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군 이야기](3) 가입교 훈련에서 '자신감' 얻고, 입교식에선 '낭만' 예감
최환종 칼럼니스트 | 기사작성 : 2019-06-04 20:21   (기사수정: 2019-06-0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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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사관학교에 합격하면 한 달의 가입교 훈련을 통해 생도로서의 자신감을 얻게 된다. 사진은 가입교 훈련을 마친 다음 날, 입교식 행사전 대열을 갖춘 사관생도들 [사진=최환종]

가입교 후 예비생도로서 적응해갔지만 다리에 이상 생겨

학교 측은 의무대 진료와 힘든 훈련 면제 등으로 배려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가입교 후 10일 정도가 지나면서 예비생도 교육에 몸과 마음이 적응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강도 높은 육체적 훈련 때문인지 2주일 정도가 지나면서 다리에 이상이 생겼다. 완전무장 구보를 하는데 다리가 영 불편했다.

필자의 오래 달리기 실력은 좋은 편이었다. 빨리 달리지는 못했지만 지구력이 있어서 꾸준한 달리기는 자신이 있었다(당시 대학입학 체력장 오래달리기 기준은 1000m 였고, 공사 체력검정은 1500m 였다). 그러나 다리가 불편하니 장거리 구보는 물론이고 다른 훈련도 힘들었다.

필자 이외에도 동기생 중에 환자가 하루에 몇 명씩 나왔고, 학교에서는 의무대 진료는 물론이고, 아픈 정도가 심할 경우에는 완전무장 구보같이 힘든 훈련은 면제시켜 주었다. 필자는 예비생도 훈련 기간 중, 다리 문제 때문에 의무대 진료 및 한방 치료(침) 등을 받으며 훈련에 임했고, 포기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으며 노력했다.


정식 입교이후 다리뼈 실금 확인, 완치 후에는 오히려 강해져

사실 정식 입교 이후, 구보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다리가 불편해서 다시 사관학교 의무대에서 진료를 받았다. X-ray 촬영결과 양쪽 다리뼈에 실금이 갔다고 한다. 원인은 가입교 때 갑작스런 강도높은 훈련 때문에 다리뼈에 무리가 가서 실금이 간 것으로 추정된다는 군의관의 설명이었고, 당분간 구보는 금지하라는 조치를 받았다. 어린 마음에 이것 때문에 퇴교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으나 생도대 중대장님은 완쾌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생도 생활에 집중하기를 당부했다.

이후 공식적으로 두어 달 정도 구보 면제를 받았고, 5월 경부터는 다른 동기들과 같이 정상적으로 무장 구보 등을 소화해 낼 수 있었다. 당시 군의관이 “다리 부상이 완쾌되면 다리가 더 강해질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다리 부상이 완쾌된 이후로는 하루종일 쉬지 않고 뛸 수 있을 정도로 다리가 강해졌다.


가입교 훈련 중반전에 접어들면서 자신감 붙어

한 달만에 예비생도 교육 마치고 생도대 배치받아

그러나 이야기를 다시 되돌려 보자. 가입교 훈련이 중반으로 접어들 즈음 어느 날 저녁, 일과 진행이 평소와 약간 다름을 느꼈는데, 왠지 자유스러운 분위기였다. 잠시 후, 생도 정복 측신이 시작되었다.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정복 측신이라니. 힘든 훈련이 끝나가는 것인가? 그리고 모두들 힘든 예비생도 과정을 마칠 수 있다는 것인가?

교육 3주차가 되면서 심적으로 비교적 여유있게 교육에 임할 수 있었다. 그만큼 예비생도 생활에 적응도 되어가고 있었고, ‘정식 사관생도의 길에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에 나름 자신감을 가지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3주차 교육이 끝나갈 즈음, 사관학교 주 연병장에서 분열 연습을 했다. 분열 연습을 한다는 것은 입교식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정복 측신에 이어 분열 연습이라. 드디어 가입교 교육의 끝이 보였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예비생도 교육은 정식 사관생도가 되기 위한 사전 교육으로서, ‘책임감’, ‘명예’, ‘군인정신’ 등이 강조되는 매우 강도 높은 교육이었다. 그러는 중에도 새벽 6시에 기상해서 22시에 취침할 때까지 교육은 빈틈없이, 강도 높게 지속적으로 진행되었고, 뭐라고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우리 스스로도 조금씩 공군인이 되어감을 느꼈고, 외적인 모습 또한 자신감 있고 당당한 자세로 변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2월 29일.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한달 간의 예비생도 교육이 끝났다. 무사히 예비생도 교육을 마친 우리는 가입교 교육이 끝났음을 기뻐하며 다음날 있을 입교식 준비에 들떠 있었다.

오후에는 생도대 배치를 받았고, 한 달 동안 우리 내무실 예비생도들을 지도해 주시던 내무지도 선배님과 담소를 나누었다. 이 선배님은 사관학교 졸업 후, 전투조종사로서 30여년 근무 후에 준장(准將)으로 전역했다.

한편, 생도대 배치 이후 생활에 대해서 들어보니 ‘산 넘어 산’이라고, 결코 생도 생활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사관학교를 지원할 때는 사관생도 생활이 매우 낭만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각자 배치받은 중대로 가서 내무실을 배정받았다. 침대와 책상 정리를 하고, 캐비넷에 지급받은 정복, 전투복, 개인화기 등을 정리하며 다음날 있을 입교식 준비를 했다. 그리고 한달 만에 처음으로 편안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날까지는 정식 생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생도들과는 접촉 금지였다. 당시 한 내무실에는 4~5명의 생도들이 같이 생활했고, 대략 한학기가 지나면 내무실을 교체하며 생활했기에 같은 중대 동기생들과는 사관학교 4년 동안 한번 이상은 같이 생활하게 된다. 그러면서 같은 중대 동기생들과는 고운정 미운정 다 들면서 매우 끈끈한 정으로 맺어진다.


입교식 후 부모님과 점심식사하는 기쁨 누려

식사후 소화촉진 위한 '구보 실시' 명령 듣고 사관학교의 '낭만' 예감

3월 1일. 드디어 사관학교 입교식이 열렸다. 고등학생 때부터 그토록 원했고, 생전 처음 받아보는 강도 높은 예비생도 교육을 무사히 마치고 사관생도가 된 느낌은 ‘감개무량(感慨無量)’ 그 자체였다.

입교식을 마치고 한달 만에 뵙는 부모님께 거수경례로 생도가 되었음을 신고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자랑스럽게 학교를 둘러보면서 아는 만큼 학교 소개를 했다. 그날 촬영한 사진을 보면 군기가 바짝 들어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 사진은 공개하고 싶지 않다. 너무 긴장한 모습이기에.

입교식 후에 1학년 생도들은 각자 부모님과 학교 내의 지정된 장소에서 점심 식사를 했고, 면회 시간이 끝난 후, 우리 모두는 생도대로 돌아갔다. 오후는 별다른 일과 없이 휴식이라 모두들 내무실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상 사이렌이 울린다. 1학년 생도들만 단독군장에 점호장 집합이다. 무슨 일이지? 가입교 훈련은 모두 끝났는데...

모두들 궁금함을 가지며 일사불란하게 점호장에 집합했고 잠시 후 그날 당직사령생도가 단상에 올라섰다. 모두들 무슨 불호령이 떨어질까 긴장하면서 있는데, 4학년 당직사령생도의 지시에 다 같이 속으로 웃었다.

“지금부터 소화 운동을 실시한다. 연병장 외곽도로 구보 실시!!!”

‘소화운동’이라 함은 입교식 후에 부모님들을 만나서 점심 식사를 많이 했을것이고, 과식 때문에 탈이 날까봐 가벼운(?) 구보를 통해서 소화를 돕는다는 거였다. 세상에 이렇게 행복한(?) 소화운동도 있네.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사관학교가 낭만적으로 느껴진 순간이었다.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소화운동을 실시했다. (다음에 계속)


-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 공군사관학교(전자공학), 한양대 대학원(전자공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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