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투분석] 한심한 서울대 창업동아리의 ‘학벌주의’ 사업구상도 격려 필요한 '실패'?
박희정 기자 | 기사작성 : 2019-03-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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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4일 ‘맘 카페’ 및 ‘중고나라’ 등에 올라온 서울대 소속 한 창업 동아리의 물품 판매 홍글(왼쪽)과 서울대 정문 전경. [사진제공=연합뉴스]

서울대생 쓰던 펜과 손펜지 등을 7000원에 판매 시도

합격선 높은 학과 재학생 손편지부터 먼저 판매, 구매 경쟁 부추겨?

온라인 커뮤니티의 거센 ‘학벌주의’ 비판에 하루 만에 사업계획 접어

80년대 서울대 졸업생 K씨, “과거보다 훨씬 세속적인 학벌주의가 뿌리내려”

대기업 관계자, “질타는 필요하지만 잘못된 발상으로 인한 ‘실패’도 격려할줄 알아야”

[뉴스투데이=박희정 기자]

서울대 소속 한 창업동아리는 24일 '중고나라'와 '맘카페' 등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서울대생이 사용하던 펜과 직접 쓴 수험생 응원 편지를 판매한다는 홍보글을 올렸다. [중고나라 갈무리]

서울대의 한 창업동아리가 ‘학벌주의’와 ‘서열주의’로 중무장한 상품판매를 기획했다가 여론의 거센 질타를 받고 철회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국내 최고 대학을 자부하는 서울대의 재학생들이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발휘하기는커녕 해묵은 학벌주의에 호소하는 창업 아이템을 상품화하려 했던 것을 두고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대학사회의 건전성이 과거보다 후퇴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라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5일 대학가 등에 따르면 서울대 모 창업동아리는 24일 ‘중고나라’와 ‘맘카페’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 “수험생들에게 좋은 기운을 전해드리고자 서울대생들이 직접 손편지를 쓰고, 공부할 때 사용한 펜 그리고 서울대 마크가 그려진 컴퓨터용 사인펜 등을 한 묶음으로 해서 7000원에 판매하겠다”는 광고 글을 올렸다.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이 창업 동아리의 사업 구상 자체가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곱히고 있는 ‘학벌주의’에 호소한다는 전략 이외에는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다수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이 동아리의 ‘한심한’ 마케팅 전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문제의 광고 글은 “편지를 쓴 서울대생의 전공은 랜덤이지만 등급컷(학과별 입시 합격선)이 높은 순서로 선착순 판매할 예정이다”는 친절한 설명가지 덧붙였다. 서울대 내에서도 합격선이 높은 학과에 재학중인 학생의 손편지 및 쓰던 펜을 담은 패키지를 먼저 판매할테니 빨리 신청할수록 유리하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서울대 내에서도 ‘서열’이 존재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광고 글을 올린 온라인 커뮤니티 뿐만 아니라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 등에서도 “학교 망신을 시킨다”는 비판 댓글이 쏟아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의 창업 동아리는 안팎의 거센 질타에 직면하자 황급하게 하루만에 해당 ‘비지니스 아이템’ 철회 의사를 밝혔다.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20여만 원의 자본금으로 간단하게 상품을 판매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모든 것이 판매가 가능하다는 발상이었다”면서도 “생각이 짧았고 해당 사업을 당장 취소하겠다”고 해명했다.

‘모든 것의 상품화’라는 나름의 경영철학을 추구하려고 했지만 그 결론은 ‘학벌주의’를 부추기는 얄팍한 상혼에 그친 셈이다.

80년대에 서울대를 다녔다는 졸업생 K씨는 25일 뉴스투데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서울대를 포함한 과거의 대학생들은 금전가 가치 이상의 사회적, 철학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다”면서 “반면에 민주화 이후 대학이 양적 성장에 치중하다보니 학생들도 경제논리에 함몰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K씨는 “역대 정부가 대학 서열을 타파한다는 명목으로 대학 및 학과별 합격선을 비밀에 부치고 학생부종합전형 확대 등을 통해 학벌주의에서 벗어난 인재를 선발한다고 외쳐왔지만 실제로는 과거보다 훨씬 세속적인 학벌주의가 한국 대학생들의 뇌리에 각인돼 있음을 확인시켜준 단면적 사건으로 보인다”면서 “갖가지 명목으로 펀딩을 해서 건물을 짓는데 여념이 없는 주요 대학 총장들부터 대학의 발전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해야 학생들도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취업난이 격화되면서 실패를 무서워하지 않는 창업정신이 대학과 사회에서 강조되고 있다”면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모인다는 서울대의 창업 동아리가 그러한 혁신과는 전혀 동떨어진 사업 아이템에 착안했다는 사실 자체에 마음이 무겁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창업 동아리가 기치로 내걸었던 ‘모든 것을 상푼화한다’는 개념 자체는 도전정신이 담겨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논란이 된 서울대 창업 동아리 소속 학생들은 이번 일을 겪으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을 것으로 본다”면서 “이번 해프닝을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일종의 해프닝으로 판단해 오히려 격려해주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도전과 창의정신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렀다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실패’를 용인해주는 사회적 분위기 또한 ‘창업시대’에 필요한 덕목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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