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루마썬팅 김우화 대표 ② 성과: 수많은 ‘최초 신화’로 혁신적 마케팅의 위력 입증
김성권 기자 | 기사작성 : 2018-09-2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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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화 씨피에프(CPF) 루마코리아 회장 [일러스트=민정진 / ⓒ 뉴스투데이]

수많은 ‘최초 신화’ 쓰면서 시장을 키우고 업계 1위 굳혀

(뉴스투데이=김성권 기자) 똘아이, 돈키호테, 이단아, 무대뽀, 엉뚱한 놈, 정신 나간 놈 등…김우화 씨피에프(CPF) 루마코리아 회장을 따르는 수많은 수식어들이다. 루마코리아의 전신인 아코상사도 선팅과는 무관해 보이는 ‘한국의 예술이 되자’는 엉뚱한 발상에서 나왔다.

이러한 수식어들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을 정도로 김 회장은 선팅 업계에서 수많은 ‘최초 신화’를 작성했다. 그 최초 신화야말로 미약한 후발주자가 시장의 파이 자체를 확대하면서 확고부동한 업계 1위로 자리매감하는 핵심적인 동력이었다.

자동차 선팅에 브랜드를 입혔고, TV광고를 내보낸 것도 업계 최초였다. 김 회장은 ‘장사하지 말고 마케팅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단순히 물건을 많이 팔아 매출을 올리기보단 물건의 가치를 파는 마케팅 경영이 시장에서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루마썬팅이라는 업계 1위의 기업을 배출한 것 못지않게 혁신적 마케팅의 위력을 입증한 것이 김 회장이 거둔 중요한 성과로 평가된다.

가격이 요동치는 선팅시장에서 ‘가격 공개’와 ‘99마케팅’ 시도

루마썬팅이 4년 만에 업계 정상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첫번째 마케팅 전략은 ‘가격 공개’였다. 김 회장은 사업 초창기 시절 선팅 시장은 굉장히 원시적이었다고 한다. 국내 4곳의 총판이 있었는데 같은 필름을 가지고 가격경쟁을 하는 단순한 방식이었다. 총판마다 수시로 가격이 변동돼 거래처도 그때마다 바뀌었다.

김 회장은 업계 최초로 표준화된 가격을 공개함으로써 극심한 가격변동이라는 시장의 허점을 공략했다. 당연히 이목은 집중됐다. 당시 유일한 홍보 수단이 ‘자동차생활’이라는 잡지였는데 광고 전면에 가격을 넣었다. 가격도 단순히 1만원, 5만원처럼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닌 9900원 식으로 정하는 이른바 ‘99 마케팅’을 사용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가격을 남기는과 동시에 저렴하다는 느낌까지 줄 수 있었다. 가격공개와 99마케팅은 당시 김 회장이 처음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가 된 광고카피는 “스모그 필름 149,000원에 엄청나게 싸게 팝니다”였다. 광고가 나간 후 주문이 밀려들었고 김 회장은 이 과정을 통해 선발주자들과의 경쟁에서 마케팅으로 승부를 본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당일 배송과 현금 할인 판매 전략으로 거래처 확대하고 수익 증대

배송 및 수금방식도 차별화 포인트였다. 대부분의 총판에서 2~3일 주문을 모아 발송하던 방식을 당일 배송으로 바꾸었다. 거래처는 고객들의 수요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면서 루마썬팅의 당일 배송에 매료됐다.

업계의 관행이었던 외상위주 거래 방식도 바꾸었다. 물건 가격을 10% 할인해주는 대신에 현금을 받고 판매했다. 경쟁업체들이 미수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지만, 김 회장은 현금 할인 판매 전략으로 실속을 챙기면서 매출도 늘렸다.

선팅 기술자 교육은 시장을 키우고 거래처를 확대한 ‘신의 한 수’

김 회장의 ‘첫’ 시도는 계속됐다. 당시 국내 필름 시장은 생산 기술이 없어 외국 제조사에 의존하던 ‘셀러스 마켓’이었다. 루마썬팅의 본사인 미국 씨피에프사에 필름이 없으면 국내 총판에서도 팔지 못했다.

이를 바꾸기 위해 그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주문자 생산을 시도했다. 개발비용과 시간이 부담이었기에 미국 제조원에서도 거절을 당했지만, 끈질긴 설득 끝에 이제는 흔히 볼 수 있는 ‘그린 필름’을 국내 최초로 생산했다.

선팅 기술자 교육은 ‘신의 한 수’였다. 선팅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선팅 기술자’를 모집해 교육을 시켰다. 루마썬팅의 교육을 받고 카센터에 취직한 기술자들은 자연스레 루마썬팅에 주문을 넣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시장이 커지고 거래처도 늘어갔다. 선팅 기술자라는 새로운 직업이 탄생함과 동시에 매출 증가로도 이어졌다. 현재 국내 선팅업계 종사자는 약 5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외환 위기를 기회로 만든 승부사…경쟁자가 무너질 때 버텨서 시장독점

실패를 모르고 뻗어가던 사업에 위기도 있었다. IMF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 당시 780원이던 환율이 불과 몇 달 사이에 2060원까지 폭등하면서 감당 못할 수준의 환차손이 발생했다. 당시 미결제된 필름 대금이 13억원이었는데 한 순간에 30억원 가까이 불어난 것이다. 미국에서 물건을 수입해오는 사업의 특성상 필름 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기에 이르렀고, 김 회장의 아코상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환차손에 따른 부채로 다른 총판들은 고의적으로 부도를 내고 항구에 도착한 필름을 다시 되돌려보내는 등 영업 활동을 중단했다. 하지만 그는 부도를 내지 않고 사업을 유지했다.

그 결과 미국의 필름 공급사인 씨피에프사가 4개의 한국총판 중 아코상사와 거래하는 1개 총판만 남기고 나머지 3개는 철수해버렸다. 환차손과 불황으로 고통을 겪었지만 ‘살아남기로 결정한’ 아코상사는 오히려 위기 속에 기회를 잡아낸 것이다. 이후 부채는 차근차근 갚아나갔고, 사업은 빠른 속도로 정상 궤도로 올라갔다.

중국 및 인도산의 저가 공세를 고급화 및 브랜드화 전략으로 정면돌파

9900원이던 썬팅 가격을 100만원으로 인상, 최고급 재료쓰는 ‘루마썬팅’ 브랜드 출범

그 시점에 또 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국내산, 중국산, 인도산 등 가격이 10~15배 차이가 나는 저가필름의 공세에 가로막힌 것이다. 루마썬팅이라는 브랜드는 이런 상황에서 탄생했다. 루이비통과 같은 명품 브랜드처럼 선팅에도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켜 고급화 전략으로 저가 공세에 대응하기로 한 것이다. 김 회장은 미국 씨피에프사의 최고등급 필름인 ‘루마(LLumar)’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선팅 전문점이라는 개념도 도입했다. 선팅 작업의 특성상 야외에서 작업할 경우 먼지나 티끌이 들어가 필름에 기포와 얼룩 등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점포 안으로 차를 들여놓고 작업하기로 한 것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점포 안으로 차가 들어가는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선팅 가격도 고급화 전략에 맞춰 100만원으로 정하고, 이에 걸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당시 9900원이던 선팅 가격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이었고, 시장에서의 반응도 회의적이었다. 업계에서는 “IMF 터지더니 아코 사장님이 완전히 돌았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1년 여 점포를 돌아다닌 끝에 대구의 조그만 카센터에서 전문점을 내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전문점 내부는 기존의 야외 작업장과 기름 묻은 정비복에서 벗어나 직원들은 루마 로고가 적힌 유니폼을 입고 차가 들어올 내부도 깔끔하게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루마썬팅이라는 간판을 달면서 국내 최초의 선팅 브랜드화가 시작됐다.

100만원짜리 선팅, 첫 고객 나오는데 3개월 걸렸지만 지난 해 600호점 돌파

김 회장 “기업의 가장 큰 재산은 상상력” 강조

2002년 12월 1호점을 열었지만 100만원 상당의 선팅을 시공하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약 3개월 째가 지날 때 첫 고객이 나왔고, 전문적인 작업 기술로 작업을 완성하자 고급 선팅을 찾는 고객이 점차 늘었다. 이후 전문점을 원하는 점주도 급속하게 증가했고 2005년 100호점, 2008년 160호점, 2011년 400호점, 2014년 480호점, 2017년에는 약 600호점을 돌파했다.

김 회장의 최초 행보는 계속됐다. 으레 자동차 딜러들이 서비스로 해주는 선팅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한 홍보를 시작한 것이다. 자동차용품 전시회나 모터쇼는 물론 TV와 라디오 광고를 통해서도 루마썬팅을 알렸다. 선팅 기술을 뽐내는 대회도 열었다. 코엑스 전시장을 빌려 업계 종사자들이 겨루는 썬팅대회를 열고, 이를 생중계 했다.

업계에서는 필름만 잘 팔면 되지 돈도 안되는 일들을 벌이는지 의아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통해 루마썬팅은 국내 대표적인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현재 국내 선팅 시장은 약 450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데 이 가운데 루마썬팅이 약 65%를 점유하고 있다.

김 회장은 “기업의 가장 큰 재산은 바로 상상력”이라고 말한다. 아코상사에서 루마코리아라는 브랜드를 완성시키는 데 까지 위기 때마다 이를 기회로 만든 건 바로 남들과 다른 상상력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상상력을 통한 마케팅 전략으로 지금의 루마썬팅을 만들었다. 그는 “지금도 사람을 뽑을 때마다 사고가 독특한 사람, 상상력이 있는 사람을 선발해야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성권 기자 priokim@news2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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