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불려간 재벌총수]③ 김승연 한화 회장의 ‘의리’, 이건희 회장에게 ‘불똥’
이상호 전문기자 | 기사작성 : 2019-05-27 10:50   (기사수정: 2019-05-2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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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 2010년 12월30일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서부지검에 소환돼 청사로 들어가던 중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한화 김승연 회장에게 붙여진 별명은 ‘의리왕’이다. 김승연 회장은 1952년 2월 한화그룹 창업주 고(故) 김종희 회장 장남으로 태어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 정주영 회장의 6남 정몽준 전 의원과 서울 장충초등학교에 같은 해 입학한 동창 사이다.

선친 김종희 회장은 생전에 “남자는 술도 좀 마시고, 담배도 피워 보며 단맛 쓴맛 다 맛봐야 한다.”라며 “나중에 훌륭한 인물이 되려면 쓸 데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며 호연지기를 강조했다고 한다.

부친이 일찍 타계하는 바람에 29살부터 한화그룹을 경영했는데, 호탕하고 의리를 중시하는 김승연 회장의 스타일은 ‘가풍(家風)’인 것이다.


호탕하고 의리 중시하는 ‘의리왕’ 별명

이라크 직원 격려 위해 광어회 600인분 ‘공수’


김승연 회장이 ‘의리왕’임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수 없이 많다. 2003년 6월 한화 이글스의 투수였던 진정필 선수가 백혈병으로 사망하자 치료비와 장례비까지 지원했다.

그리고 2011년 9월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으로 있던 한국 야구 ‘레전드’ 최동원이 별세했을 때도 치료비 지원은 물론, 그룹 차원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천안함 피격사건 때는 유가족을 한화그룹 계열사에 우선 채용하기도 했다. 2014년 한화건설의 이라크 공사현장을 방문하면서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광어회 600인분을 비행기로 공수하는 등 직원들에게 ‘통큰 선심’을 아끼지 않았다.

경향신문을 인수해 무려 5,000억원을 지원하고 어느 날 기자들이 자주 가는 회사앞 맥주집에 들러 밀린 외상값 전부를 갚아준 일화도 유명하다.


세 차례 검찰수사, 세 번 모두 구속

두차례는 ‘의리 때문에...’

김승연 회장은 1993년, 2007년, 2012년 세 차례 검찰 수사를 받았고 세 번 모두 구속됐다. 1993년 횡령사건은 ‘6공 실세’ 박철언 전 장관을 지원했던 것에 대한 김영삼 정부의 ‘정치보복’ 성격이 강했다.

이후 2007년 3월 아들을 폭행한 술집 종업원들에 대한 ‘보복폭행’, 2012년 8월 차명회사 불법지원과 배임 등 혐의로 구속기소돼 집행유예와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세번의 검찰 수사와 구속 중 앞의 두 건은 ‘의리’와 관련이 깊다. 특히 아들을 폭행한 술집 종업원들에게 직접 ‘응징’한 이른바 ‘보복폭행 사건’은 김 회장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아들 폭행한 술집 종업원 찾아내 직접 복수

법정에서 당시 상황 재연하며 복싱 ‘쉐도우모션’도

2007년 3월8일 새벽, 김 회장의 둘째 아들이 서울 청담동 클럽에서 술을 마시다 다른 손님 8명과 시비 끝에 집단폭행을 당해 심한 부상을 입었다. 격노한 김 회장이 아들을 때린 사람들(술집 종업원)을 찾아내서 직접 폭행을 가했다.

이 사건은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는데, 다수의 비난여론과 함께 청소년층에서는 “우리 아빠였으면...”하는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실제로 개그맨 김구라는 당시 김 회장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옹호했다

김승연 회장은 이 사건 검찰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도 거침없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법정에서 폭행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검사님은 복싱에 대해 많이 아십니까?"라고 반문하며 "'오른손, 왼손'이라고 말하며 쉐도우모션을 보여 줘 재판장과 변호사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김 회장 보복폭행의 ‘나비효과’

삼성특검 출범, 이건희 회장 사법처리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은 의도치 않은 ‘나비효과’를 일으켜 이건희 회장의 사법처리로 이어졌다. 삼성 법무실에서 7년간 일하던 김용철 변호사는 2004년부터 서울 서초동에 있는 한 법무법인으로 옮겼다.

김 변호사는 변호사 일과 더불어 2005년부터는 한 조간신문의 기획위원으로도 일했는데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이 벌어지자 2007년 5월24일자 이 신문에 김 회장을 비난하는 칼럼을 썼다.

그날자 이 신문의 1면에는 전직 삼성 임원의 증언임을 전제로 “삼성 에버랜드 사건은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에서 개입한 것”이라는 기사도 실렸다. 이 일로 김용철 변호사는 3년간 일했던 법무법인을 떠나야만 했다.

같은 법무법인 소속인 법원장 출신 변호사가 김승연 회장의 석방을 위해 일하고 있었는데, 김용철 변호사가 이런 칼럼을 썼으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법무법인에서 쫒겨난 김용철 변호사는 경제난을 겪었다.

얼마 뒤, 본인과 부인이 삼성쪽에 전화해서 김 변호사 명의의 삼성 차명계좌가 그대로 남아있는지 물어보는 등 삼성과 ‘딜’을 원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삼성의 고위 관계자는 “김 변호사가 무엇을 원하는지 짐작은 했지만 응하지 않았고,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과 이건희 회장에 대한 폭로를 감행했다. 이로인해 삼성특검이 출범했고, 이건희 회장은 사법처리 수순을 밟았다. 김승연 회장은 평소 삼성 이건희 회장을 ‘형님’으로 부르며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대한생명이 매물로 나왔을 때, 이건희 회장을 찾아가서 "금융업에 대한 노하우를 가르쳐주시면 형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잘 해보겠습니다"라고 지도를 부탁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김 회장의 ‘의리’가 이건희 회장에게는 커다란 ‘민폐’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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