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불려간 재벌 총수]① 황교안 검사가 ‘정주영 회장’한테 핀잔먹은 이유
이상호 전문기자 | 기사작성 : 2019-05-20 15:01   (기사수정: 2019-05-20 15:32)
1,386 views
N
▲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사진제공=연합뉴스]

대한민국처럼 많은 기업과 재벌총수가 검찰 수사를 받는 나라도 없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기업인이 수사와 사법처리의 대상이 된 것은 급성장 과정에서 불법을 넘나든 경영과 회계 등 기업문화 탓도 있지만 기업을 권력의 아래로 두고 길들이려는 정치적인 의도도 작용했다. 숱한 기업, 재벌총수가 검찰수사를 받으면서 있었던 뒷 얘기를 모아본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위한 사전포석으로 그해 2월 김동길 연세대 교수 등을 영입해서 통일국민당을 창당했다.

통일국민당은 4월에 치러진 14대 총선에서 지역구에 코미디언 이주일(본명 정주일)씨, 비례대표 후보로 탤런트 최불암, 강부자 씨 등을 앞세워 31석을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정주영 회장은 기세를 몰아 12월 제 14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으나 388만표, 16.3% 득표율로 김영삼, 김대중 후보에 이어 3위를 했다.

‘왕 회장’의 대선출마는 당시 여당인 민자당을 이끌며 대선에서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의 ‘격노’를 샀다.

영남 등 비호남 지역과 중산층 이상에서 지지기반이 겹치는 ‘왕회장’이 출마하는 바람에 자신의 표가 잠식되고 김대중 후보가 반사이익을 보는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선이 끝나자 정주영 회장 일가와 현대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검찰의 수사가 시작됐다. 당시 대선과 관련, 벌금형 이상으로 기소된 현대그룹 관계자가 1만명을 넘은 것으로 ‘대량 보복극’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왕회장’ 대선출마에 격노한 YS

대선 끝나자 검찰 앞세워 대대적인 보복수사


대선 두달 뒤인 1993년 1월15일 오전 10시, 정주영 회장이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청사에 출두했다. 정 회장에게는 여러 건의 선거법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비자금 조성) 혐의가 적용됐다.

당초 검찰은 정주영 회장이 출두하면 새벽 4시까지 18식간 정도 강도 높은 ‘밤샘조사’를 벌일 계획이었다. 선거법은 서울지검 공안부, 비자금 조성은 특수부에서 각각 9식간 씩 조사하기로 하고 황교안(공안부), 김종인 검사(특수부)를 투입했다.

그런데 정주영 회장이 서울지검 청사에 들어서는 과정에서 사고가 났다. 1백명에 달하는 취재기자와 사진기자가 질문을 하고 사진을 찍으려고 뒤엉키면서 한 경제신문 사진기자가 올라서 있던 취재용 사다리가 넘어지는 바람에 카메라가 정 회장과 부딪혔고, 정 회장의 이마가 찢어지면서 피가 흘러나왔다.

옆에서 이를 지켜 보고 있던 아들 정몽준 의원은 "어떡해! 어떡해!" 하며 손을 내밀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취재진과 대상을 분리하는 ‘포토라인’이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사고였다. 한국사진기자협회는 이 사건을 계기로 포토라인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왕 회장’ 밤샘조사 준비했던 검찰,

사진기자 카메라와 충돌 이마 찢어지자 자정 무렵 귀가

‘왕 회장’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자 검찰의 조사계획은 변경됐다. 검찰청으로 달려 온 서울 아산병원 의료진은 찢어진 부위가 이마이기 때문에 상처가 더 벌어지기 전에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검찰은 당초 ‘밤샘조사’에서 자정까지, 12시간 정도만 조사하고 자정 무렵 정주영 회장을 귀가 시키기로 했다.

정주영 회장은 먼저 서울지검 청사 9층에 있는 공안부 황교안 검사실로 가서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황교안 검사는 정확히 6시간내에 조사를 마치고 특수부로 정주영 회장의 신병을 넘기기로 돼 있었다.

황교안 검사와 마주한 정주영 회장은 한국 나이로 이미 80을 바라보는 ‘고령’이었다. 당시 수사가 정치참여와 대선 실패에 따른 ‘보복’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었던 만큼 ‘왕 회장’은 모든 것에 달관한 태도였다.

황교안 검사가 선거법 위반 사실을 제시하면, “그렇다면 그런 일이 있었겠지요”, “그게 죄라면 할 수 없지요” 이런 식이었다.


서울지검 공안부 황교안 검사, '컴퓨터 조작 실수'로 '조서' 날려

황 검사, "빠르게 재작성 하시죠"

'왕 회장’, "저거(삼성)말고 현대 컴퓨터 쓰셔야죠"


당시 서울지검 검사실의 풍경은 검사가 심문을 하면 옆에 있는 수사관이 타자기로 조서를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황교안 검사는 자신의 방에 ‘왕 회장’과 단둘이 앉아 심문을 하면서 직접 데스크탑 컴퓨터로 조서를 만들었다. 황교안 검사는 그 무렵 서울지검에서 타자기가 아닌 컴퓨터로 직접 조서를 받는 몇 안되는 검사 중 한명이었다.

황교안 검사가 왕 회장을 조사한 지 5시간 쯤 지났을 무렵, 큰 문제가 생겼다. 긴 문답을 마치고 정리를 하려는데, 컴퓨터 조작실수로 지금까지 받은 조서가 다 날라가 버린 것이다.

당황해서 머리 속이 하얗게 된 황교안 검사가 ‘왕 회장’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귀찮겠지만 다시한번 빠르게 문답을 해서 조서를 정리하자고 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무성의(?)하게 조사를 받던 ‘왕 회장’이 심호흡을 하더니 특유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황교안 검사에게 일갈했다.

“아니 검사님! 그러니까 저거 말고 현대 솔로몬컴퓨터를 쓰셨어야죠!!”

당시 정주영 회장의 현대그룹 자회사 현대전자에서는 솔로몬이라는 제품명의 데스크탑 컴퓨터를 생산, 판매하고 있었는데 황교안 검사가 사용한 컴퓨터는 삼성전자 제품이었던 것이다.

황교안 검사는 나중에 이같은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조사 내내 무심한 정주영 회장이 갑자기 정색을 하며 언성을 높이더라” 면서 “아 이래서 이 분이 맨주먹으로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을 일구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메일보내기
보내는분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내용
 
주요기업 채용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