바친다)’을 실천한다.

▲ 1999~2010년간 북한의 서해도발 피해현황[자료제공=국가보훈처]

제 1차 연평해전은 완벽한 승리로 결말지었지만, 3년 후인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경 발생한 제 2차 연평해전은 한일 월드컵이 막바지에 이른 시기에 연평도 근해 NLL 이남지역에서 북한의 무력 기습도발로 시작되어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교전결과 아군 참수리 357호는 북 함정의 불법 기습 사격으로 선체에 손상입고 11시 59분경 침몰했으며, 탑승승무원 30명 중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했으며 북쪽도 경비정1척이 반파되어 견인되다가 해안가에서 침몰하고 약 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밖에도 그림표와 같이 1999~2010년사이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도발 등 북한의 서해도발로 아군은 전사 55명 부상 42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제2연평해전이 발발하여 국군6명이 전사하고 참수리 357고속정이 침몰하였음에도 NSC(국가간전보장회의)를 4시간 35분 만에 여는 등 늦장대응을 했으며, 대통령 주재 NSC에서는 이를 우발적 충돌로 결론지었고, 같은 내용의 북한 통지문이 오자 그대로 수용했다.

또한 교전 다음날 예정된 금강산 관광선을 출항시켰으며, 김대중 대통령은 한·일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일본 사이타마로 출국하여 결승전 경기에 참석했다.

부상 후 치료를 받다 사망한 고 박동혁 병장의 아버지 박남근 씨는 “부상당한 아들의 면회를 기다리며 TV를 보니 대통령이 일본에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며 “출국한 성남비행장에서 국군수도통합병원까지는 몇 분도 걸리지 않는데…”라고 말했다.

전사한 윤영하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 씨는 “서해에서 전투가 벌어진 이후에 대통령이 출국한 것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으며, 전쟁이 나면 대통령은 밖에 있다가도 들어와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국가 아닌가요?”라며 비판했다.

이후 제2연평해전 전사자 추모식에도 김대중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으나, 2004년 노무현 정권 때 제2연평해전, 동티모르 파병 이후 법률 시행령이 개정되어 지금과 같은 보상 규정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이후 참여정부는 군인연금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적과의 교전과정에서 전사한 군 장병의 유족들이 최고 2억 원의 사망 보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연금 대상자인 부사관 이상 간부에 대해서는 보상금을 높였다. 늦게나마 다행스런 일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국가와 타인을 위해 희생하면서 사회공헌에 기여하는 분들이 있다. 소방관, 경찰, 군인, 각종 종교 및 봉사단체 등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공헌하는 분들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대우는 어떠한가? 필자가 미육군과 육군회의(Army talk)를 위해 미국 위싱톤을 방문하여 차량이동간 식당에 들어갔을 때, 앉아 계시던 시민들이 박수를 치셔서 통역장교에게 무슨 행사가 있냐고 물어봤는데 답은 의외였다.

그는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식당에 들어와서 격려와 존경하는 마음을 표하기 위해에 박수를 치는 것입니다”라고 전달해 주었다.

장거리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 1등석을 양보하고 특식을 전달하거나, 6.25남침전쟁 참전용사인 무명의 ‘헤즈키아 퍼킨스’가 고령으로 사망했을 때 유족이 없어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는데 수천명이나 모여 오하이오주 신시네티시의 대대적인 장례식행사가 되었다는 등의 이야기들은 들었지만 필자가 직접 경험했을 때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6월은 보훈의 달이다. 또 6.25남침전쟁이 벌어진 달이기도 하다. 6월15일 제1차 연평해전의 승전을 축하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도 미국처럼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군인들에 대한 예우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

우리도 미국처럼 군을 존중하는 사회의식 개혁이 필요하다. 우선 고하, 빈부를 불문하고 병역의무를 다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국민의식이 먼저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000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하였다. 6·25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당시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은 야간폭격 임무수행 중 전사했으며,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아들도 육군 소령으로 참전했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이 6·25전쟁에 참전한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시신 수습을 포기하도록 지시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미국은 건국이래 가장 많은 전쟁을 치룬 국가이고 전 국민들의 가족들이 참전했다.어느 가정에서도 남편, 자녀, 조카 등 친지 중의 한명 이상은 모두 군인으로 경험을 했었고 전사자와 상이용사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나 軍에 대한 예우는 각별하다.

우리도 이젠 바뀌어야 한다. 호국보훈의 달을 보내면서 번영하는 국가다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해현경장(解弦更張)이란 말이 떠오른다.

해현경장(解弦更張)이란 “거문고의 줄을 바꾸어 맨다”라는 뜻으로, 우리나라도 느슨해진 것을 긴장(緊張)하도록 다시 고치거나 사회적, 정치적으로 국민의식과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절실한 시기이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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