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노미네이션 진짜 목적 둘러싸고 음모론 난무
이진설 경제전문기자 | 기사작성 : 2019-05-16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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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잠잠하던 리디노미네이션 논란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현찰 끌어내 실물경제 살리기?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홍남기 부총리겸 기획재정부장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잇단 부인발언으로 한동안 잠잠하던 리디노미네이션(화폐액면단위 절하)이 다시 시중에 퍼지고 있다. 이번에는 정부가 숨어있는 현금을 끌어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기습적으로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까지 가세해 안전자산인 금투자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수면위로 다시 부상한 리디노미네이션

리디노미네이션은 지난 3월 이주열 한은총재가 국회 업무보고에서 리디노미네이션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는 발언에서 촉발됐다. 논란이 커지자 이 총재는 지난달 18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직후 “원론적인 답변이었으며 현재로선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홍남기 부총리 역시 같은 날 경기도 파주의 기업 현장방문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경제수장들의 잇단 부인발언으로 리디노미네이션 논란은 수면아래 가라앉았으나 최근 일부 부자들이 혹시 있을지도 모를 리디노미네이션에 따른 자산가치 변동에 대비해 금사재기에 나섰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리디노미네이션 괴담’이라고도 불리는 최근의 현상은 경제침체와 밀접히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의 대규모 재정투자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리디노미네이션을 통해 잠겨 있는 현금을 끌어내 실물투자를 촉진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통화의 액면을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변경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1000원을 10원 혹은 1원으로, 통화단위의 액면을 절하하는 식이어서 엄격히 말하면 화폐개혁이 아니다.


▲ 이미 시장에서는 끝자리 0 세 개를 뺀 가격표가 보편화돼 있다. [뉴스투데이DB]


더욱이 화폐의 액면단위가 바뀔 뿐 화폐가치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어서 일반적인 디밸류에이션(평가절하)과는 확연히 다르다. 리디노미네이션은 인플레이션, 경제규모 확대 등으로 거래숫자가 늘어나면서 계산하기 불편해지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하는 것이 보통인데 최근의 괴담은 과거 1962년 화교들의 돈을 겨냥했다가 실패로 끝난 화폐개혁을 떠올리게 한다.

▶화교자본 노렸던 1962 년 화폐개혁

20세기 들어 한국경제사에서 화폐개혁은 총 4차례 있었다. 1905년, 1950년, 1953년, 1962년 등이다. 1905년 화폐개혁은 일제가 한국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단행한 것이다. 1950년 개혁은 조선은행권 지폐원판이 전쟁중 북한군의 수중에 들어가 불가피하게 화폐를 교환한 것이고 1953년 개혁은 전쟁으로 인한 살인적인 인플레를 잡기 위해 화폐단위를 ‘원’에서 ‘환’으로 바꾸고 100원을 1환으로 통일한 것이다. 1950년 화폐개혁이 1대1 교환이었다면 1953년은 명칭변경과 함께 명목절하가 함께 이뤄져 디노미네이션으로 분류할 수 있다.

가장 논란이 많았던 화폐개혁은 1962년 개혁이다.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는 경제재건에 필요한 자금이 필요했고 지하자금과 화교자본을 끌어내기 위해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환을 원으로 바꾸고, 10환을 1원으로 절하했다는 점에서 역시 디노미네이션에 해당한다.

당시 정부는 구화폐를 신화폐로 교환해주는 과정에서 모든 은행계정을 봉쇄시켰다. 일부를 제외하곤 은행에 있는 돈은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크게 반발한 케네디 미국정부의 압력에 밀려 한 달 만에 모든 은행계정을 해제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이면에는 통화개혁의 가장 큰 목적이었던 화교들의 신고자금이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얼마 되지 않은데 따른 박정희 정부의 실망감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꺼지지 않는 불씨가 괴담 확대재생산

지난 13일 국회에서는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이 공동주최한 리디노미네이션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 참석한 박운섭 한국은행 발권국장은 한은의 공식 입장을 묻는 질문에 “한은은 리디노미네이션 준비를 10년이상 해왔다”면서 “언젠가는 리디노미네이션을 해야 하는만큼 국회가 공론화해달라”고 말했다.

박 국장의 발언은 듣기에 따라서 한은은 얼마든지 준비가 돼 있으니 국회에서 공론화해 줄 것을 촉구하는 식이어서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이주열 총재의 앞선 발언과는 묘한 차이를 나타냈다.

여당인 이원욱 의원과 야당인 박명재 의원이 한 목소리로 “지금이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 것도 리디노미네이션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는 평가다.


▲ 리디노미네이션 논란으로 최근 금거래가 늘어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일자리창출과 경기부양 효과(박승 전 한은총재), 업무처리 간소화로 인한 비용절감과 자기앞수표 관리비용절감(임동춘 국회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장) 등 리디노미네이션 효과가 예상된다는 발언도 나왔다.

그러나 단순히 끝자리 0 세 개를 없애는 화폐액면단위 절하가 실물투자를 부추긴다는 확실한 근거가 없는데다 오히려 물가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부정적 인식도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회를 중심으로 다시 확산되고 있는 리디노미네이션과 관련, “현재 정부는 검토한 바 없다”고 거듭 부인했지만 한번 불붙은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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