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경제산책] 리디노미네이션 논란? 시장에선 이미 시작
이진설 경제전문기자 | 기사작성 : 2019-04-2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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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생활에선 이미 끝자리 '0' 3개를 뺀 가격표가 보편화돼 있다. [뉴스투데이=이진설 기자]

화폐 끝자리 000 빼야하나 말아야하나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1. 직장인 김성희 씨는 점심식사 후 회사인근 커피숍 메뉴판에서 끝 세자리 1000원을 없애고 한 자리수로 표시된 가격을 보고 주문한다. 아메리카노 3.5, 카페라떼 4.5 등 커피메뉴판은 이미 달러식 표시가 보편화돼 있다.

#2. 올해부터 수도권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인 객원교수 벤 스크류씨는 가족과 함께 들른 치킨집 메뉴판이 낯설지 않다. 양념치킨 한 마리 가격이 17로 표시돼 있어 미국에서처럼 가격수준을 이해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최근 화폐액면단위 절하를 뜻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이 화제가 되고 있다. 정치권에서 촉발된 논란은 경제규모가 커진 만큼 화폐액면단위를 줄이자는 주장이다. 핵심은 경제규모에 비해 원화 단위가 너무 크다는 것인데, 금액 가치는 그대로 두되 0의 개수를 줄이자는 게 골자다.

흔히 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이란 통화단위의 호칭변화를 의미한다. 가령 ‘환’으로 불렀던 통화단위를 ‘원’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통화의 액면을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변경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1000원을 10원 혹은 1원으로, 통화단위의 액면을 절하하는 식이어서 엄격히 말하면 화폐개혁도 아니다.

더욱이 화폐의 액면단위가 바뀔 뿐 화폐가치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어서 일반적인 디밸류에이션(평가절하)과는 확연히 다르다. 리디노미네이션은 인플레이션, 경제규모 확대 등으로 거래숫자가 늘어나면서 계산하기 불편해지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하는 것이 보통이다.


▶지금까지 총 4
차례 화폐개혁

20세기 들어 한국경제사에서 화폐개혁은 총 4차례 있었다. 1905년, 1950년, 1953년, 1962년 등이다. 1905년 화폐개혁은 일제가 한국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단행한 것이고 1950년과 1953년의 화폐개혁은 한국전쟁과 관련돼 있다.

1950년 개혁은 조선은행권 지폐원판이 전쟁중 북한군의 수중에 들어가 불가피하게 화폐를 교환한 것이고 1953년 개혁은 전쟁으로 인한 살인적인 인플레를 잡기 위해 화폐단위를 ‘원’에서 ‘환’으로 바꾸고 100원을 1환으로 통일한 것이다. 1950년 화폐개혁이 1대1 교환이었다면 1953년은 명칭변경과 함께 명목절하가 함께 이뤄져 디노미네이션으로 분류할 수 있다.

1962년 화폐개혁은 쿠데타로 정권은 잡은 박정희 정부가 경제재건에 필요한 자금확보를 위해 지하자금과 화교 돈을 끌어낼 요량으로 단행한 것이다. 환을 원으로 바꾸고, 10환을 1원으로 절하했다는 점에서 역시 디노미네이션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화폐개혁은 숨겨진 현찰이 무더기로 나올 것이란 기대가 무참히 깨진 채 혼란만 가중돼 실패한 화폐개혁으로 기록됐다.


리디노미네이션 논란 지속될 듯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리디노미네이션 논란이 증폭되자 지난 18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리디노미네이션을 전혀 생각 안한다”고 잘라 말했다. 앞서 이 총재는 3월 국회 업무보고에서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고 언급했으나 이 역시 원론적인 대답이었다고 해명했다.

▲ 우리보다 화폐단위가 큰 베트남에서도 끝자리 0 3개를 제외한 표시가 일상화돼 있다. [뉴스투데이=이진설 기자]

이 총재의 분명한 입장표명으로 리디노미네이션 논란은 줄어들었지만 화폐단위에 대한 불편함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국민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각종 한국은행 통계에는 경 단위까지 들어가고 있는데, 경을 표기하려면 '0'이 16개나 붙어야 한다. 기축통화에 비해 교환가치가 4자리 숫자인 나라가 많지 않다는 것도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을 옹호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끝자리 0 세 개를 떼고 계산하는 방식이 보편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막대한 교체비용과 인플레이션 우려 등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리디노미네이션을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않다.

실제로 관공서의 예산계획안이나 기업 재무제표에서는 이미 단위를 1000원 혹은 10만원 식으로 하고 숫자를 쓰는 것이 보편화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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