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불려간 재벌총수]② 이건희 회장 ‘시나리오’ 거부하고 사법처리 자초
이상호 전문기자 | 기사작성 : 2019-05-23 07:02   (기사수정: 2019-05-23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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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회장이 지난 2009년 8월 특별검사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을 마친 뒤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을 떠나기 위해 차량에 오르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이건희 회장은 창업자인 선친 이병철 회장이 작고한 1987년 이후 2014년 5월 입원 직전까지 국내 최대 재벌 삼성을 이끌어 <글로벌 브랜드>로 만들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일 없다”는 속담처럼 30년 세월 삼성을 경영했기에, 본인과 주변은 물론 삼성에 크고 작은 문제가 그치지 않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늘 그에게 화살이 날아 들었다.

다만 2008년 4월, 이른바 ‘삼성특검’으로 소환조사를 받을 때까지 검찰 등 수사기관에 불려나간 적이 없었다.

혼자서 차를 몰다가 낸 교통사고, 출국길 공항에서 비서 가방안에 거액의 달러가 발견돼 수사선상에 오르기도 했지만 소환조사를 받지는 않았다.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비서실을 통한 ‘은둔의 경영’, 삼성그룹 특유의 섬세하고 정교한 관리문화가 있었기에, 수사기관의 칼끝이 이 회장을 직접 겨냥하기 힘들었다.


2007년 삼성특검으로 전무후무 검찰조사

특검 관계자들에게 ‘승마예찬론’ 설파

그러나 2007년 10월, 17대 대선을 앞두고 삼성 법무실 출신 김용철 변호사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한 폭로로 촉발된 ‘삼성특검’은 이건희 회장도 피해 갈 수 없었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내용은 첫째 삼성그룹 주요인사들이 모두 차명계좌를 갖고 있으며, 삼성그룹이 거액의 비자금을 관리해왔다는 것이었다. 둘째 삼성그룹이 경영권을 불법으로 승계했으며,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증인 조작 등 사법 방해를 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셋째는 에버랜드 사건뿐 아니라 국세청의 세무조사, 공정위의 부당거래조사도 치밀한 각본에 따라 진상이 은폐됐다는 것이었고 넷째는 삼성그룹이 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의해 검사들을 관리해왔으며 정기적으로 떡값을 제공해왔다는 것이었다.

조준웅 삼성특검 특별검사는 2008년 4월4일과 11일 두차례 이건희 회장을 소환해 조사했다. 4월4일 첫 소환은 공개로 이루어졌는데, 이 회장은 12시간 동안 서울 한남동 특검 사무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특검에 도착한 이건희 회장은 먼저 조준웅 특별검사실로 가서 30분 정도 차를 마셨다. 조준웅 특검은 “너무 긴장하지 말고 마음을 편하게 하시라”고 했다. 재계 1인자에 대한 ‘예우’였다.

채정석 변호사 등 특검보 조사실로 옮긴 뒤에도 이건희 회장에 대한 조사는 바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검보들이 이 회장의 건강법을 물어보는 등 가벼운 대화가 꽤 긴 시간동안 이어졌다.

이건희 회장은 먼저 자신이 즐겨했던 골프와 승마 등 여러 가지 운동의 장단점을 설명했다. 그리고 승마가 힘을 들이지 않고 상하체를 골고루 쓰는 유산소 운동이며 정신까지 맑게 한다며 시범까지 보여주며 ‘승마예찬론’을 펼쳤다.

임원, 변호사들이 만들어 준 시나리오 ‘거부’

“‘세계 최고’ 자존심에 아랫사람 탓 싫었을 것”


이어진 이건희 회장 조사에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당시 특검의 주된 수사내용이었던 경영권승계 문제에 대해 이건희 회장이 먼저 조사를 받았던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 등 전략기획실 임원들과 정반대 진술을 했기 때문이다.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과 관련, 이학수 부회장 등 삼성 측 핵심 관계자들의 일관된 진술은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당시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장)이 기획안을 작성해 이 부회장이 승인했고 이 회장에게는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건희 회장의 사법처리를 막기 위해 삼성과 변호인단이 정교하게 만든 시나리오였다.

특검은 이학수 부회장 등 삼성 관계자들을 상대로 집요하게 "그룹 최고 책임자인 이건희 회장이 전환사채 발행 및 배정을 몰랐을 리가 있겠느냐"고 추궁했지만 이들 중 그 누구도, 단 한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런데 4월4일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이건희 회장 스스로 이 시나리오를 깨고 말았다. 처음에는 이 회장도 의례적으로 “밑에 사람들이 알아서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러나 특검보가 “이런 일을 회장님이 몰랐다는게 말이 되느냐”고 반박하자 이내 “보고를 받았고, 그렇게 하라고 했다”며 순순히 물러나고 말았다. 이건희 회장의 신분이 피의자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왜 이 회장은 잘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를 버리고 스스로 피의자가 됐는지 뒷말이 무성했다.

이건희 회장을 변론했던 한 변호사는 나중에 “결벽증에 가까운 꼼꼼함, 세계 1등, 초일류를 지향하며 살아온 자존심 상 아랫사람 탓을 하고 자신만 빠져 나오는 선택을 하기 싫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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