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군 이야기](1) 막연한 동경심에 공사 지원, 그 추억
최환종 칼럼니스트 | 기사작성 : 2019-04-26 14:11   (기사수정: 2019-06-1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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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도들의 주말 퍼레이드, 대방동 옛 공군사관학교 [사진=최환종]

30여 년간 공군 장교로 근무한 현장의 기록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필자는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30여 년간 공군 장교로 근무한 후, 몇 년 전에 전역했다. 사회인이 된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전역할 때까지 약 36년 간 공군에서 생활한 만큼, 아직도 몸과 마음은 군인이다. 군복을 입지 않았을 뿐.

현역에 있을 때나 전역 후에나, 필자가 공군에서 근무한다고(하였다고) 하면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유사한 질문을 한다. ‘비행기 타셨겠네요?’, ‘어느 비행장에서 근무하셨어요?’.

그러나 필자의 임무와 근무지는 비행훈련 시절을 제외하고는 ‘비행(飛行)’과 다소 거리가 먼 것이었기에, 질문한 사람의 기대와 다른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얘기가 길어지거나 상대방이 이해를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인식은 “공군 = 비행기(전투기)”라는 인식이 박혀 있음을 생각한다. 물론 상식적이겠지만.

전역 후에 언젠가는 자서전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내가 그동안 살아온 길이 자서전을 쓸 만큼 훌륭했던가?’, ‘기록을 남길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공군에서 오래 근무했으니 공군에서 근무할 때 있었던 에피소드를 글로 써보는 것이 어떠냐 하는 지인의 권유를 받았고, 한동안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자서전’이라기보다 ‘내 아이들에게 아빠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타인들에게 공군인으로서 이런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라는 생각에 ‘나만의 공군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필자의 공군 이야기는 필자가 공군사관학교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던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최근 전역할 때까지의 얘기를 시간 순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진로를 결정지은 '공사생도의 입학설명회'와 '공사방문'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언제부터인가 제복(군복)에 대한 느낌이 좋았다. 가끔 밤늦게 AFKN(American Forces Korean Network, 주한미군방송) TV나 주말에 TV에서 방영하는 할리우드 영화(주로 전쟁영화)를 보면서 장래 직업으로서 군인(장교)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 본 영화 중, 2차 대전 초에 영국 상공에서 영국과 독일의 공중전을 다룬 “Battle of Britain (한국명, 공군 대전략)”, 2차대전 말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그린 “The Longest Day (한국명, 사상 최대의 작전)”은 어린 소년의 마음에 군인에 대한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3학년 초에 공군사관생도 여러 명이 학교에 와서 일종의 ‘사관학교 입학 설명회’를 가졌다. 한 시간 정도 진행된 설명회였는데, 생도 생활, 향후 전망(조종사) 등에 대한 설명과 그들의 자세, 복장은 내 관심을 빼앗아 가기에 충분했다.

두어 달 후 어느 토요일 오후에, 입학 설명회에 왔던 공사 생도를 찾아갔다. 당시는 공군사관학교(이하 ‘공사(空士)’로 표기함)가 지금의 보라매공원에 있었다. 그 생도는 공사 럭비 선수였고, 토요일임에도 럭비 연습 중이었다. 그 생도에게 생도 생활에 대한 설명을 현장에서 듣고 사관학교를 둘러보았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입학 설명회’와 ‘공사 방문’이 필자의 진로를 거의 결정하다시피 했다. (주말에 사관학교를 안내해줬던 ‘그 생도’는 후에 필자가 제트 비행훈련 첫 비행시 비행교관으로 같이 비행을 했다. 이정도면 대단한 인연이 아닌가 싶다. ‘그 생도’는 30여년 후에 준장(准將)으로 전역했다)

“맹장 수술 받으면 공사 탈락” 유언비어에 가슴 졸이기도

한편, 공사 지원을 앞두고 사관학교 지원에 관심있는 친구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며 관련 자료를 주고받았다. 관련 자료라고 해야 지금 보면 대부분 쓸모없는 허위자료 들이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는 공사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기에 모두들 솔깃해서 들었다. 출처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허위 자료중의 하나를 예를 들면, 공사에 지원하려면 몸에 상처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충치가 있어도 안되고, 맹장 수술자국이 있어서도 안되고 등등(수술 자국이 있으면 비행하다가 공중에서 터진단다). 필자도 충치가 여러 개 있어서 걱정했는데, 많은 자료가 허위임이 나중에 공군 항공의료원에서 정밀신체검사를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충치는 치료만 하면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그런 종류의 허위자료는 워낙 공사 신체검사 기준이 강하다 보니 말도 안되는 유언비어가 퍼졌던 것 같다.)


■ 공사 관련 최대 ‘허위 자료’는 “공사에선 군사훈련만 집중”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최대의 허위자료는 공사에 입학하면 공부는 최소한만 하고 군사훈련만 받는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나중에 공사에 입학해서 보니 이 말은 완전히 허구임이 드러났다. 오히려 고등학교 때보다 공부해야할 양이 엄청 많았다. 공사에 입교한 후에 동기생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이런 종류의 유언비어를 들은 동기생들이 더러 있었는데 웃지 못 할 일이다.

아무튼 필자는 필기시험, 체력검정, 정밀신체검사, 면접을 통과하고 공군사관학교에 합격했다. 고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1월 초)때 등기우편으로 최종 합격자 발표 결과를 받아보고는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고,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며칠 후에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당시는 대학입학 본고사가 있던 시절이고, 고등학교 졸업식 이후에 본고사가 있어서 대학 진학을 앞둔 동기들은 졸업식 날에도 다소 긴장하고 있었겠지만 필자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졸업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 공사 합격했지만, ‘예비생도 교육’이라는 또 다른 관문 만나

그 즈음에 사관학교에서 간단한 입학 안내서가 왔다. 내용은 사관학교에 2월 1일부로 ‘가입교’를 하는데, 이때 지참할 물품 목록과, 2월 한 달간 예비생도 교육을 받은 후, 3월에 정식 입교식이 있다는 것 등의 안내사항이었다.

다시 말하면 한 달간의 예비생도 교육을 통과한 후에 정식 생도가 된다는 얘기이다. 합격증을 받았으니 입교식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어떤 교육이 진행될까? 막연한 기대감과 불안감이 교차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월 1일 새벽, 대방동 공군사관학교로 향했다. 이날부터 36년간의 뜻 깊고 기나긴 공군 생활이 시작되었다. (다음에 계속)




-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 공군사관학교(전자공학), 한양대 대학원(전자공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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