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불려간 재벌총수]④ ‘뇌물의 모든 것’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이상호 전문기자 | 기사작성 : 2019-05-30 07:01   (기사수정: 2019-05-3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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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1997년 4월28일 서울지법에서 열린 한보철강 특혜비리 사건 공판에 출두하기위해 휠체어에 탄 채 병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은 ‘뇌물’로 일어서서 ‘뇌물’로 사라진 사람이다. 그의 사업인생은 뇌물로 점철(點綴) 됐다.

그가 검찰 수사과정에서 진술하고 밝혀진 내용을 모으면 <뇌물 백과사전>, <뇌물수사 교범>을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2012년에 개봉한 <돈의 맛>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정태수 회장은 뇌물, 부(富)의 단위, 화폐나 교환수단으로서의 돈 뿐 아니라 물건으로서 지폐에 관해서도 통달한 ‘돈박사’이기도 했다.

1923년 경남 진주 태생인 정태수 회장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소학교만 마치고 넉넉치 않은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렇지만 독학을 통해 1951년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1970년대 초반까지는 세무공무원으로 재직했다.

1969년 가을, 점쟁이로부터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면 대한민국에서 첫째, 둘째 손가락에 꼽히게 될 것이고 흙과 관련된 사업을 해야 성공한다"라는 말을 듣고 사업 대상을 몰색하고 다녔다. 1974년 헐값으로 버려진 몰리브덴 광산을 인수, 공무원을 그만두고 한보상사를 설립, 사업가의 길로 나섰다.


뇌물로 일어서서 뇌물로 사라진 정태수 회장

<뇌물 백과사전>, <뇌물수사 교범> 만들 정도


정 회장은 1978년 요즘 서울 강남 부동산의 ‘뜨거운 감자’인 은마아파트를 건축, 단기간에 무려 2000억원을 손에 쥐며 일약 한보그룹 총수라는 재벌로 거듭나게 된다.

분양당시 특혜융자 시비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때마침 2차 오일 쇼크로 화폐가치 하락으로 부동산이 각광받으면서 20일만에 분양을 완료, 매일 가마니 수십개에 현금을 날랐다고 한다.

아파트 사업이 성공하자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 당진제철소 건설, 제약업 진출(상아제약), 수서지구 개발 등 급격하게 사업을 확장했고,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져 나왔다. 정태수 회장은 사업이 막힐 때 마다 정·관계는 물론 금융권, 언론계에 이르기까지 무차별 금품살포를 통해 해결했다.


노태우 정부 최대 권력형 비리 ‘수서사건’

수사검사 ‘자해’ 로 굳게 다문 입 열어


그러나 1991년 서울 강남구 수서, 일원동 일대 택지개발지구 토지를 특정 개발조합에 불법으로 분양, 노태우 정부 최대의 권력형 비리가 된 ‘수서비리 사건’은 워낙 파장이 커서 빠져 나갈 수 없었다.

그해 2월 대검 중수부에 불려간 정태수 회장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당시 정 회장의 주임검사였던 중수부 정홍원 3과장(박근혜정부 국무총리)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에 얌전한 성격 탓인지 그를 모질게 다루지 못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배재욱 중수부 4과장이 고교(경남고) 동창, 정홍원에게 “잠시 좀 비켜달라”며 교대를 했다. 배재욱 과장이 “누가 봐도 뻔한건데 순순히 털어 놓으시라”고 했지만 정태수 회장의 굳게 닫힌 입은 열리지 않았다.

결국 배재욱은 ‘물리력’을 행사했다. 2m 가까운 키에 거구의 배재욱이 조사실에 있던 나무의자를 번쩍 들어 바닥에 내려쳤다. 나무의자가 산산조각이 났고, 부러진 조각에 배재욱의 팔뚝이 긁혀 피가 나왔다.

며칠 뒤 검찰은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과 장병조 청와대비서관, 국회 건설위원회 소속 의원 등 9명을 구속했지만 ‘축소수사’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노태우 대통령에게 수서사건 청탁 150억원 뇌물

<사과상자=뇌물상자>, <휠체어에 마스크 패션> 만든 원조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인 1995년 검찰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을 수사하면서 수서사건의 ‘몸통’이 드러났다. 1990년 11월, 정태수 회장이 4차례에 걸쳐 150억원을 노태우 대통령에게 준 대가로 서울시에 압력을 넣어 특별분양을 받은 것이다.

정태수 회장은 김영삼 대통령이 1993년 금융실명제를 실시하자, 노태우 대통령 비자금 606억원을 실명으로 전환해 준 것도 확인됐다. 이로인해, 정 회장은 수서사건의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구속됐지만, 고령과 질병을 사유로 풀려난 채 재판을 받았다.

이때 정태수 회장은 휠체어에 마스크 차림으로 나타났는데, 사법기관에 출두하는 재벌의 상징이 된 이 모습은 정 회장이 처음으로 연출한 것이다. 또 수사과정에서 정 회장이 현금을 주로 사과상자에 담아 뇌물로 준 사실이 처음 공개돼, <사과상자=뇌물상자>가 되기도 했다.


2007년 재판 중 병 치료차 일본 간 뒤 연락끊겨

“이 세상 그 어떤 냄새보다 돈 냄새가 더럽고 역겨웠다”


정태수 회장 구속 이후 한보그룹은 자녀들에게 승계돼 다시 아파트사업을 시작하는 등 재기를 모색했다. 그러나 1년도 안돼 1997년 외환위기를 부른 원인 중 하나였던 ‘한보사태’로 부도를 내고 말았다.

‘한보사태’와 관련, 정 회장은 1997년 5월, 공금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한보사태)로 징역 15년 중 5년5개월간 복역하다가 2002년 10월 병보석으로 나왔다. 그러나 2005년 본인이 설립한 모 대학 교비 7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을 하던 2007년, 병 치료를 이유로 일본으로 건너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나이 95세를 고려하면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2년전 한 종편TV 방송 은 “정태수 회장이 아직 살아 있고, 자서전 초고를 만들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정태수 회장이 <뇌물 백과사전>, <돈박사>임을 보여주는 이런 일화도 있다.

정태수 회장은 검사에게 “그 사람에게 현금 2억원을 가방에 담지 않고, 호주머니와 몸 여기저기에 넣어서 갖다줬다“고 진술했다. 당시 최고액권은 1만원이었기 때문에 2억원이면 1백만원 다발 2백개를 온몸에 쑤셔 넣어야 한다.

검사가 “여름에 외투도 안입고 그게 가능하냐?”고 추궁하자, 정태수 회장은 직접 시범을 보였다. 나중에 법정에서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한 검사는 수사관을 시켜 정태수 회장이 말하는 방식대로 돈다발 2백개를 호주머니와 온 뭄에 넣을 수 있는지를 검증했는데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 정태수 회장은 검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여름 온몸에 돈냄새가 베여서 아무리 목욕을 해도 한달이상 지워지지 않았다. 이 세상에 그 어떤 냄새보다 돈 냄새가 더럽고 역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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