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의 인간학]아부에 관해(4)예수의 로마황제 권위 존중과 아부의 차이점
이태희 편집국장 | 기사작성 : 2018-09-1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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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는 로마황제의 권위를 존중함으로써 자신의 '신성'을 지켜냈다.

아부의 본질은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 권위에 대한 존중과 달라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국장)

아부를 혐오하는 다수의 인간이 변하기 위한 첫 단계는 그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우선 아부를 권위존중과 착각해서는 안된다. 다수의 인간은 권위에 대한 존중과 아부를 착각하면서 자신이 승진이나 재화 획득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위한다.

하지만 어떤 결정적 국면에서도 아부라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최선을 다한 것은 아니다. 칼자루를 쥔 사람, 즉 정점에 선 자들은 권위를 존중하는 사람들을 주목하지 않는다. 정점에 선 자들의 자존감을 극대화시키면서 지위불안감 및 자기실현 욕망을 일거에 해소해주는 행위는 아부이다.

대통령이나 재벌 총수의 권위는 거의 예외 없이 존중받는다. 아부를 혐오하는 다수의 인간 중에서 권위를 거부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럴 정도로 자존감이 강하거나 혁명적 감성을 지닌 인간 유형을 거의 본적이 없다.

격변의 역사 속에서 반란을 기획했던 인물들만이 기존의 권위를 파괴하려고 했을 뿐이다. 권위에 대한 존중은 합리적 사고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 때 합리성이 의미하는 것은 고전파 경제학의 시조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강조했던 합리성이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인간의 사고방식이다.


권위를 존중하지 않을 경우 입게 될 치명적 손실에 대한 ‘공포’가 권위존중의 동기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학자들은 20세기 중반에 이러한 합리성을 ‘도구적 이성’이라고 맹공격했다. 인간의 이성이 타인 또는 자연을 이용의 대상으로 삼아 이윤을 극대화하는 태도에 함몰됨에 따라 인간 소외와 환경파괴와 같은 비극이 초래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과는 무관하게 합리성은 다수 인간으로 하여금 권위 존중에 관한한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유도주는 긍정적 기능을 갖는다. 권위를 존중하지 않을 경우 자신과 가족이 치명적인 손실을 겪게 될 것이라는 ‘공포감’으로 인해 주저 없이 권위를 존중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정신과 영적 세계의 통치자들도 세속적 의미의 최고 권력자들의 권위를 존중하는 데 주저한 적이 없다. 세속의 권력자들이 부도덕한 치부를 숨기기는커녕 거의 드러내고 있어도, 그 치부를 손가락질하면서 꾸짖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상당수 로마의 교황들은 오랜 세월 동안 존경을 받아왔지만 자신의 권위와 이익이 손상되지 않는다는 전제가 충족될 경우, 부패한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을 존중했다.


권위 존중은 권력의 보복을 방지하고 자신의 가치를 지켜내

1970년대 민주화 세력의 대부로 존경을 받던 고 김수환 추기경같은 인물도 과거 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적이고도 폭압적인 권력 스타일을 비판했지만, 박정희의 권력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권위주의 정권을 전복시키자는 입장을 취한 적이 없다.

이처럼 현실의 권력을 인정하는 것이 권위존중의 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재권력을 칭송한 것은 아니므로 아부는 아니다.

권위를 인정함으로써 권력의 보복을 방지할 수 있고, 권력에 아부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지켜내는 이익 극대화를 도모한 셈이다.    


예수의 권위존중 화법,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예수조차도 세속사회에서 정점에 선자의 권위를 존중했다. 예수는 바리세인들이 “가이사(Caesar.로마 황제의 호칭)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가요 아니면 옳지 않은 일인가요?”라고 물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억압적 통치 구조에서 자신들을 구해줄 메시아를 원했었다.

메시아를 자처했던 예수에게 이런 질문을 했던 것은 “네가 메시아라면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고 윽박지른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예수의 대답은 유대인들의 압박을 절묘한 방식으로 우회했다. 그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고 말했다. 세속사회에서 정점에 서 있는 로마 황제의 권위를 존중하라는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하지만 예수의 이런 입장을 로마 황제에 대한 아부 행위라고 비난한다면 정신나간 짓이다. 이 때 예수는 합리적 선택을 한 것이다.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지 말라고 가르칠 경우 바리세인들은 예수를 반역자로 몰아 로마인들에게 끌고 갔을지도 모른다.

로마 황제의 징세권을 인정함으로써 기독교의 교리를 전파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함으로써 기독교적 세계관의 현존을 강조한 것이다. 예수는 로마황제의 권위를 존중하는 답변을 한 것이다. (계속)
 

[이태희 편집국장 youyen2000@news2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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