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미래]③ 독일 노동시장의 미스터리를 벤치마킹해라
이안나 기자 | 기사작성 : 2018-09-14 14:09
210 views
Y
 

자동차산업은 전후방 파급효과 및 고용창출 효과가 가장 큰 분야이다. 현대차가 대표하는 국내자동차산업의 종사자수는 전체 제조업 고용의 9.1%를 차지할 정도이다. 따라서 현대차가 노사관계의 불안정성, 중국 및 인도 자동차 브랜드 도전 등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미래차시장의 선두주자로 발전하는 것은 개별기업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경제와 고용시장에 직결된 중대과제이다. 이에 뉴스투데이는 정확한 위기 인식 및 공감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효과적인 응전이라는 3가지 관점에서 ‘현대차의 미래’에 대해 분석한다. <편집자 주>  



노조 조직률 높은 독일의 자동차기업, 고용 안정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확보

(뉴스투데이=이안나 기자)

“2018년 2월 독일 금속산업에서 새로운 단체협약이 체결되었다. 이 제도는 유연성 확대를 원하는 사용자들의 요구와 개별 근로자들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절충할 수 있는 새로운 혁신적 근로시간 규제로 평가받고 있다.”

토르스텐 슐텐 독일 경제·사회과학연구소(WSI) 박사는 지난 2월 독일 금속노조가 사측과 체결한 단체협약을 두고 이 같이 분석했다.
 
경제상황의 급변과 예측하기 어려운 경기변동으로 인해 기업은 그 어느 때보다 유연한 대처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근로자의 입장에서 고용유연성의 확대는 고용의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임금의 삭감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기피한다. 현대차 노조 역시 매년 임금 인상과 고용안정성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 간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경직성이 높은 고용관계는 자칫 기업 경쟁력의 약화로 연결돼 기업과 근로자 모두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만든다.
 
독일의 최근 발전된 고용모델을 살펴보면 고용 유연성을 확대하면서도 고용안정성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특징이 드러난다. 오히려 근로자와 기업 간 장기적 상생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노사 합의를 이끌어냈다. 독일 노조 조직률은 2016년 기준 17%로 우리나라의 약 2배에 달한다.

노조 조직률이 높아질수록 노조의 힘 역시 세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독일은 어떻게 노동유연성과 고용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을까?



▲ 자료=경제협력개발기구(OECD) / 그래픽=뉴스투데이

폭스바겐, BMW등 참여한 독일 금속노조, 노동시간 단축하면서 개인에게 선택권 부여

여가 원하면 주 28시간, 더 많은 보수 받으려면 주 40시간

독일 최대 노조로 폭스바겐, 지멘스, BMW 등 노동자들이 참여한 IG메탈(금속노조)는 지난 2월 노사 협상에서 주간 노동시간을 기존 35시간에서 28시간으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주목할 점은 모든 직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 직원들은 선택권을 갖는다. ‘짧은 노동시간’을 선택하는 노동자는 임금이 그만큼 줄어드는 결과를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즉, 쉬고 싶다면 28시간 근무를 하고 돈을 벌고 싶으면 주 40시간을 일할 수 있다. 추가적으로 근로자들은 주당 근로시간을 28시간으로 단축했다가 이후 원래 전일제 업무로 복귀할 수 있는 권리도 갖는다.
 
슐텐 박사는 <국제노동브리프>에서 “이런 결정을 내린데에는 다수의 근로자들이 근로시간 단축을 원하지만 일부 근로자들은 근로시간 연장을 원하는 분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일·생활 양립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나타난 가치관 변화를 수용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요구했던 독일 금속노조, 단축근무선택권 수용

자체 조사결과를 토대로 '임금 보전’ 고수보다 ‘자율성’ 선택

처음부터 노사합의가 원만하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금속노조는 애초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했다. 12개월 동안 6%의 임금 인상에 추가로, 모든 근로자에게 최장 24개월 동안 주당 근로시간을 28시간으로 줄일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할 것을 주장했다.
 
노조 협상 상대인 남서부금속고용부연맹은 노조의 요구를 즉각 거부했다. 이때 금속노조의 선택은 파업을 통한 입장 고수가 아닌 양보와 합의를 선택했다. 노조는 주 28시간의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삭감을 받아들였다. 동시에 노동자가 희망하면 주 최대 40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단축근무 선택권’(전체 인력의 18% 이내)을 확보했다.
 
금속노조가 근로자들의 자율성을 선택한 이유는 내부 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금속노조는 약 70만명의 금속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실제 근로시간과 희망 근로시간 등 종합적인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상당수는 현재보다 근로시간을 단축하기를 원했지만 장시간 근무를 선호하는 이들도 일부 존재했다.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불가능하다면 차선책으로 각 근로자들의 만족도를 최대로 키울 방법은 '각자 원하는대로' 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결국 금속노조는 노사 협상 과정에서 전반적인 근로시간 단축을 요구하지 않고 대신 근로자들이 자신의 근로시간 결정에 개별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주력했다. 물론 이런 성과는 금속노조의 교섭력이 크게 강화되는 부수적 효과도 얻었다.
 
물론 사측의 입장도 반영됐다. 근로자 개인이 한시적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권리를 얻는 대가로, 사용자들에게는 일정 비율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주당 근로시간을 40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대했다.
 
슐텐 박사는 이 같은 단체협약에서 혁신적인 요소로 ‘제한된 기간 동안 주당 근로시간을 28시간으로 단축하면서도 기존 전일제 업무로 복귀가 보장됐다는 것’을 꼽았다. 고용안정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던 요인이다.
 
그 결과 독일 금속산업의 교섭당사자들은 모두 신규 단체협약에 만족을 표하고 있다는 평가다. 외르크 호프만 금속노조 위원장은 “이 협약은 ‘현대적 노동생활의 이정표'”라고 불렀고, 사측인 Gesamtmetall의 Rainer Dulger 회장은 “21세기를 위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초석'”이라 평했다.


독일 금속노조의 '주 28시간' 근무제는 기존 ‘근로시간 계좌제’의 진화

이정언 배재대 교수, "노사가 상생하는 근로시간 단축 모델 필요"
 
근로자의 자율성을 전제로 한 주 28시간 도입은 기존 '근로시간 계좌제'에서 한단계 더 발전된 형태로 볼 수 있다. 근로시간계좌제를 이용한 노동시간의 유연화는 기업의 노동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생산의 유연성을 높일 수 있어 서구에서는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수단이다.
 
근로시간 계좌제란 노동자가 회사와 계약한 근로시간을 초과해 일한 만큼 자신의 계좌에 저축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쓰는 제도다. 하루 8시간 일하도록 돼 있는 직원이 10시간을 일했다면 2시간을 계좌에 기록해 두었다가 휴가를 쓰거나 장기계좌의 경우 쌓아 둔 시간만큼 조기 퇴직도 가능하다.
 
기업은 경제적 추가 부담 없이 가동시간을 시장 환경에 맞게 유연하게 결정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전체 기업의 44%, 근로자 500명 이상 대기업의 89%가 이 제도를 운용하고 있을 만큼 일반적이다.
 
1990년대 초 독일은 자동차산업에 정체기가 왔을 때 이 근로시간 계좌제도를 통해 경영위기에 대처했다. 1993년 폴크스바겐(Volkswagen)은 전체 근로자 12만 명에서 1995년까지 7만 명으로 감원계획을 세우면서 노사합의에 의한 근로시간계좌제를 도입하게 된다. 노사합의의 주요 내용은 근로시간을 20% 줄임과 동시에 인건비 역시 20% 삭감하는 것이었다. 또한 초과근로에 대한 수당을 없애는 대신 초과근로 시간을 적립하는 형태로 제도를 적용했다.
 
이정언 배재대 경영학과 교수는 ‘독일 고용유연성 확대와 고용안정성’ 논문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고용의 유연성 확대는 근로자의 측면에서 해고와 임금의 감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고용유연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노사간 인식의 전환과 더불어 당사자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며 기업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실제적인 구현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 자료=Seifert(2012) / 그래픽=뉴스투데이

독일연방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잔업시간을 근로시간계좌로 대체하여 40~60만개의 고용창출 및 해고회피 효과가 발생했다.

근로시간계좌를 통한 추가 임금비용 없는 잔업과 협약노동을 통해 법정근로시간 단축 없이 노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상생모델을 구축했다는 점은 국내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은 잔업증가에 따른 노동비용을 절감하면서도 공장가동시간을 늘려 단위당 생산비용을 낮춰 기업경쟁력을 강화하고 근로자는 근로시간의 자율성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동시에 고용안정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안나 기자 leean@news2day.co.kr]
메일보내기
보내는분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내용
 
주요기업 채용정보