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하이트진로 박문덕 회장 ① 경력:만년 2등을 1등으로 만든 ‘추진력 갑' 리더십
김연주 기자 | 기사작성 : 2018-11-08 06:03   (기사수정: 2018-11-12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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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일러스트=민정진/ⓒ뉴스투데이]

조선맥주 창업주인 고 박경복 명예회장의 차남, '하이트진로'의 기틀 구축

[뉴스투데이=김연주 기자] 만년 2등의 역습이었다. 국내 2개뿐인 맥주회사 중 업계 2위의 몸부림을 주목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1년여의 연구 끝에 조선맥주주식회사(현 하이트진로, 이하 조선맥주)는 새 맥주 브랜드 ‘하이트’를 출시했다. 하이트는 계속해서 시장 점유율을 높여갔고 마침내 국내 맥주시장 1위의 쾌거를 이뤘다.

이상은 하이트진로 박문덕 회장이 성공 스토리이다. 조선맥주 창업주인 고 박경복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태어나 하이트진로 회장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성과 덕분이다.

2001년 부친에 이어 하이트맥주 회장에 취임한 박문덕 회장은 2005년 소주 회사 진로 인수를 추진해 ‘하이트-진로그룹’을 탄생시켰다. 이어 2011년 진로와 합병 절차를 거치면서 현재의 ‘하이트진로’의 기틀을 갖추게 됐다.


1991년 조선맥주 사장 취임, 만연한 '2위 정신'깨기 위해 임직원과 1년여 합숙

1993년 하이트 맥주 탄생하고 3년만에 시장 1위 등극

박 회장은 1976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바로 조선맥주에 입사했다. 그 후 일광교역 대표이사, 조선맥주 상무이사, 동서유리공업 대표이사를 거쳐 1991년 조선맥주 사장으로 취임했다.

사장 취임 후 그가 놀란 것은 직원들의 안일한 태도였다. 당시 조선맥주의 ‘크라운 맥주’ 시장점유율은 20%였다. 동양맥주(현 OB맥주)에 밀려 2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국내 맥주 시장을 동양맥주(현 OB맥주)와 조선맥주가 양분함을 볼 때 사실상 꼴찌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직원들은 ‘업계 2위’라는 타이틀에 빠져 상황을 개선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박 회장은 자사 맥주가 동양맥주에 밀리는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 개선에 집중했다.

1년간 회사 근처 여관을 통째로 빌려 직원들과 합숙하며 일한 결과, 1년여 만에 ‘하이트’ 브랜드를 출시할 수 있었다. ‘100% 천연수로 만든 정말 순수한 맥주입니다’를 콘셉으로 잡은 하이트 맥주는 1993년 출시 3년 만에 국내 맥주 시장 1위에 오르게 된다.

하이트의 선전으로 조선맥주주식회사는 하이트맥주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기도 했다.


2001년 하이트맥주 회장 취임한 뒤 진로 인수, 명실상부한 종합 주류기업으로

아버지를 이어 2001년 하이트맥주의 회장이 된 박 회장은 2005년 8월 국내 최대 소주업체인 진로를 인수하며 소주로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당시 두산의 ‘처음처럼’이 알칼리 환원수를 사용한 점을 내세워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었다. 박 회장은 새로운 마케팅 아이디어로 처음처럼의 대세를 꺾었다. 주요 일간지 광고를 통해 “두산의 ‘처음처럼’은 전기 분해로 만든 소주이지만, 진로의 ‘참이슬’은 대나무 숯으로 정제한 소주”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에 두산은 소주 사업부를 롯데에 넘기며 주류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됐다. 소주 시장에서 하이트에 패배한 데 이어 10년 만의 일이었다. 이로써 하이트진로는 국내 1, 2차 주류전쟁에서 완승을 거뒀다.


다시 뒤집힌 시장 판도, 역전 가능할까

주류전쟁에서 완승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하이트진로가 소주에 역량을 집중한 사이 OB맥주를 인수한 사모펀드 KKR이 카스에 마케팅을 집중하면서다. 결국, 맥주시장은 다시 OB맥주가 1위를 차지했고, 하이트진로는 아직 그 기세를 꺾지 못하고 있다.

하이트진로가 맥주 시장 1위를 빼앗긴 데는 하이트 진로의 전략 실패가 원인이라는 분석이 많다. OB맥주가 추격을 시작하던 2006년과 2010년 하이트맥주는 ‘맥스’와 ‘드라이피니시 d’를 내놓는 등 오히려 마케팅 역량을 분산시켜 하이트의 시장 우월성을 약화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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