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의 심호흡] 정의선 현대차부회장을 압박한 문 대통령의 ‘착각’
이태희 편집인 | 기사작성 : 2019-01-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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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창출에 명운 건 문 대통령의 경제행보, ‘우회전 깜빡이’라는 우려도

[뉴스투데이=이태희/편집인]

문재인 대통령의 연초 경제행보가 인상적이다. 진보정권이라는 이념적 정체성보다는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듯하다. 스스로를 ‘현대차의 수소차 홍보대사’라고 지칭하는 등 대기업의 혁신성장을 위한 조력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단호하게 드러내고 있다. 진보를 자처하는 언론매체에서는 “그가 우회전 깜빡이를 켰다”는 식으로 꼬집을 정도이다.

하지만 일자리가 없어서 피기도 전에 스러져 가는 대한민국 청년들을 구출하겠다는 통치권자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서부터 진한 변화의 냄새가 풍겼다. 사실 문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핵심동력으로 삼아 정권 창출을 한 인물이다. 때문에 취임 초기부터 그 적폐와 거리를 두려고 무진 애를 썼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지형이 정치적 지지기반 형성의 출발점이 되는 한국적 상황에서 불가피한 처신이라고 볼 수 있다.


본격화된 친 대기업 행보, 진보인사들은 ‘적폐에 둘러싸인 달빛’으로 꼬집어

그런데 이번 청와대 모임에서는 국내 주요대기업 총수들이 문 대통령의 주위를 둘러싸는 사진이 쏟아져 나왔다. 지난해처럼 함영진 오뚜기 회장과 같은 중견기업 오너가 부각되는 행사성 기획은 없었다.

청와대 경내 산책에서도 문 대통령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바로 옆에서 대화를 나눴다. 청와대 의전 관행상,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거리’는 우발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전에 지정된 시나리오이다. 바로 뒤에는 최태원 SK회장이 보였다. 기업과 시장경제를 혐오하는 극좌적 인사라면 “적폐에 둘러싸인 달빛”이라고 탄식했을 법한 그림이었다.


광주형 일자리 무산 책임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인식은 '착시현상' 있는 듯

그러나 문 대통령의 ‘광주형 일자리’ 접근법에는 '착시현상'이 있는 것 같다. 그는 지난 17일 울산시청에서 열린 정부의 ‘수소경제 로드맵’ 발표 행사에 참석,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넥쏘’에 강한 기대감을 표출했다. ‘홍보대사’가 되겠다는 발언도 이 자리에서 나왔다. 현대차가 예뻐서 한 말은 아닐 것이다. 현대차가 미래차 시장을 주도함으로써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달라는 정치적 수사학으로 보여진다.

문제는 행사 이후 울산의 한 식당에서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지역경제인들과의 간담회장에서 불거졌다.

문 대통령은 "'광주형 일자리'가 단순히 광주에서만 하는 정책이 아니라 어느 지역이든 그와 같은 형태를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인 만큼 울산에서도 추진되기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자동차산업의 임금을 낮춰 국내 자동차 생산을 늘리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이라면서 송철호 울산시장과 긴밀하게 협의해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정 부회장은 특별한 발언 없이 대통령의 발언을 경청만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어깨와 가슴이 무거웠을 가능성이 높다. 최고통치권자에게 ‘불가능한 과제’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도 "현대차가 한국에 새로운 생산라인을 설치한 것이 기억도 안 날 정도로 까마득하다“면서 ”현대차는 그동안 외국에 공장을 새로 만들기는 했지만 한국에 생산라인을 새롭게 만든 것은 없었다“고 지적한 바 없다.

문 대통령의 잇따른 발언이 현대차 혹은 그 수장인 정 부회장에 대한 압박임은 바보가 아니라면 간파할 수 있다.


현대차 노조 아닌, 정의선 부회장에게 지난 해 무산됐던 ‘광주형 일자리’ 성사 압박

성폭력 가해자 놔두고 ‘짧은 치마’ 입은 피해자 질책하는 격

그러나 모름지기 압박이나 권유는 책임이 있는 당사자에게 가해져야 하는 법이다. 엉뚱한 곳에 화살을 돌리면 사태는 악화되기 마련이다. 성폭력 가해자 인권을 보호하면서 피해자에게 “짧은 치마를 입었다”고 질책하면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이다.

광주형 일자리의 가장 큰 걸림돌은 현대차 사측이 아니었다. 현대차 노조였다. 평균 연봉이 9200만원에 달하는 현대차 노조원들은 “광주형 일자리가 자동차산업 노동자의 임금 하향 평준화를 위한 음모”라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격렬하게 반발했다. 현대차 노조원의 소비로 먹고사는 울산지역 전체도 반기를 들었다. 아니 거대한 진보세력인 민주노총이 ‘광주형 일자리’를 좌초시켰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다.

현대차가 지난 해 연말 광주형 일자리를 전격적으로 포기한 것은 협상의 노동계 파트너인 한국노총 측이 당초 합의했던 ‘초임 연봉 3500만원’ 조건을 무효화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한노총은 막판에 ‘5년간 임단협 유예조항’ 삭제를 제시했다.

그럴 경우 초임연봉 3500만원 조건은 무의미해진다. 임단협을 통해 얼마든지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불응할 경우 현대차 노조처럼 ‘파업’에 돌입할 수 있게 된다. “자동차 산업의 임금을 낮춰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문 대통령의 논리와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솔직히 ‘낮은 임금’이라는 표현도 국민정서에 불을 지른다. 한국의 대졸 취준생이 희망하는 초임 연봉은 3300만원 정도로 추산된다. 광주형 일자리 초임을 밑돈다. 더욱이 광주형 일자리는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예산을 투자해 아파트와 복지시설을 제공하는 특혜도 풍성하다.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흙수저 청년들로서는 부럽기만한 일자리이다.


이념의 색안경 벗어야 ‘진실’ 보여, 진보의 적군이 ‘왼편’에 있을 수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주인공인 기업은 태생적으로 탐욕적이다. 독점하고 노동을 착취할수록 이윤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주형 일자리 무산과정에서 기업의 탐욕이 걸림돌이 된 적이 없다. 현대차에게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은 절실한 희망사항이었다.

현대차 노조라는 막강한 이익집단의 탐욕 혹은 생존본능만이 작동했다. 광주형일자리가 생겨나면, 울산 현대차공장의 고비용구조는 장기적으로 도태될 것이라는 ‘공포’가 새로운 일자리 모델을 좌초시켰다. 그런 현대차 노조의 반발은 본인들 입장에서는 생존권 투쟁이고, 타자의 시선에선 탐욕이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을 ‘진보’로 생각하지만 ‘적군’이 항상 오른 편에 있는 건 아니다. 광주형 일자리를 성사시키려면 현대차 노조와 민노총을 설득하고 압박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념의 색안경을 벗어야 진실이 보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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