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표 대결 와중에 되돌아보는 표 대결
정동근 기자 | 기사작성 : 2019-04-03 15:12   (기사수정: 2019-04-0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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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정동근 부국장]

보궐선거의 날이다. 경남 창원성산, 통영·고성 등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곳은 두 군데 뿐이다. 하지만 그 결과에 따라 영향은 막강하리라는 예상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을 지니는데다 내년 치러질 총선에 대한 영남권 민심을 가늠할 척도로 작용하리라는 분석이다. 또 전국 민심까지는 아니라도 향후 정국의 방향을 살펴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는 예측도 떠돈다.


일주일 간격으로 벌어지는 전혀 다른 표 대결


개표가 완전히 마무리되는 자정 이전 이들 두 군데 지역의 민심을 대변할 새로운 선량이 태어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선거는 결선투표제를 채택하지 않기 때문에 단 1표만 더 획득해도 승리자가 될 수 있다.

당장 국회의원 신분이 되는 당선자 한편으로 낙선자도 모습을 드러낸다. 패배의 쓴 잔을 마신 이는 향후 권토중래를 모색하는데 골몰할 수도 있고 아예 정치판을 떠나는 경우도 나온다. 마침 1주일 전 또 다른 성격의 경제판 표 대결이 벌어져 자리를 떠나야했던 이가 있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주인공이다.

대한항공 주주총회는 표 대결 이전 우선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했다는 측면에서 이목이 집중됐다. 또 표 대결 직후에는 조 회장이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하며 주주에 의해 자리에서 물러나는 첫 재벌총수로 기록됐다는 점에서 특이점을 남겼다.

재계 안팎에서는 상반된 주장이 터져나왔다. 대한항공 주총 결과에 대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연합회는 즉각적인 유감 성명을 발표했다. 국민연금이 정치적 결정을 단행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기업을 어떻게 경영하겠냐는 볼멘 소리였다.

반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이 부결된 직후 나타난 시장 상황은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한항공 주가는 장중 4% 넘게 올랐다. 결국 전날보다 400원, 2.4% 오른 채 장을 마감했고 지주사인 한진칼의 주가마저 소폭 상승시켰다.

여의도 증권가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한마디로 호재 일색이라고 내다봤다.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안 부결을 오너 리스크 해소 관점에서 봐야한다는 평가는 증권업계의 일치된 견해였다. 소액주주와 외국인 주주의 행동이 긍정적 효과를 봤다는 분석이었다.


정관 변경으로 제 발등 찍은 총수 일가


정치인이 선거를 치르기 위해 꾸리는 선거캠프는 선거 직후 대부분 백서를 만든다. 선거 과정의 잘잘못을 가려 반성의 계기를 삼기도 하고 논공행상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대한항공도 올해 주총 표 대결을 둘러싸고 백서를 만들었을까. 만든다고 하더라도 밖으로 내돌리지는 않을 성 싶다. 다만 주총을 지켜봤던 입장에서 백서 내용의 전후좌우를 추정해볼 수는 있다.

정치판 선거의 당락은 앞서 말했듯이 1표 차이로 가능하다. 주총의 경우 기업마다 다르다.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것이 정관이라는 녀석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정관상 의결 정족수를 3분의2, 즉 66.6%로 못박고 있다. 조 회장은 2.6%의 지지를 더 얻지 못해 사내이사 연임에 결국 실패했다.

과반이면 충분히 연임하고도 남았을 텐데 66.6% 룰 때문에 경영에서 밀려난 꼴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룰은 알고보면 조 회장이 20년전 창업주가 아니면서 대를 이어 오너로 취임하면서 만들었다. 대한항공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조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33%를 지닌 채 1대 주주이다.

조 회장 일가는 33% 지분으로 그동안 외부의 경영 참여를 막아왔다. 정관을 변경해 20년 동안 경영권 철벽 방어를 해온 셈이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달라져 거수기 역할 밖에 할 줄 모르던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게 됐고 조 회장 일가는 거꾸로 거기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주총 표결 직후 대한항공은 공식 입장에서 “경영권 박탈이 아니라 이사직 상실”이라는 메일을 수많은 취재진에게 보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사내이사 연임이 불발됐다는 것 뿐이지 대한항공 안팎에서 조 회장의 지위는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아들이 사장이고 지분도 충분해 시쳇말로 뒷방 경영이 가능하다. 20년 회장으로서 퇴직금만 수백억원 챙길 예정이다.

충언을 마다않는 백서 제작 담당자라면 말미에 어떤 내용을 담을까. “대물림 오너이면서 횡령·배임을 저질렀고, 회삿돈이나 내 돈 구별 없었고, 직원에게 온갖 갑질을 저질렀고, 하필 20년 전 정관을 변경해서 표 대결에서 졌습니다.” 너무 과한 상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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