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불려간 재벌총수]⑥‘비운의 황태자’ 현대 정몽헌 회장
이상호 전문기자 | 기사작성 : 2019-06-10 07:02   (기사수정: 2019-06-1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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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4월 20일 고(故) 정몽헌 당시 현대상선 부회장이 검찰에 출두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1992년 초 통일국민당을 창당, 3월24일 치러진 14대 총선에서 31석을 얻는 돌풍을 일으키며, 대선을 향해 나아가자 ‘탄압’이 시작됐다.

국세청의 세무조사로 촉발된 <현대상선 탈세사건>이었다.

4월20일, 서울지검 특수1부 이완수 검사는 정주영 국민당 대표의 5남 정몽헌 현대상선 부회장이 1987년 1월부터 5년간 100여억원의 비자금을 조성, 58억원의 세금을 포탈했다며,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탈세)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정주영 회장 대선행보 저지用 ‘표적수사’

<현대상선 탈세사건>으로 아들 정몽헌 구속

문제의 비자금은 회사의 오랜 관행에 따라 전액 고객(화주)에 대한 리베이트로 지급됐고, 정몽헌 부회장이 현대상선 임원들에게 비자금을 만들도록 지시한 적도 없지만 수사의 칼끝은 그를 향하고 있었다.

이 사건이 정주영 회장의 대선행보에 제동을 걸기 위한 표적수사였음은 당시 검찰 스스로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검찰은 수사 브리핑에서 “연간 30억~50억원의 리베이트는 당시 현대상선의 연간 매출이 8,000억원 규모라는 점을 감안하면 큰 돈은 아니다”라고 정 부회장을 두둔하기도 했다.

검찰은 특히 “정 부회장이 비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하거나 아버지 정주영 회장 등 정치자금으로 흘려보낸 혐의점은 드러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구속집행 정몽헌은 ‘담담’

수사검사가 오히려 ‘안절부절’

4월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청사 10층 이완수 검사실에서 구속영장 집행을 앞둔 정몽헌 부회장은 특유의 ‘우수(憂愁)’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다.

정 부회장의 표정은 어두웠지만, 차분하고 담담한 태도였던 반면, 이완수 검사가 오히려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었다.

잘 나가는 특수통에 전도양양했던 이완수 검사는 오래 지나지 않아 검찰을 떠났다.나중에 그는 “그 사건을 하면서 검사라는 직업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꼈다”고 회고했다.

변호사가 된 이완수는 2007년 삼성특검 때 이건희 삼성 회장의 변호를 맡아 수사기관이나 법정 출두시 옆에 붙여 다녔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감사원 사무총장을 지냈다.

정주영 회장의 ‘정몽헌 지지’

자신으로 인한 고초에 대한 ‘보상’?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대선출마로 많은 현대그룹 임직원과 친인척이 검찰수사를 받았는데, 가족 중 처벌을 받은 사람은 정주영 회장 본인과 5남 정몽헌 회장, 둘 이었다.

2000년 3월, 이른바 현대그룹 2세들간의 경영권 분쟁, ‘왕자의 난’이 벌어졌을 때, 정주영 회장은 정몽구 회장이 아닌 정몽헌 회장 편을 드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실제 정주영 회장은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 중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정몽헌 회장에게 정리해 주었다.

이를 두고 재계, 현대그룹 주변에서는 정주영 회장이 자신 때문에 고초를 당한 정몽헌 회장에 대한 미안함과 보상 차원이 아니겠느냐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몽헌 회장은 2003년 대북 불법송금 사건이 터지면서 또다시 사법처리 될 위기를 맞았다. 한편으로는 현대그룹의 경영난과 대북사업 차질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정주영 ‘대북사업’이 족쇄로

짧은 생 마감한 ‘비운의 황태자’

2003년 8월 4일 이른 아침, 정몽헌 회장은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사옥 화단에서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됐다.

당시 정 회장은 현대상선이 김대중 정부 때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4,000억원 중 2,240억 원을 북한으로 보냈다는,이른바 대북 비밀송금과 수백억 원을 권노갑, 박지원 등 김대중 정부 실세들에게 전달했다는 의혹 때문에 특검 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실향민’으로 대한민국 최대의 기업을 일군 아버지 정주영 회장은 1998년 소 1000마리를 이끌고 북한을 방문, 남북 경제교류에 물꼬를 텄다.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은 거역할 수 없는 아버지의 ‘유업(遺業)’이었다.

그러나 IMF 사태로 현대건설과 현대전자 등 주력기업이 부실해지고 대북사업과정에서 김대중 정부와 잘못 엮어 북한에 불법자금을 건넸다.

그리고 50대 중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으니 ‘비운의 황태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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