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태재의 Old & New] 한국적 현실에 절실한 군인정신의 기원 ‘노블레스 오블리주’
원태재 | 기사작성 : 2019-05-1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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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 제11기계화보병사단이 2017년 2월 28일 고 강재구 소령이 산화한 강원 홍천 '강재구 공원'에서 소위에서 중위로 진급하는 장교들을 대상으로 특별한 진급 신고식을 거행하고 있다. 고 강재구 소령은 1965년 10월 베트남 파병을 앞두고 훈련 중 부하가 실수로 놓친 수류탄을 몸으로 덮쳐 부하의 생명을 구하고 자신은 산화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고위층의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기사도 정신으로 이어져

[뉴스투데이=원태재 前 국방부 대변인]
 
로마에서는 귀족을 파트리키(patricii)라고 했는데, 이는 아버지(父:pater)라는 말에서 비롯되었으며 혈연에 의한 세습적 특성을 나타낸다. 한편으로는 플레브스(plebs)라고 불리는 평민들에 대한 가부장적 지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초기에 파트리키는 평민인 플레브스(plebs)와 통혼(通婚)이 금지되고 상급 관직 및 사법권 등을 독점했으나, BC 4세기경에 이르러서는 부유한 평민계층을 흡수하여 새로운 지배계층을 형성하고 스스로 ‘노빌레스(nobiles)’라고 호칭했다.

로마 사회의 고위층을 형성한 이들은 국가를 위한 공공 봉사와 함께 금전 및 재산을 기부·헌납하는 전통이 강했고, 이런 행위들은 개인의 의무인 동시에 가문의 명예로 인식되면서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리하여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 됐다.

로마 건국 이후 500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15분의 1로 급격히 줄어든다. 그 이유는 계속되는 전투에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됐기 때문이다.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인 포에니 전쟁(Punic War), 특히 한니발이 활약한 제2차 포에니 전쟁(BC 218-202)이 끝난 후 신흥 부유층으로 등장한 기사 계층(equites)이 노빌레스 대열에 합류한다.


기사도 정신은 경제적 상류층에 ‘신사도’란 이름으로 확산


게르만족의 이동이 끝난 후인 중세 시대에 이르러서는 국왕으로부터 귀족과 말단 기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기사 계층으로 채워졌다. 그러므로 기사도(chivalry)란 봉건 지배계급인 귀족집단의 도덕과 예의범절을 포함한 행동 규범을 통칭하며, 봉건제도의 발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되면서 형성됐다.

기사들의 주 임무는 전쟁이었다. 승리할 경우 전리품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전쟁은 이들에겐 ‘비즈니스’였으며, 심지어 전투가 즐거운 운동경기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적에 대한 폭력이나 잔인성이 허용됐다. 하지만 가장 중요히 여겨지는 덕목은 용기, 충성 그리고 신의였다.

기사도는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 특히 교회의 영향으로 점차 세련되고 평화 지향적으로 변했으며, 비무장 상대를 공격하지 않는 등 명예를 더욱 존중하게 됐다. 기사들은 여성들에 대해 관대했고, 이상적인 여성상(대체로 영주의 부인)을 정하여 헌신·봉사하는 것을 큰 명예로 생각했다. 실제로 많은 기사들은 여성의 사랑을 얻기 위해 더욱 용기 있게 싸우고 명예롭게 행동했다.

이러한 기사도는 중세 말 부상하여 산업혁명 이전까지 영국사회를 이끌어온 부유한 지주계층인 젠트리 계층에게 그대로 계승됐다. 또한 산업혁명 이후에는 부르죠아 계층에게도 확산됐다. 귀족중심의 기사도 정신은 이제 신사도(gentlemenship)란 이름으로 부유한 지주계층을 포함한 경제적 상류층으로 확산돼 근대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규범으로 정착됐다.


민주사회의 시민정신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덕목 작용

건전한 시민정신 지녀야 용기 있고 훌륭한 군인 될 수 있어


근대 시민사회가 성립된 이후에는 시민정신이 강조되고 있다. 현대 민주사회는 모든 국민이 정치·경제적 주체라는 점을 전제로 성립되어 있다. 이제 국가와 사회의 주도세력은 더 이상 귀족이나 상류층이 아니며 시민 계층이다. 따라서 기사도나 신사도가 그 시대 사회 지도층의 시대정신이었듯이 오늘날의 시민정신에도 여전히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덕목이 작용한다.

그렇다면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한 오늘날의 한국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과연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같은 시민정신이 살아 있는가? 만일 우리에게 시민정신이 결여됐다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적 풍요는 일시적인 것이거나 허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오늘날 모든 시민은 사회계약론에 의거, 과거 엘리트 계층만이 담당하던 국가 방위를 위해 병역의 의무를 분담하고 있다. 시민정신이 과거 귀족계층과 군인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서 이어져 온 것임을 고려할 때, 오늘날의 군인정신과 시민정신은 강도에 있어서만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즉 건전한 시민정신을 지닌 젊은이들이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학과 성적보다는 충성, 헌신, 명예, 용기, 신의, 예의 등을 존중하는 군 후배들이 많았으면 나는 좋겠다. 특히 진정한 용기는 신념과 사고에서 비롯되며, 평소 훈련의 결과로 나타난다. 그래서 소위 때 용기가 없어 평생 참기만 했던 장교는 나중에 운이 좋아 장군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용기 있는 군인으로 거듭나기는 어렵다.

지금 대한민국과 국민들은 단지 계급만 높은 군인들이 아니라 진정한 용기를 지닌 참군인들이 많이 나타나주기를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바라고 있다.











前 국방부 대변인(역사학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前 육사 전사학과 교수
前 국방대 외래교수
前 영국 서섹스대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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