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불려간 재벌총수]⑤도가니탕 시켜먹다 수모당한 언론사주
이상호 전문기자 | 기사작성 : 2019-06-03 07:39   (기사수정: 2019-06-03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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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검찰청 청사 모습 [사진제공=검찰]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1998년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이른바 <조중동> 사주 3명을 모두 탈세혐의로 구속했다.

김대중 정부의 <조중동> 사주 구속은 한국 언론사 뿐 아니라 정치사적으로도 의미가 큰 사건이었다. 김영삼 정부까지만 해도 정권과 <조중동>은 ‘견제와 협조’라는 기조하에서도 협조에 더 치우치는 관계였다.

그전에도 <조중동>에 대한 세무조사가 없지는 않았지만 사법처리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 거대 언론사의 약점을 잡고 협조를 구하는 언론정책 때문이었다.

1999년 가을, 보광그룹 탈세혐의로 홍석현 중앙일보 사주가 가장 먼저 검찰에 소환되었을 때 만 해도 이것이 <조중동> 사주 전원구속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비화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위기에 처한 중앙일보는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론’을 내세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공동대응을 호소했다.

그러나 당시 중앙일보와 무한경쟁을 벌이던 조선과 동아는 “탈세범이 무슨 소리냐”며 이를 싸늘하게 외면했다.

그때 검찰에 소환된 한 언론사주가 조사를 받던 중 식사시간이 됐다. 수사관이 “회장님 뭘 드시겠습니까? 여기 근처에 식당이 많아서 뭐든 먹을 수 있습니다”라면서 몇가지 메뉴까지 불러주었다.

그 언론사주는 평소 자신이 먹던 도가니탕을 골랐다.

도가니탕이 배달돼서 수사관 두어명과 함께하는 ‘식탁’이 차려졌을 때, 그는 속으로 “아차!”하고 말았다. 수사관들은 모두 컵라면을 들고 왔기 때문이었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도가니탕을 먹고 있는데, 수사관 중 한명이 존댓말도 아니고 반말도 아닌 투로 말했다.

“어이 회장님! 도가니탕 다 드시고 이것도 같이 치워주쇼.”라며 다 먹은 컵라면 용기들을 언론사주 쪽으로 밀었다. 검찰이 거물급 피의자를 소환했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기세를 꺾어놓는 것이다.

모든 수사에서 최우선시 되는 것은 자백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백은 증거의 여왕”이기 때문이다.

‘거물급’일 수록 초반에 기를 꺾어 놓아야 쉽게 자백을 하고 수사도 쉬워진다. 한때 천하를 움켜줬던 권력자도 검찰에 출두할 무렵에는 이미 ‘죽은 권력’이다.

그러나 언론은 ‘살아있는 권력’이기에 언론사주는 여간 부담스러운 상대가 아니다.

문제의 도가니탕은 그 언론사주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기를 죽이는 빌미가 된 것이다. 이런 ‘악역(惡役)’은 대부분 검사가 아닌 무명의 수사관 몫이다.

인권침해 소지가 있어서 지금은 거의 없지만, 과거에는 검찰에 가자마자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식의 자술서를 요구받는 경우도 많았다.

재벌급 대기업인 H그룹의 오너, J모 부회장은 1990년대 후반, 비자금 조성을 통한 횡령 혐의로 대검 중수부에 소환됐다.

그가 조사실에 도착하고 한참 지나서 나타난 수사관이 그에게 두툼한 백지더미를 던졌다.

“여기 왜 왔는지 아시죠? 두시간 뒤에 내가 다시 올테니까 무엇을 잘못했는지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자세하게 쓰시오!”

수사관이 다시 왔을 때, J 부회장은 아무것도 써놓지 않았다. 검찰 출두 전 변호사와 자신의 횡령혐의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부인하기로 전략을 짜 놓았기 때문이었다.

화가 난 수사관은 J 부회장에게 “이 사람 기본이 안됐구먼. 일어나서 뒤로 서서 벽보고 반성하세요.”라며 족히 세시간을 세워 놓았다.

사실상 가혹행위에 해당하는 수모를 주어서 J 부회장의 자백을 받아내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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